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학교>(김정욱 외 11명 지음, 반비, 2014)
반비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식탁을 차리고 싶은 주부, 건강검진으로 인한 피폭 위험을 염려하는 직장인들, 방사선에 피폭되는 경로를 알아 피폭을 최소화하고 싶은 시민들, 태양광 발전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핵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법률적 분쟁에 임하게 될 재판관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꼭 읽어봐야 하고, 실제로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한데 모은 책이 나왔다. 후쿠시마 핵사고 3주기를 맞아 발간된 <탈핵학교>(김정욱 외 11명 지음, 반비, 2014)다.
이 책은 핵발전과 방사능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부터 의학적, 공학적, 역사적,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관점 등 전방위적인 관점에서 핵발전을 조명하고 있다. 총 12강의 목차로 구성된 책의 세부 제목을 살짝 들여다 보자.
'건강검진이 피폭 위험을 높인다', '우리 핵발전 시스템과 그 안전을 둘러싼 논란들', '방사능의 공포, 먹거리는 문제 없나' 등 방사능 안전 문제를 비롯해 '그날 이후, 후쿠시마 아이들의 오늘', '원폭피해자 2세로 살아간다는 것' 등과 같은 실제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에너지 전환, 왜 지역이 주도해야 할까' 등의 대안과 해답을 찾아가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이 책의 바탕이 된 것은 책 제목과 똑같은 실제 '탈핵학교'의 강의들이다. 탈핵학교는 일본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사고 이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핵에너지와 방사능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알림과 동시에 시민전문가들을 양성하고자 2012년 7월에 첫 문을 연 강의공간이다.
이를 위해 '수조 원대의 이익을 챙기고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수백 억대의 홍보비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온 국민을 거짓말로 세뇌시켜 왔던 핵 추진파에 맞서, 과학자부터 법학자· 의사· 종교인·탈핵운동에 헌신해온 여러 활동가들이 대항전문가로, 탈핵전도사로 모였다. 그리고 "탈핵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인식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탈핵사회의 모습을 구상"할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해 수강생을 모았다.
이렇게 하여 탈핵학교는 2012년 7월 개교 이래, 2014년 4월 현재까지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7기까지 진행되었다. 지방에서도 순천, 창원, 청주 등지에서 비슷한 탈핵학교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탈핵학교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7기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하여, 탈핵학교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방사능의 위험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가 된 시대여서 핵발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시민이 점차 늘어난 덕분"이라고 말한다.
탈핵학교에서 제대로 배우는 '핵발전' 이야기 이 책은 그간 열린 탈핵학교의 여러 강의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추려낸 것이다. 책 전체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알찬 내용이지만,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우선 건강검진에 의한 방사선 피폭을 다룬 의사의 강의(1강, 주영수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충격적이다. 일반인 1인당 연간 방사선 노출 허용 선량에 관한 국제적인 기준치는 1mSv(건강영향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행정관료가 관리 가능한 기준치이다. 자연방사선량을 제외하고 인공적으로 노출되는 방사선만을 기준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비교적 좋은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은 매년 1회씩 종합건강검진을 받는데, 이때 흉부 CT촬영, 유방암 단순 촬영만 해도 7mSv를 넘는다. 자연방사선 때문에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노출되는 3mSv를 합치면 1년 노출량이 10mSv까지 이른다. 여러 부위에 엑스선, CT촬영을 추가로 하게 되면 핵발전소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제한선량만큼 피폭될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증상과 증후가 있어서 병원을 찾거나, 그러한 증후가 있다고 추정되어 의사가 전문적 판단 하에 권고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건강상 아무런 문제없던 평범한 직장인과 일반인이 관행적으로 실시되는 반복적인 건강검진으로 인해, 오히려 아무런 이득도 없이 거꾸로 암 발생 확률을 꾸준히 높일 수 있다. 게다가 건강검진을 통한 암의 조기발견과 치료가 암 생존율을 높인다는 근거 역시 없다고 한다.
초중고교의 신체검사 때나 병원에 가면 너무도 자주 찍게 되는 흉부 X선 촬영도 그 효과가크지 않은데 관행적으로 찍고 있는, 혹은 찍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음식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근로자들이 취업시 보건증을 제출해야 함은 물론이고, 6개월에 한 차례씩 보건증을 갱신하도록 되어 있는데, 보건증을 발급받으려면 흉부 X선 검사가 필수적이다. 기침도 안 나오고 폐나 호흡기에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않는 사람까지도 이를 거부할 권리조차 제약당한다. 그래서 주영수 교수는 "관행적인 검사를 받지 않을 권리도 환자 혹은 수검자에게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핵발전소 주변 지역 여성의 갑상선암 발생율이 그렇지 않은 지역의 여성에 비해 2.5배 높다는 점과 발전소 종사자들의 염색체 이상 수준이 높다는 점도 언급한다. 따라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과 노동자들, 특히 더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정부 차원에서 꾸준히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부들의 관심사인 먹거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2강에서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가 냉장명태, 냉동고등어, 냉장 대구, 활돌돔, 활방어에 일본산이 많거나 원산지 구분이 어려우므로 먹지 말 것을 권한다. 국내산이더라도 표고버섯과 노루궁뎅이버섯은 직접 측정해본 결과 방사성 세슘이 나왔으니 역시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핵발전을 법과 인권의 측면에서 조명한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강의(6강)도 인상적이다. 그는 일반 시민들이 핵발전을 과학기술의 문제 혹은 경제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시민 개개인의 평화적 생존권과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인권문제라고 말한다.
예컨대, 미국 상원에 제출된 9·11 테러 공격에 관한 공식보고서에 실린 증언에 따르면, 보잉 767기를 몰고 뉴욕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했던 모하메드 아타는 본래 허드슨 강변의 인디언포인트 핵발전소의 핵반응로 두 곳도 타격 목표로 삼았었다. 발전소로 향하는 도중 미사일이나 전투기로 저지될 수 있다고 판단해 계획을 수정하긴 하였지만,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핵발전소는 일반 시민 개개인의 평화적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핵무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김정욱 교수 역시 북한의 무력도발을 염려하고 핵개발을 규탄하는 정부가 핵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며, "북한이 핵발전소를 폭격할 위험을 고려한다면, 나라 안에 수십 기의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임의의 적국에 수만 기의 핵폭탄을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이계수 교수에 의하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 청소노동자를 모집하는데 정규직 노동자는 아무도 가려하지 않아,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일본은 하청구조가 10단계 이상 넘어가는 경우도 흔하다고 하니 위험한 노동을 도맡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은 심각한 인권 문제가 된다.
핵발전소 원료 채굴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핵발전소 안에서뿐 아니라, 핵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을 채굴하는 과정부터 인권 침해는 발생한다. 핵발전 기업들은 외국의 광산에서 우라늄을 채굴하면서, 현지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는 책임지지 않았다. 심지어 많은 노동자들이 무섭게 말라가거나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죽어가는데 현지병원은 병명을 에이즈나 말라리아로 진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도 심각한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핵발전소와 관련시설은 지역적으로 가장 힘없는 지역에 집중되면서 마을에서 오래 터잡고 살던 노인과 지역주민들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 밀양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교수는 법과 인권의 이름으로 핵발전에 반대한다면서, 원자력진흥법 폐지운동, 탈핵기본법 제정, 행정부가 마음대로 하는 것을 국회가 제어할 수 있도록 국회의 역할과 권한을 찾는 일, 정보공개 요구 운동, 탈핵헌법 제정 운동과 각종 재판투쟁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탈핵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일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시민사회의 자각과 강력한 반핵운동이 오랜 핵발전의 역사와 관성을 깨뜨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독일 시민들은 직접 대안을 활발하게 제시해왔다. 젊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직접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기술을 만들어냈고,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셰나우 전력회사를 만들어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만든 전력을 마을에 공급했다. 반핵운동의 기초가 될 연구작업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생태연구소나 부퍼탈연구소 같은 민간연구소는 실제 시민의 후원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충분히 이런 길을 갈 수 있다. 책에 제시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이상의 개발은 이제 결코 허용되어선 안 된다. 무한 성장 · 무한 소비의 욕망을 끊고 경제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 자원이 순환되며 소박하지만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미래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풍력 ·태양광 · 태양열 · 바이오매스 ·지열 · 소수력 등 재생에너지의 적극적인 개발과 동시에, 국토와 도시의 구조를 바꾸고 시민의 생활양식을 개선해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또 꼭 필요한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해결하되 근본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화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과 시민이 에너지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탈핵은 그 자체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 가능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탈핵학교의 강사들이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멈추자거나 전기 없이 살자거나 촛불 켜고 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을 안전하게 폐쇄하고 탈핵 에너지전환 시대를 충분히 준비하기 위해, 10년 혹은 20~30년 후에 모든 핵발전소를 멈출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과 국민적 논의를 지금 당장 시작하자는 것이다.
추천사를 쓴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설마 사고가 나겠어,'하며 요행을 바라는 심리나 '사고가 나면 어쩔 수 없지'하는 무기력감은 핵 마피아들을 살찌우는 거름이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다. 그것은 가능하다. 탈핵과 핵폭탄 폐기는 의지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탈핵의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답한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탈핵은 그 자체로 대안이다. 탈핵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우리는 길을 닦아야 한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핵 마피아들에게 저당잡힐 수는 없다."
탈핵 학교 - 밥상의 안전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김익중 외 지음,
반비, 201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9·11테러 목표물, 세계무역센터 아닌 핵발전소였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