▲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국민설명회 개최1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간첩 증거조작 사건 당사자 유우성(전 서울시공무원)씨가 참석한 가운데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권우성
"왜곡된 기사를 쓰면 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 제발 명심해 달라"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설명하던 유우성씨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시울을 붉혔으며, 가끔 감정에 복받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유씨는 "백 번, 천 번 이야기해도 나는 간첩이 아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차라리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로 사는 것이 더 편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면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루 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검찰 참고인 조사에서 1시간 20분 만에 귀가한 것과 관련, "검찰 조사를 회피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유씨는 "검사 질문에 모두 대답했고 변호사들과 함께 200장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왔다"고 밝혔다. 또 유씨는 중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탈북자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저희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북에서 태어났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지만 북에서는 자유롭지가 못해 작은 꿈을 지키고자 남한에 온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언론이 나에 대해 왜곡된 뉴스를 내보낼 때마다 중국의 아버지와 동생이 울면서 전화를 해온다"면서 "사실을 쓰면 한 사람을 살리고, 왜곡된 기사를 쓰면 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제발 명심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사회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지배되는 공포사회"라고 규정하고 "이런 공포체제에서 겁먹고 이의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장 변호사는 또 "증거조작이 되고 날조가 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아직도 유우성씨에 대해 의심하는 언론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양승봉 변호사는 "유우성씨가 기소된 후 3천 페이지에 달하는 공소기록에는 유씨가 간첩이라고 하는 25명의 진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중 한두 사람에게 전화를 해보았을 뿐인데도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면서 "(국정원은) 그 많은 증거와 그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지만 진실을 아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필요 없었다"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기 전까지는 국정원을 무서워 할 틈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하면서 국정원이 두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나같이 보수적인 사람까지 '이런 허무맹랑한 짓으로 한 사람을 죽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렇게 명백한 사건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고 밝혔다.
최승호 PD "한국사회가 얼마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생각해야"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을 추적해온 최승호 PD는 "이 사건이 대한민국 법치의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법치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PD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60년대, 70년대에도 조작간첩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수 십 년 지나서 조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통치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한국사회가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정말 사심 없이 국정원과 검찰이라는 괴물을 국민들을 위해 개혁해야겠다는 진정성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사건의 국가범죄적 성격분석'이란 제목의 미니 강의에 나선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우성씨 사건은 국가범죄적 성격을 갖는다"며 "가해자가 뭘 믿느냐가 범죄여부를 결정하는 마녀재판"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이 교수는 위조로 드러난 유씨 사건 관련 문서와 과거 간첩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누명을 씌우는 데 활용된 영사증명서에 관해 설명하면서 "영사증명서는 주문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제작된 맞춤 문서이며, 영사증명서의 묘수는 '증명해야 할 것'을 '증명된 것'으로 둔갑시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오후 6시부터는 28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최한 촛불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책임자 처벌 ▲ 박근혜 대통령 사과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