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은 콜트악기 공장. 주인 잃은 출입증.
최규화
농성장은 고속도로 IC 근처다. 차들은 쌩쌩, 먼지를 남기며 달린다. 임재춘 조합원은 쓸고 닦아도 더럽긴 마찬가지인 농성장 부엌에서 청소를 포기한 지 오래다. 좀 치우자고 한마디 던지면, "냅둬. 또 더러워져. 소용없어. 내가 처음부터 이랬는 줄 아나?"라고 날이 선 반응도 보인다.
주말에 모처럼 가족들이 있는 대전 집에 가면, 집 안은 임재춘 조합원의 눈에 많이 어질러져 있는 모양이다. 집 안이라도 쓸고 닦아 깨끗하게 만들고 싶은데, 그는 부재 중이고 딸들의 손길은 그의 기대에 못 미친다. 모처럼 집에 들어온 아빠가 청소문제로 잔소리를 했다면 안 그래도 마땅찮은 농성에 섭섭함 가득했던 딸들이 아버지에게 가시 돋친 말을 던지겠지.
금요일이면 농성장에서 임재춘 조합원은 '똥줄 타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방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 모습에 "집에 뭐 먹을 거라도 숨겨뒀냐"고 다른 조합원이 핀잔을 던지면 그는 대꾸도 없이 그냥 터미널 방향으로 멀리 시선을 고정해둔다.
올 초까지 콜텍 조합원들은 연극공연이다, 연대투쟁이다 그러면서 주말에도 대전 집에 못 내려가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애타다 일주일 만에 임재춘 조합원이 대전 집에 가면 환대가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다. 딸들은 몇 년째 다른 도시에서 해고자로, 농성자로 살아가는 아버지가 또 얼마나 섭섭하고 불안할까.
그는 대전 집에 도착해 종종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딸들이 없으면 그것으로 섭섭하여, 딸들과 맛난 저녁이라도 먹으면 그걸 자랑하느라. 딸들과 언쟁이 있는 주말, 그런 날은 나의 메시지함에 임재춘 조합원의 절망과 후회의 문자들로 가득 채워진다.
서울고법 패소로 임재춘 조합원이 가장 걱정했던 일은 딸들의 반응이었다. 가족들을 설득할 땐 명분이 있어야 하고, 임재춘 조합원은 그래왔던 모양이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만 나면", "이번 판결만 잘 나면…."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서울고법 판결은 해고노동자들의 패소로 끝났고, 가족들 앞에 면 안 서는 사람을 여럿 만들었다.
그가 며칠 동안 소식 없이 농성장을 비우던 그때, 딸들은 대전 집에 와 있는 그의 집 열쇠와 지갑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리고 딸들은 외출했고 그는 월요일, 화요일이 되어도 인천의 농성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대전 집에 머물러야 했다.
8년차 농성 동안 겪은 가족과의 갈등, 그것을 내가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들 스스로도 가족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그 시간들을.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이 해고가, 이 장기 농성이 가족들의 희생 또한 요구해왔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생계의 책임 앞에 무력해지고, 해고 농성자 가족이란 낙인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투쟁기금으로 집을 내놓고, 또 누군가는 병든 어머니 곁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세월들. 그러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이해를 요구하며 날을 세우고, 이해받을 수 없을테니 말문을 닫고, 단절하고, 싸우고 아프고….
농성자들 중 가족과의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조합원도 있다. 없는 시간 쪼개 더 긴 대화를 하고, 더 많이 져주며, 모처럼 만나면 짧은 여행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개인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가족을 지킨다는 게 점점 더 거대한 소명이 되어간다.
경제적 어려움, 분리된 생활, 사회적 낙인. 그들 스스로 풀어낼 수 없는 난관이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재춘 조합원이 글에서 말했듯, 그것은 한 회사 사장의 탐욕에서 비롯된 일이고, 이 사회의 이치가 만들어 낸 결과이므로. 가족은, 농성자들에게 아픈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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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 싸움이 끝나면 무엇을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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