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 다니던 부부, '아내'의 억울한 죽음

[임재춘의 농성일기⑨] 콜트콜텍에서 벌어진 일들

등록 2014.03.28 11:27수정 2014.03.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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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나는 종종 이런 꿈을 꾸었다. 그 꿈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기술을 배우면서 돈을 모으면 회사를 만들어 그 지긋지긋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사장들은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기계의 부속품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콜텍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도시가 아니고 외진 시골에 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더했다.


기타 회사 생산라인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최저 임금법 등 1일 작업시간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우만 해도 새벽에 출근하여 저녁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매일이었다. 새벽에 '새마을 작업'이라고 하여 출근을 하면 휴식 시간도 없이 점심시간까지 작업을 한다. 점심을 먹고 퇴근을 일찍 하려고 휴식 시간 없이 작업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작업량을 빨리 채우면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15시 30분이 되면 잔업 신청을 해야 한다. 잔업은 자유인데, 회사는 무조건 강제 잔업을 강요했다. 사람이 살면서 작업만 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개인생활은 하지도 못하고 작업 이외에는 아무 생각을 못하게 했다. 주말은 휴일인데도 무조건 특근을 강요했고, 개인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작업을 해야 겨우 가정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저임금이 나왔다.

기타 회사의 경우는 페인트 가루, 분진이 무척 심하다. 그래서 소모자재 중 하루에 장갑 무조건 한 켤레, 마스크 무조건 1개 이상 써야 하는데, 회사는 무조건 1개씩만 주었다. 하루이틀이면 회사가 지급한 소모자재가 떨어지고, 노동자들은 사비로 사오거나, 아니면 분진을 그대로 마셔가며 일했다.

물론 기타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목재회사는 대부분 비슷한 처지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는 생리휴가와 월차 휴가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약을 먹고 만다. 자식을 둔 여성 조합원은 엄마로서 자식의 소풍, 입학, 졸업을 챙기지도 못하고 인권 및 인격을 무시당하곤 했다. 성희롱이나 욕설까지 들어가며 작업을 했다. 관리자들은 화장실 자주 간다고 동료 직원들 앞에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여성 동료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오늘은 화장이 잘 먹었네?", "이쁘네"라며 성희롱을 했다.

노조가 없던 당시에는 월급 인상도, 해고도 모두 회사 마음대로였다. 그러다 보니 구조조정은 여성 동료가 많이 당했고, 원리·원칙은 없었다. 기준 없는 해고가 다반사였다. 밉보이면 해고됐다. 왜 구조조정의 대상자가 되는지 모르는 동료도 많았다.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되어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목매고 자살한 동료들도 있었다.


급여 조정 시간이 되면 관리자가 (원칙 없이) 등급을 결정하였다. 예를 들면 고참과 신참 차이가 없이 회사의 뜻에 따라 신참이 고참보다 일당이 많은 경우가 많았다. 관리자에게 잘 보이고, 못 보이고로 직장 생활 유지도, 월급도 결정되었다.

노동현장은 너무 열악했다. 이 열악한 조건을 개선 하고자 노동부에 신고하면 다음 날이면 해고를 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2007년 3월 전까지 콜텍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법도 없이, 기준도 없이 기계처럼 일만 했다. 노조가 없던 이 때 당시는 무법 천지였다. 왜 노조를 만들어야 했는지, 그 이유는 너무 분명한 것이었다.  


2014년 3월 10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강성노조 때문에 경제 망한다? 노조 설립 전에는 이랬다

"공장이 어땠는지 써야겠어. 콜트 기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호소문을 돌리면 어떨까? 방송국 같은 데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콜트 기타를 치지 않을 텐데. 모르니까 그러는 거잖아. 알면 그러겠냐고…."

임재춘 조합원이 얼마 전 내게 한 말이다. 유명 뮤지션들은 모델이 되어 콜트 기타를 홍보하고, 홍대 주변에선 콜트 기타를 메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히 목격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 몰라서만은 아니라고. 당하면서도 참고 살았던 당신네들이 있었던 것처럼, 알아도 보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오마이뉴스>에 '농성일기'를 연재한 후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임재춘 조합원 글에는 종종 독한 기운의 댓글들이 달린다. 강성노조가 경제를 말아먹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8년 농성할 시간에 돈이나 벌어 처자식이나 먹여 살리라는 조롱 섞인 훈계도 있다. 임재춘 조합원은 여전히 사람들이 구체적인 현실을 모르니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이번 글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진저리 쳐지는 공장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알면 달라진다는 기대를 안고.

콜텍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김경봉 조합원은 이런 기억들을 떠올린다.

"난 굴뚝 청소 일이 가장 기억나. 굴뚝 청소는 외부업체에게 맡겨야 하거든. 그런데 회사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특근으로 맡긴 거야. 더 싼 비용으로 하자는 거지.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일하다 점심시간에 중국음식을 시키는데, 짬뽕 시킨 사람한테 500원을 따로 내라는 거야. 짜장면보다 500원 비싸다는 거지. 치사한 자식들.

무엇보다, 회사는 나이 들어가는 동료들에게 사표를 강요했어. 사표 쓰지 않으면 고용보험 혜택에서 제외시키겠다 협박하면서. 어떤 부서의 주임도 그 협박에 못 이겨 사표 쓰고 나갔지. 그 사람이 회사 밖에서 회사 간부를 우연히 만났는데 표정이 좋을 리가 없잖아. 인사 안 하고 얼굴 구겼다고 그 후 (같은 회사를 다니는) 그 부인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부인은 이 부서 저 부서 계속 이동배치 됐지. 사람이라면 견딜 수가 없지. 그러다 결국 부인이 목을 매고 자살한 거야."

임재춘 조합원의 글에 나온 "자살한 동료" 이야기다. 이것은 19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2006년까지 콜텍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2000년 250여 명이었던 콜텍의 직원은 2006년까지 100여 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쉬는 시간도 허용되지 않는 강도 높은 노동이 분담되었다. 세밀하게 나눠진 분업 구조 속에서 동료 간의 대화는 적어졌고,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도울 기회도 없었다. 유해한 환경 속에서, 일하다 잘리고 욕먹다 잘리고, 억울함에 나가고, 비참함에 자살할 뿐이었다.

2006년까지 콜텍은 지속적인 흑자를 내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어렵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심지어 회사 출근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직원이 회사에 전화했을 때, 회사는 그 즉시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고도 한다. 해고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은 경영상의 위기 때문이거나 더욱이 강성노조가 만든 결과가 아니다. 당시 콜텍에는 노조가 없었다.

2006년 4월 3일, 콜텍에서 노조가 설립되기 직전까지 그곳은 임재춘 조합원의 증언처럼 법도 기준도 없는 치외법권의 공간이었다. 그 결과 저임금 저비용 구조는 지속되었고, 나날이 경영자들의 금고가 채워지는 '꿈의 공장'일 뿐이었다. 위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위기였다. 생존의 위기, 건강의 위기, 인간 존엄성의 위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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