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유한숙 어르신의 영정사진과 밀양송전탑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이 놓여있다.
김은하
'2차 희망버스' 후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지난 1월 나는 초록을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밀양의 아픔을 현장에서 보았으며 연대의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1박 2일간의 짧은 일정 동안 밀양은 다시 활력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희망버스가 돌아간 다음 날 밀양은 또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고(故)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주민들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막는 일이 발생했다.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3월 14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밀양을 다시 한 번 만났다. '故 유한숙 어르신 운명 100일 추모제'는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와 밀양송전탑 전국 대책회의가 주최하고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추모제는 추모노래(평화의 나무 합창단, 이수진), 추모사(여성환경연대 장이정수, 예수살기의 최영국 목사), 송경동 시인의 추모시낭독, 규탄발언(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대책위원장 김정회), 유족인사(유동환), 추모춤(김미선) 그리고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경찰, 정부, 한전은 고인의 죽음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유한숙 어르신은 1차 희망버스가 떠난 다음날인 2013년 12월 10일 음독하셨다. 마지막으로 그는 "765KV 송전탑 때문에 못살겠다"라는 말을 남긴 후 음독한 지 4일 만에 세상을 등졌다. 경찰은 필사적으로 녹음파일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가족불화설, 돼지값 하락, 음주설등을 내세워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맏상주 유동환씨는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0일이 되었다. 아직도 765KV송전탑 때문에 살기 싫어서 죽으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친다. 가정불화와 음주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밝히지 못하면 죽음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더 싸울 수 있다. 도와줘서 감사하다. 국민들이 알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직도 유족들은 어르신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유족들은 한전에게 고인의 사인왜곡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한전의 사과와 책임 있는 보상 그리고 장례 후 애도기간 공사 중단과 주민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전은 침묵하고 있다.
밀양에서 활동하는 청년활동가 박인화(21)씨는 "3월 3일부터 밀양에서 서울로 올라와 1인시위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하고 반신반의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줬다"며 "많은 힘을 얻고 간다. 앞으로 많은 힘을 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밀양에서 활동 중 연행되었던 조은별(21)씨는 "추모제, 밀양 희망버스 같은 연대의 움직임들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고맙다. 더 이상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른 장례를 치르고 어르신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청년좌파의 김대환씨는 "어르신이 돌아가신 지 100일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송전탑 공사는 강행되고 있다. 추모의 마음을 나눈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의 시민들과 추모제를 함께했다. 사람들은 고인을 위로하며 그렇게 '전기보다 사람이다'라고 외쳤다. 2차 희망버스에 이어 다시 밀양과 함께했다. 2차 희망버스 때의 그 목소리가 이 땅에서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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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한숙 어르신을 기억하며... "전기보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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