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사람들끼리 상처 주는 사회, 번민이 큽니다

감정노동자와 감정소비자 사이의 딜레마

등록 2014.03.28 15:35수정 2014.03.2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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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를 없애고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다면 전화 상 감정 소비가 해소될까.
휴대전화를 없애고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다면 전화 상 감정 소비가 해소될까.강현호

아침부터 전화통에 화를 내고 나면 온종일 속이 상하고 머리가 아프다. 누가 잘못을 했고 사과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 불문. 일단 화를 내면 마음이 축난다. 그래서 그날도 꾹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결국 큰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우리집은 아이돌봄서비스를 시간제로 이용해서 아이를 맡기고 있다. 한 달 단위로 신청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해당 날짜에 담당선생님이 집으로 와서 아이를 돌봐주신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면 그만큼 비용을 돌려받는다.

돈 몇 만원 때문에 서로 상한 감정

지난 3월 초순의 일이다. 사정이 생겨 2만 원을 계좌 환불해달라고 일주일 전쯤 요청했고, 해당기관 누리집 상에는 환불이 된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실제 돈이 입금되지는 않았다. 행정상의 오류이리라. 해당기관에 전화를 넣었는데 담당자는 통화 중이란다. 몇 시간 간격을 두고 전화를 걸었다. 걸 때마다 담당자는 통화 중이었다.

겨우 담당자와 연결이 됐을 때, 그녀는 너무나도 밝은 목소리였다. 전화가 왔었다는 것도, 환불이 안 됐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 금세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전화는 오후 6시가 가까워져도 오지 않았다.

오후 6시. 그 시각이 지나면 그녀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연결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계이름 '솔' 톤으로 활기차게 말했다.


"아버님, 내일 입금 될 거예요."

한 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몇 번이고 통장을 확인해 봤지만 돈은 입금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 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고 담당자는 여전히 밝은 목소리였다. 결국 나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돈 몇 만원 때문에 얼마나 전화를 해야 하는 겁니까?"

그 뒤 상황은 생활에서 많이들 겪는 익숙한 장면일 게다. (나는) 소리치고 (그녀는) 사과하고…, 또 소리치다가 잘 좀 하라고 훈계하고 거듭 사과하고 통화는 끝났다. 돈은 1시간이 채 지나서 않아서 입금됐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번민에 빠졌다.

나, '갑질'한 걸까

'이게 뭐하는 짓이냐. 나는 분노 조절 장애일까? 돈 2만 원 때문에 지지리 궁상이다. 어차피 들어올 돈이고 어련히 알아서 해줬을까. 왜 조바심을 내서 서로 아파야 하나? 아침부터 진상 민원인에게 혼쭐이 난 그녀의 하루는 어떨까. 죄짓지 말아야지. 나는 왜 그녀를 괴롭혀야만 했을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문제는 해결 나지 않는 걸까?'

신세가 처량하고 스스로가 쪼잔해지는 게 기분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소위 '갑질'을 한 걸까.

나는 벌써 받았어야 할 돈을 겨우 받았다. 그 액수가 10원이라고 해도 받을 건 받아야 한다. 쩨쩨하다고 해도 그게 맞다. 그럼 그 담당자는? 자신의 잘못이었든 시스템의 오류였든 잘못된 일을 바로잡아 처리했다. 민원인에게 사정을 설명해주고 '미안하다' 소리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침부터 누군가의 화를 받아내야 할 만큼의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걸까. 그게 사람의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건 너무 비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감정 소비의 양과 일 처리 속도(이득)의 비례 관계다. 즉, 감정이 크게 소비되면 소비될수록 일 처리 속도는 빨라진다. 역으로 일이 늦게 처리되면 될수록 당사자의 감정을 더 크게 폭발하기 쉽다.

여기서 '짖지 않는 개가 더 무섭다'는 격언은 쓸모가 없다. 크게 소리치면 칠수록 내 이득은 빨리 돌아온다. 일을 처리해주는 입장에서도 그렇지 않겠는가. '진상'과 '신사' 고객이 있다. 누굴 먼저 떼어내고 싶겠는가? 누구의 요구를 더 빨리 처리하려고 하겠는가?

여기서 딜레마에 빠진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기다릴까?' '나와 남의 감정을 싸잡아 축내는 물귀신이 될까?' '내 것을 내가 받자고 하는데 그건 이기적인 행동인가?' '약자끼리 이러고 살아야겠나?' '나 역시 손님을 대하는 장사꾼이면서 내가 정작 고객이 되니까 얼굴을 바꾸는 거냐? 너무 몰염치 아니냐?'

서로의 감정이 터져 유지되는 직업군

그런데 더 우울한 일은 이런 몹쓸 감정 소비의 공식 때문에 일정군의 직업이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즉, 모든 소비자가 신사라 '진상'이 사라진다면 전화로 영업하고 고객 응대하는 무슨무슨 센터의 직원들은 자신의 책상을 지킬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세상이 그렇게 되면 버튼식 ARS로도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진상'과 '쪼잔한 인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일자리는 더 늘어나는 것 아닐까.

서로의 감정이 터지고, 상처가 나야 이득이 생기는 이 악순환을 어찌해야 할까. 그나마 앞서의 경우에는 일을 처리하는 실제 담당자라서 일말의 책임이라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멀쩡하던 휴대전화가 갑자기 먹통이 되거나, 잘 나오던 텔레비전이 수목 드라마 막 시작하려는데 꺼지거나, 오전 8시 50분 출근길 올림픽대로에서 핸들이 먹히지 않는 차 때문에 하소연을 할 때 우리는 내 감정을 상하게도 만들지만 남을 괴롭히기 쉽다.

꼭 큰소리를 내고, 화를 내기 때문은 아니다. 불만이 섞일 수밖에 없는 목소리고,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누군가에게 그 감정이 전이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애초에 물건을 만든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면 손해를 입는다. 하소연을 할 곳이라고는 그런 전화밖에 없다. 이런 경우가 대다수다. "사장 나와!"라고 해봐야 대기업 사장님들이 나 같은 이를 만나줄 리 만무하다.

감정이 돈으로 치환되는 이 세상의 비정함이 싫다. 하지만 내가 손해 보고 살기도 싫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돈을 많이 벌어 푼돈은 무시할 수 있으면 되는 걸까. 정신의학과를 찾아가서 감정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걸까. 참 답 없는 질문에 답 없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내가 돈 쓴 사람입네' 하고 뻔뻔하게 큰소리쳤던 것을 두고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 구차한 변명이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될 일을 성마르게 달려들어서 여러 사람을 우울하게 했다. 얼굴은 모르지만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 변명과 미안함과 같이 살아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혹시 이 문제에 답을 찾으신 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감정노동 #감정소비 #텔러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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