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 시신이 방부처리돼 안치되어 있는 호치민 묘
오문수
호치민은 베트남의 정치가이며 국부로 추앙받는다. 본명은 응우옌신꿍, 자(字)는 띳티인, 호치민은 가명이며 '깨우치는 자'라는 의미다. 그의 부친은 프랑스 식민치하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응우옌 왕조의 관리가 되었으나 자신의 일이 식민지 경영의 주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번민했다.
결국 불복종을 이유로 해직된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호치민과 형, 누나도 주변에 민족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반식민지 독립운동에 참여해 수감됐다. 본인도 프랑스-베트남학교 재학시절 징세 반대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쫒겨나고 만다.
호치민은 잠시 민족주의자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지만 독립을 위해서는 서양 나아가 세계를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해운회사에 견습요리사로 취직했고 정원사, 청소부, 사진수정가, 화부 등을 전전했다.
그밖에도 영국, 미국 등을 전전하며 신문물과 사상을 배웠다. 이때의 경험으로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타이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에도 능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최해성씨가 호치민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평가를 들려줬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는데 호치민은 먼지 안 나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데 내가 무슨 각하냐?'며 '호 아저씨라 불러라'고 해서 사람들이 '호 아저씨'라고 불러요. 또 '자신의 친척 10촌까지는 공직을 주지 말라'고 해서 친인척 비리를 막았죠."
하노이엔 호치민이 기거했던 옛 주석궁이 있는데, 이곳은 본래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총독부였다고 한다. 당연히 호화로운 곳이지만, 호치민은 정작 이 옛 총독부 관저를 쓰지 않고, 주석궁 안의 연못 옆에 작고 허름한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와서 수염을 당기면서 '파파 호호'라는 애칭으로 불러주면 미소 지으면서 손수 베트남 고유악기를 치고 아이들을 위한 노래를 불러주며 같이 놀아주곤 했다. 하루는 아랫사람이 아이들이 마구 뛰어놀면서 시끄럽다고 화내자,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처럼 활기찬 곳은 없다면서 놔두라"고 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