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창경궁 나들이 어때요

[서울 산책] 벚꽃 식재와 동물원 수난 이겨낸 조선왕실의 궁궐

등록 2014.04.04 15:23수정 2014.04.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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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후, 창경궁 옥천교 주변에 옥매화며 앵두, 살구나무꽃 등이 만발했다. 흩날리는 꽃잎에 잠시 황홀경에 젖는다.
2일 오후, 창경궁 옥천교 주변에 옥매화며 앵두, 살구나무꽃 등이 만발했다. 흩날리는 꽃잎에 잠시 황홀경에 젖는다. 전은옥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앵두, 살구나무꽃, 옥매화, 제비꽃, 돌단풍, 미선나무…. 지금 창경궁은 '꽃대궐'이다. 봄이 만개했다. 넓은 경내에는 봄햇살이 충만하다. 연못 춘당지에는 원앙들이 떼 지어 다닌다. 여기저기서 나들이객의 감탄사가 연신 나온다.

지난 2일 오후 2시께, 방금 봄소풍을 마친 듯 새내기 중학생들이 창경궁을 나온다. 돌아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뒤로한 나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정문인 홍화문에 들어선다. 입구에서 명정전(明政殿)으로 가는 길에 놓인 옥천교(玉泉橋) 주변으로 봄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살구나무꽃, 앵두꽃, 옥매화…. 입구부터 설렌다.


풍경에 취한다

 경춘전 뒤뜰 화계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앵두와 진달래, 개나리꽃이 피었다. 그 빛깔이 조화롭고 화려하다.
경춘전 뒤뜰 화계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앵두와 진달래, 개나리꽃이 피었다. 그 빛깔이 조화롭고 화려하다. 전은옥

휠체어 탄 노모를 밀어주며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정다운 모녀,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도시락까지 싸들고 봄소풍 나온 주부들, 사진기를 들고 출사 나온 아저씨와 언니 오빠들. 살구꽃·벚꽃잎의 화려운 춤사위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여대생 삼총사와 연인들.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꽃구경 삼매경이고, 저곳에서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열심히 창경궁 해설을 듣는 열공파들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흙장난하는 아이 곁에서 잠시 쉬어가는 엄마 아빠들이 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쉴 수 있도록 개방한 통명전(通明殿)과 함인정(涵仁亭)에는 솔솔 봄바람 시원하게 불어온다. 걷다 지친 이와 춘곤증에 잠시 졸음이 몰려오는 나들이객이 천천히 쉬어간다. 뒤쪽 언덕에 올라 경내 풍경을 조망하며, 멀리 남산타워까지 한 폭에 들어오는 풍경에 잠시 취한다. 마음 속으로도 봄 바람이 불고 봄 햇살이 비친다. 마음까지 씻겨 내려가는 풍경이다. 

 창경궁 환경전과 소나무 옆 살구나무 그리고 멀리 보이는 남산이 한폭에 들어오는 진풍경.
창경궁 환경전과 소나무 옆 살구나무 그리고 멀리 보이는 남산이 한폭에 들어오는 진풍경. 전은옥

언젠가 근처에서 회의를 마치고 잠시 무거운 숙제는 뒤로 미룬 채 정다운 이들과 함께 웃으며 걸었던 5월의 그 길, 오래 전 중학교 역사과목 방학숙제로 서울시 근현대사 탐방차 찾았던 땀나고도 즐거웠던 풋풋한 열다섯 살 8월의 그 길, 슬퍼하고 아파하던 벗을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곁에서 묵묵히 걸으며 벗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던 10월의 그 길, 평소라면 출근해 있어야 할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걸었던 붉게 물든 11월 말의 그 길.


과거의 기억들이 함께 밀려오지만,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이 풍경, 지금 내 곁에 함께 걷고 있는 정다운 이들, 오늘의 이 봄바람 봄햇살 봄내음이다.

아름답긴 하지만... 몇 차례 고난을 겪었던 궁


 2일 오후, 창경궁 춘당지를 헤엄치는 흰뺨검둥오리들.
2일 오후, 창경궁 춘당지를 헤엄치는 흰뺨검둥오리들. 전은옥

조선 성종의 태(胎)를 묻었다는 성종태실을 지나 눈에 익은 연못 춘당지(春塘池)에 이르니, 먹이주는 한 사나이 덕분에 한 곳으로 몰려든 흰뺨검둥오리 무리가 장관이다. 기대하지 못한 연못 주인들과의 뜻밖의 만남에 반가움과 기쁨이 밀려온다. 오리들 곁에서 문득 갈증이 밀려와 가방 속 물을 꺼내 목을 축이고, 꽃길 숲길 연못길을 벗어나 궁 건물 순례를 위해 다시 조선 궁궐의 역사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복궁·창덕궁·덕수궁과 함께 서울의 4대 궁 중 하나로 꼽히는 창경궁(昌慶宮, 사적 제123호)은 성종 14년(1483)에 선대의 왕인 세조·예종·덕종의 생존한 세 왕후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새롭게 창건한 궁이다.

이때 지은 집이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사성각 등이다. 이 궁궐은 한때 2000칸이 넘는 대규모의 궁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된 뒤에도 몇 차례 대화재로 내전이 불탔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에서 숭문당으로 가는 길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에서 숭문당으로 가는 길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관람객들. 전은옥

 창경궁 내 함인정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
창경궁 내 함인정에서 쉬고 있는 시민들.전은옥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후에 재건된 명정전과 그 회랑, 명정문·홍화문 등의 외전 그리고 1934년 순조 때 다시 지어진 숭문당과 함인정·환경전·경춘전·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등의 내전이다. 이중 명정전과 명정문·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며,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창경궁의 특징은 정문부터 건물까지 동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궁을 동향으로 지은 이유는 예로부터 대비가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동쪽에 두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경궁의 전체적인 배치는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높고 낮은 지형은 그대로 두고, 꼭 필요한 곳만 골라서 집터를 잡고 정원을 꾸민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1986년이 돼서야 제모습 찾은 창경궁

 2일 오후, 화사한 창경궁의 봄꽃 아래 추억을 남기고 싶은 여대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2일 오후, 화사한 창경궁의 봄꽃 아래 추억을 남기고 싶은 여대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전은옥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이 창경궁의 많은 건물을 헐어 버리고 이곳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 시켰다. 또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끊어 도로를 설치하고, 궁 안에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벚나무 수천 그루를 심고 벚꽃놀이를 펼쳤다고 한다.

1984년까지 바로 이 자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이었다는 그 창경원이 있었다. 해방 이후로도 오랫동안 조선의 궁궐 창경궁은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창경궁 복원 계획에 따라 동물원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지고 궁궐로 정비·준공된 것은 1986년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에 벚꽃놀이를 오는 상춘객들이 넘쳐나고, 동물원이 있었으니 40대 이상이라면 '창경원' 시절의 동물원을 추억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다행히 조금 늦게 태어나 우리 궁궐 안에 동물원이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일까.

일찍 찾아든 봄이 꽃과 따스한 햇살로 만개한 창경궁. 그곳에 또 다른 누군가와 다시 찾아갈 그 날을 기약하며 꽃향기 가득했던 달콤한 봄날의 외출을 마쳤다.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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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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