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중2의 눈빛, 이젠 가슴이 떨린다

[너희가 중2를 아느냐 ②] 아이들은 믿음 속에서 성장한다

등록 2014.03.24 21:13수정 2014.03.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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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평소 친하게 지내는 김 선생님(가명), 박 선생님(가명)과 저녁을 함께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맥주 한 잔 걸치러 갔다. 학년 초를 무사히 보낸 우리만의 조촐한 기념식(?)을 위해서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형처럼 따르는 김 선생님에게 작년에 만난 한 제자 이야기를 들었다. 제자 이름은 동희(가명)였다. 김 선생님 말에 의하면, 동희는 학교의 '살아 있는 전설' 같은 존재였다. 교내에서 온갖 말썽을 다 피우는 것으로 모자라 학교 바깥에서도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김 선생님은 동희를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동희가 무슨 '일'을 저지를 때마다, '널 믿는다'는 심정으로 차분하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거의 1학기 내내였다.

학기 말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동희가 또 큰 '사고'를 쳤다. 경찰까지 알게 되었으니 쉬이 끝날 일이 아니었다. 김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등교하자마자 교실로 쫓아갔다. 격한 목소리로 동희를 호되게 나무랐다. 책상 다리를 있는 힘껏 발로 차면서 끓어 오르는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별다른 말 없이 교실에서 뒤돌아섰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주뼛거리며 동희가 교무실로 들어섰다. 김 선생님 앞에 선 동희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동희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꼈을까. 김 선생님은 이런저런 잔소리 한마디 내놓지 않은 채 동희를 조용히 돌려 보냈다.


그뒤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동희는 시나브로 조금씩 변해 갔다. 껄렁거리고 말썽을 피우는 '버릇'은 여전했다. 하지만 마음에 큰 변화가 온 것만은 확실했다. 동희는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뒤 인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야기를 마무리짓던 김 선생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요새 동희가 아침마다 전화한다니까."
"안부 전화 하는 거예요?"


내내 듣고 있기만 하던 박 선생이 물었다. 박 선생은 사석에서 나를 '형'이라 부르는 후배 교사다.

"그렇지."

김 선생님의 얼굴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선화의 냉랭한 태도, 등에서 식은땀이...

어린 시절을 우직한 농부의 자식으로 자랐다. 시커멓게 가난한 집이었다. 분주한 농사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에게 제대로 관심 한 번 쏟지 못하셨다. 덕분에(!) 나는 동생이나 동네 친구들과 함께 산과 골목을 쏘다니며 맘껏 뛰어 놀았다.

그래도 가난한 부모님께서는 내게 큰소리로 야단 한 번 치지 않으셨다. 숙제을 안 하거나 공부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셨던 적도 없었다.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며 나무라신 일 또한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특출나게 성적이 잘 나왔던 것도 아니다.

그때 부모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은 무엇이었을까. 기다림이었으리라. 그때 부모님의 기다림에는 나를 향한 한결 같고 진심 어린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농사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둘 때까지, 부모님께서는 차분한 기다림과 진심을 담은 믿음으로 작물들을 가꾸셨다. 서두르거나 욕심 내지 않으시면서 곁에서 조용히 거들기만 하셨다.

부모와 자식, 농사꾼과 작물 사이에서 뿐만일까. 기다림과 믿음은 모든 관계의 기본 중 기본이다. 김 선생님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그는 '꼴통' 짓을 하는 아이를 거의 한 학기나 차분히 지켜보았다. 분명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화를 억누른 채 따뜻한 말로 다독였다. 동희를 향한 인간적인 믿음, 삶을 길고 넓게 보는 여유와 관용 덕분이었을 것이다.

 선화는 온통 내 머리를 헤집어 놓고 있었다. 밥을 먹고, 운전대를 잡으며, 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조차 내 머리에는 선화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첫날 수업에서 선화가 내게 보여 준,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한 태도 때문이었다.
선화는 온통 내 머리를 헤집어 놓고 있었다. 밥을 먹고, 운전대를 잡으며, 베개를 베고 누웠을 때조차 내 머리에는 선화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첫날 수업에서 선화가 내게 보여 준,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한 태도 때문이었다. Mnet

김 선생님이 내게 동희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내 머리에는 선화(가명)가 떠올랐다. 선화는 올해 새로 만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뭐랄까. 선화는 내게 대놓고 도발하거나 반항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평범한 아이다.

하지만 그즈음 선화는 내게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선화는 온통 내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밥 먹고, 운전하고, 누울 때조차 내 머리에는 선화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첫날 수업에서 선화 보인,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한 태도 때문이다.

싸늘함으로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영화 <겨울 왕국>의 엘사가 손으로 내쏘는 차가운 얼음 광선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오죽했으면 선화의 냉랭한 태도에 내 등에서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을까.

그 며칠 전 수업 시간이었다. 활동학습지(활습지)에 짧게 모방 시 한 편을 짓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설명할 때 딴짓 하다가 잘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아이도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교실 반 바퀴를 돌아 선화가 앉은 자리 옆으로 갔다. 선화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다리를 반으로 접어 선화 책상 옆에 쪼그려 앉았다.

"선화는 교과서 작품 좀 봤니?"

녀석이 대답하지 않을 걸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선화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엎드려 있었다. 물음에는 대꾸 한마디 하지 않았다. 선화의 활습지를 만지작거리던 내 손이 민망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선화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당했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나는 떨리는 감정을 억눌렀다. 차분한 목소리로 선화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선화야, 선생님 말 안 들리니? 선생님이랑 말하기 싫어?"
"······."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선화는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쳐다 보았다. '왜 부르는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짜증나고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더 자신을 건들면 폭발해 버리고 말겠다는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그런 강렬하고 도전적인 눈빛은 정말 무섭다(!). 나는 눈과 입 주변에 살짝 미소를 띤 채 말했다.

"힘들지? 그래도 시는 한 번 훑어 보렴. 모두 12행밖에 안 되거든(우리가 읽고 있던 교과서 시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었다). 읽는 데 크게 힘이 들진 않을 거야. 오늘은 모방 시를 짓는 시간인데, 선화는 이쪽 앞에 있는 활동에 아직 손을 안 댔구나.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적는 것이니까 자유롭게 적어 보렴. 활습지 쓰기 칸은 다 채우지 않아도 돼. 네 생각과 느낌을 네 말이나 문장으로 적는 게 중요해. 한 문장이어도 괜찮으니까 찬찬히 보고 써 보렴."

그때 선화는 고개를 쳐들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건성으로 쥔 볼펜으로는 활습지 한쪽을 톡톡 두드렸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그 직전의 상황에 비한다면 놀라운 변화였다.

며칠 전 수업이었다. 선화는 한 시간 내내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일부러 선화를 못 본 척했다. 선화가 은근히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다. 눈치를 본다는 건 내가 선화의 관심권 안에 있다는 말이다. 며칠 전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선화야, 선생님 좀 볼까?"

그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선화를 조용히 불렀다. 후다닥 일어나 복도로 나가려던 선화는 마지못한 몸짓으로 교탁 쪽으로 왔다.

"선화야, 이따가 선생님이랑 대화 좀 할까?"
"······."
"종례하고 잠깐 시간 내 주면 좋겠는데···. 5분이면 돼. 그럴 수 있겠니?"

그때 나는 보았다. 아주 살짝 미소를 딴 선화의 표정을. 가슴이 떨렸다.

"그래, 그러면 이따가 담임 선생님 종례 후에 교무실에서 보자."

나는 휴대전화 이야기를 핑계로 선화와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날 오후, 선화는 교무실에 오지 않았다. 예상한 바였다. 그 정도로 호락호락(?) 넘어갈 아이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복도에서 선화를 마주쳤다. 친구와 매점에 다녀온 듯했다.

"선화야, 어제 종례하고 많이 바빴니?"
"아니요."
"선생님이 많이 기다렸는데···, 교무실로 좀 오라는 말 잊어버렸니?"
"네."

선화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말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표정이 밝게 살아 있었다. 입가와 눈빛에는 약간의 미소도 어렸다. 그것은 영락 없는 열다섯 살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난 선화와 대화 좀 하고 싶었는데, 선화는 그러고 싶지 않은가 보구나."

나는 일부러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화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내 착각이었을까. 그때 선화는 얼굴에 미안한 기색을 내비친 듯했다.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 어서 들어가 수업 준비하렴."

선화는 시늉이라도 고개 한 번 꾸벅 하지 않고 교실로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첫 수업 때부터의 냉랭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직감했다. 선화 마음 속에 단단히 가로놓인 빗장이 조금은 아래로 내려갔다고 말이다.

중2는 중2다! 수업 중에 자신의 미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고 해보자. 중1은 고민 끝에 엉터리 그림을 그린다. 중3은 나름대로 어른스럽게 현실적인 미래를 그린다. 중2는 어떨까. 그림은 안 그리고 먼 산을 바라보거나 친구와 장난을 친다. "왜 그림을 안 그리는 거냐?"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미래를 어떻게 그려요?"

까칠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다. 그런데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찬찬히 따져 보면 그 중2 아이의 내면이 담긴 답변이기도 하다. 브랜드유리더십센터 이진아 소장이 쓴 <중2병 엄마는 불안하고 아이는 억울하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선화의 작은 변화, 보람을 느낀다

까칠한 중2 아이들에게는 기다림이 약이다. 중2가 '내가 어떻게 그려요'라고 말하는가. 대뜸 "시끄럽고, 그림이나 그려"라고 말하지는 말자. 그러면 소통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 얼굴을 바라보자. 차분한 목소리로 "찬찬히 생각해 보다가 어떤 그림이 떠오르면 그려 보거라"라고 대답하자.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 보자. 그때 온몸과 눈빛과 동작과 언어로 '너를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면 더욱 좋겠다. 그 모든 수단에 진정성을 담는다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난 금요일 수업이었다. 선화네 반에 들어가니 자리 이동이 있었다. 선화 자리는 교탁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교실을 두루 보니 자리를 바꿔 앉은 아이들이 제법 되었다. 다들 제자리로 가라고 했다. 선화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옆 친구와 얘기를 나눴다. 다시 한 번 자기 자리로 가라고 말했다. 말과 눈빛에 단호함을 담았다.

선화는 마지 못한 몸짓으로 자기 자리에 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선화는 교과서 갈피 사이에서 활습지를 꺼냈다. 책상에 엎드린 채 내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볼펜을 톡톡 치면서 낙서를 하는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떨리기만 했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기다리면, 한결 같고 진심 어린 믿음을 선화에게 주기만 하면,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선화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화의 입가와 눈빛에 서린 옅은 미소만으로도 펄펄 기운이 났다.

한때 '꼴통' 제자에게 매일 안부 전화를 받는 김 선생님이, 박 선생의 물음에 "그렇지"라고 말할 때의 벅찬 보람과 기쁨을, 나도 조만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중2 #기다림 #믿음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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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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