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크림 합병 최종 서명을 발표하는 러시아 크렘린궁 공식 홈페이지.
러시아 크렘린궁
크림반도가 60년 만에 다시 러시아의 품에 안겼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21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크림 공화국과 크림 내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러시아 합병 조약 비준안과 새 연방 구성원 수용에 관한 연방 법률안에 서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크림 공화국은 자체 주민투표, 푸틴 대통령의 합병 승인 요청, 러시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상·하원의 비준을 거쳐 다시 푸틴 대통령이 최종 서명을 하면서 러시아 귀속을 위한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앞서 상원은 비상회의를 소집해 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과 연방 구성원 수용에 관한 법률을 심의해 한 표의 기권이나 반대도 없이 155명 참석 의원 만장일치 찬성으로 가결했다.
러시아는 곧바로 1783년 크림반도를 처음 합병한 제정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의 이름을 딴 예카테리나 홀에서 서명식을 열고 크림을 새로운 연방지구로 지정했다. 또한 올렉 벨라체프를 크림 지구의 대통령 전권대표로 임명했다.
합병 절차를 완료한 크림 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러시아 연방의 84번째, 85번째 구성원이 되었다. 크림의 공식 통화는 러시아 루블화로 바뀌고, 희망하는 크림 주민은 러시아 국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60년 만에 러시아로 돌아온 크림, 그 복잡한 역사 흑해가 둘러싸고 있는 크림반도는 역사적으로 스키타이인, 훈족, 그리스, 비잔틴 제국, 몽골 등으로 주인이 자주 바뀌다가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꺾으면서 1783년 러시아의 차지가 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러시아의 발칸반도 진출을 막기 위한 오스만,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르데냐 연합군과의 크림전쟁이 벌어져 1853년부터 3년 넘게 전쟁 무대가 되었다. 또한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전쟁으로도 유명하다.
1917년 혁명으로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며 소련이 탄생했고, 크림반도는 크림 자치 소비에트공화국이 되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잠시 독일 나치의 수중에 들어가기도 했다.
1944년 소련이 크림 반도를 탈환했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나치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크림 내 소수민족 타타르족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절반 가까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숨지면서 타타르족은 뼛속 깊이 반러 감정이 새겨졌다.
크림 공화국이 러시아 귀속을 추진할 때 타타르족은 강하게 반발했고, 푸틴 대통령이 크림의 공식 언어를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타타르어 등 3개로 정한 것도 타타르족을 끌어안기 위해서다.
이날 크림의 혼돈이 시작된 것은 1954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이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에 양도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련이 붕괴되자 크림은 1992년 독립을 선언하며 자체 헌법까지 채택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우호조약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확정됐고, 크림도 자치공화국의 지위와 행정 자율권을 보장받으면서 한발 물러섰다.
비록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되었지만 러시아계 주민이 60%가 넘는 크림은 최근 우크라이나 권력 투쟁에서 친러 세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고 친서방 세력이 승리하자, 강하게 반발하며 서둘러 러시아 귀속을 추진했다.
수많은 논란과 비난 속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지난 16일 전체 주민투표를 강행한 크림은 96%에 달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60년 만에 러시아로 돌아왔다.
크림반도 되찾은 러시아 '득과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