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판블라디보스토크의 수화물 보관소는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정대희
친절한 러시아인을 의심한 나, 반성했다대합실을 어슬렁거리며, 수화물 보관소를 찾아 나섰다. 곳곳을 기웃거려보지만 도통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 항근과 나를 향해 웬 중년의 러시아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우리가 뭘 찾는지 묻는 것 같았다. 있는 힘껏 몸으로 수화물 보관소를 설명했다. 이번엔 80리터 배낭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몸짓을 보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 챘는지 감탄사를 내뱉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를 따라 다시 역 안을 빠져 나왔다.
기차역 바로 옆,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자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카메라 흐라네니야(камера хранения)', 수화물 보관소를 알리는 영문표기 위로 적힌 키릴 문자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는 한국의 전당포와 닮았다. 요금을 계산하고 배낭을 맡겼다. 밤 12시 이전까지 수화물을 찾아간다면 추가요금은 없단다. 어제(15)일 만난 재러 교포의 충고가 떠올라 지갑서 몰래 돈을 꺼내 요금을 지불했다. 그런 모습이 우스운지 주변에 있던 대여섯 명의 러시아인들이 웃는다. 도움을 준 러시아인도 소리를 내 웃으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민망한 상황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배낭을 맡기고 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친절을 베푼 러시아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는 맥주 한 잔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호의가 불편하다. '혹시나 해코지를 당하는 게 아닌지'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고 무작정 제안을 뿌리치고 갈 수도 없어 고민이다. 애매한 상황에 항근과 마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고심 끝, 일단 항근이 그와 함께 대합실로 갔다. 난 자처해 "상일을 데리고 오겠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피했다. 혼자 상황을 모면해 보자는 얄팍한 심리가 작용한 거다.
기차역 매표소에서 상일을 만났다. "보관소는 찾았어?"란 상일의 질문에 "따라와"라며 으스대며 아는 척을 한다. 수화물 보관소로 향하는 길, 상일과 헤어진 후 일어난 상황을 수다스럽게 설명했다. 상일의 짐을 맡긴 후 대합실서 항근과 러시아인과 조우했다. 매점 근처서 둘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 하나를 사 곁에 앉았다.
넷 사이, 침묵과 외침을 반복하는 어색한 상황이 이어진다. 만국공통어인 '바디 랭귀지'만이 유일한 대화수단으로 그와의 거리를 좁혀 주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도 기껏해야 그가 1966년생이고 기차역 직원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생각보다 언어의 장벽이 크다.
보는 시각도 달랐다. 그는 셋 다 대학생으로 봤지만, 한국에서 난 언제나 '아저씨'로 불렸다. "서른 넷"이란 나의 말에도 못 믿는 그를 향해 여권을 코끝까지 들이밀었다. 그제야 그는 놀라며, 날 바라본다. 기분 좋은 경험이다.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항근과 자신을 놔두고 도망치듯 상일을 찾아나 나선 이야기를 우스꽝스레 표현했다. 내 속내를 뚫고 있던 거다. 돌이켜보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런 행동이었다. 부정할 수 없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가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런 모습에 나는 더 작아졌다. 이 일을 계기로 여행을 하는 동안 타인에게 먼저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됐다.
아쉬움을 남긴 채 그와 헤어졌다. 제복을 입은 한 군인이 그에게 다가와 타박을 했고 그는 서둘러 일터로 향했다. 허기를 느낀 우리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