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 무공천'이 새정치? '반 정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 고집하는 세 가지 이유

등록 2014.03.25 18:59수정 2014.03.2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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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2일 오후 부산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김한길, 안철수 공동창당준비위원장과 문재인 의원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22일 오후 부산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김한길, 안철수 공동창당준비위원장과 문재인 의원 등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윤성효


정치권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두고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와 진보언론은 '무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무공천 철회 불가'를 외치고 있다. 참으로 보기 드문 논쟁구도다.

지금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기초선거 무공천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3가지였다. 첫째는 지방선거 전략 차원이었고, 둘째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3가지 이유는 이제 그 유효성을 상실했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다. 따라서 기초선거 무공천의 이유가 사라진 이상, 기초선거 무공천은 철회되어야 한다. 더구나 공천을 하려면 기초선거 단위별로 경선과정이 필요한 만큼,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약속 대 거짓' 지방선거 프레임, 가능할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집하는 첫 번째 이유는 6월 4일 지방선거를 위한 기본전략이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지방선거를 '거짓 대 약속'의 프레임으로 치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고, 그동안 당 지도부와 대변인들의 메시지도 실제 그에 맞춰져서 발표되었다. 

예를 들면 지난 3일 김한길 대표는 "이제 통합의 새로운 기운 앞에 거짓정치의 집권세력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고 했고, 안철수 창당준비위원장은 21일 "약속을 어기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력을 반드시 심판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보니 지난 3월 한 달 동안 여야 간의 정치적 쟁점도 기초선거 무공천 문제를 두고 형성되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전략적 계산처럼 '거짓 대 약속'의 프레임이 먹히고 있는가? 국민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의도대로 새누리당을 "단기적 이익을 좇아서 약속을 저버리는 세력"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힘들고 고난의 길이지만 약속을 꼭 지키려는 세력"으로 과연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무리 봐도 상황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거짓이고, 누가 약속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새누리당의 파상공세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23일 "국회의원 기득권을 막겠다면, 지역구보다 비례대표 공천권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며 "새 정치를 한다는 분들이 이런 기본을 정녕 모른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라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21일 민주당 내부에서 무공천 철회 주장이 나오는 것을 두고 "민주당의 안면몰수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황당하기는 매한가지"라며 "이번 논란은 민주당과 안 의원의 국민사기극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 이런 구태세력이야말로 철퇴의 대상임을 국민들이 잘 판단하시리라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적반하장, 후안무치 같은 고사성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작 야당은 '정쟁 콤플렉스'에 빠져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린 반면, 여당은 야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야성(野性)이 철철 넘친다. 그러나 야성은 철철 넘치는 대신, 양심은 도무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새누리당의 공세는 '약속 대 거짓'의 프레임을 역으로 공격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누가 거짓이고 누가 약속인지 국민들에게 헷갈리게 만들려는 의도다.

그런데 이 정도 일은 새누리당에게는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하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북한에 넘겨준 역적으로 만들어냈던 그들이다. 그렇게 만든 종북 프레임으로 지난 대선 승리를 사실상 조작해냈던 그들이다.

지금 정부·여당과 언론 환경은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약속 대 거짓'과 같은 프레임 게임을 뒤집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번 지방선거를 '약속 대 거짓'으로 치르겠다니, 참 어설픈 생각이다.

'약속 대 거짓' 프레임, 이율배반적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집하는 두 번째 이유는 실제로 그것을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공약은 '기초선거 무공천'이 아니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였다. 공약은 새누리당의 반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따라서 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피치 못해 공천을 하는 것은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안철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기획된 '거짓 대 약속' 프레임은 처음부터 이율배반적이다. 왜냐면 합당 그 자체가 그동안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해왔던 약속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안철수 신당은 양당제의 폐해를 넘어 다당제로 정치를 개편하겠다며 수많은 약속을 했는데, 이제 모두 허언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 지도부도 지난 해 '민주통합당'에서 '통합'을 빼며 "전통 야당의 자랑스러운 이름인 민주당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도 뒤집어졌다.

나는 양당의 합당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철수 위원장이 내걸었던 합당의 전제조건인 '기초선거 무공천'에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지금처럼 이율배반에 빠지고 말았다. 시쳇말로 합당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에 '오바'하고 만 것이다.

기초선거 무공천, 무책임정치의 극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집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고, '정의'이며, '새 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위원장은 21일 "지금은 손해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궁극에 이르러서는 역사와 국민의 선택은 '정의'를 선택해 줄 것"이라며, "우리가 먼저 기본을 지키자. 우리가 먼저 지킬 때 정부여당의 잘못된 국정운영도 바로잡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고 민생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당공천 폐지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말이 안 되는 주장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처럼 정당공천 폐지는 디테일에 들어가면 맹점이 많다. 그 맹점은 정당공천은 하지 않더라도 정당 표방은 금지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기초의원선거 정당표방 금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1998년과 2002년 지방선거 때는 기초의원선거의 정당공천 및 정당표방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당시 지방선거에 출마한 기초의원 후보자가 정당표방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되자 이 조항을 위헌법률 신청을 한 것에 대한 판결이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당지지 또는 추천받음을 표방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며, 후보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정당공천을 폐지하든 무공천을 하든 정당 표방은 금지할 수는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악마는 바로 이 디테일에 숨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이것이다. 만일 어떤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임을 표방했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이 보기에 저 인물은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사생활도 좋지 않고, 능력도 형편없어서 민주당 후보임을 표방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나? 답은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을 하지 않더라도 정당표방은 할 수 있는 만큼 누구나 자기의 지지정당을 표방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무책임한 정치가 어디 있나? 공직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임을 표방해서 선거운동을 하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데, 막상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그 후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니? 삼성 휴대폰이라고 해서 샀는데, 삼성에서는 "이것은 삼성 휴대폰이 아닙니다, 파는 사람이 삼성 휴대폰이라고 판 것이기 때문에 삼성에서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런 상황을 상대 후보가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대선거를 보면, 수도권에서 당락이 10% 이내에서 결정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따라서 상대 후보의 득표를 분산시키면 그것은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안철수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면에 내건 표 분산용 후보를 출마하게 만들면 그 후보가 10%의 득표는 하지 않겠나?

기초선거 무공천, 반(反)정치 콤플렉스에서 기인

무엇보다 '기초선거 무공천'의 문제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 정치'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반(反) 정치'일 뿐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2012년 대선 직전인 11월, 안철수 후보가 ▲ 무소속 대통령 ▲ 대통령 인사권 9할, 관료에게 이양 ▲ 정당의 당론 반대 ▲ 정당의 공천권 폐지 ▲ 국회의원 수 감축 ▲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 중앙당 폐지·축소 등의 반(反)정치적인 공약들을 대서 쏟아낼 때 함께 나온 공약이다.

안철수 위원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기초선거에서 정당이 공천하지 않는 것을 정당이 특권을 내려놓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대체 정당이 공직선거에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왜 특권이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직자가 왜 특권인가?

안철수 위원장은 '새 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정치는 나쁜 것이요, 가능하면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그는 정치를 '국민 대 정치'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국민이 살기 위해서는 정치를 최소화해야 하고, 정치가 커지면 국민이 죽는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아주 심각한 수준의 '반(反)정치 콤플렉스'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철수는 한국 정치의 폐해가 정당정치의 과잉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새 정치'의 내용은 대부분 정당정치의 해체 내지 축소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한국정치의 문제는 정당정치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정치의 부족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초선거 정당공천은 책임 정치에 맞는 일이요, 기초선거 무공천은 '새 정치'가 아니라 '반(反) 정치'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선거 무공천을 재고해야 한다. 더구나 공천을 하려면 기초선거 단위별로 경선과정이 필요한 만큼,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초 무공천 #거짓 대 약속 #지방선거 #안철수 #새정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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