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석빙고 건성비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현장] 논둑에 방치된 석빙고 건성비

등록 2014.04.06 11:24수정 2014.04.06 11:24
3
원고료로 응원
<영조실록> 1769년(영조 45년) 12월 21일자에는 다음의 기록이 나온다.

홍봉한이 말하기를, "빙고(氷庫)에 들어가는 재목(材木)은 허비되는 것이 매우 많은데, 만약 석빙고(石氷庫)를 만든다면 오랫동안 비용을 줄이는 계책이 될 것입니다. 청컨대 내빙고(內氷庫)부터 시작하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였다.


이보다 앞서 1714년(숙종 40) 대구에 대구 판관 유명악이 석빙고를 만든 이래 경상도 여러 지역에 석빙고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여러 석빙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현풍석빙고(보물 제673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현풍석빙고는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1738)와 안동석빙고(보물 제305호, 1737∼1740)·창녕석빙고(보물 제 310호, 1742) 등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후기 석빙고의 모범이라 한다.

1976년에 발간한 <향토문화사(달성)> 311쪽에는 '이조 초엽에 빙고전이란 직제가 있을 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나 확실한 축조 연대는 문헌에 남아 있지 않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갖고 있던 분이 '문공부서 수거해 간 비석?'이라 메모해 두었다. 당시 이 비석을 문화공보부에서 수거해 간 것으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1982년 11월 석빙고 주위의 보수작업 때 '숭정기원후2경술11월(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이 쓰인 건성비(建城碑)가 발견됨으로써 현풍석빙고가 1730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현풍석빙고(보물 제673호)  원호루와 사직단이 위치한 상리 산 위에서 직은 사진, 석빙고 앞으로 지금은 현풍천이라 부르는 구천(龜川)이 흐른다.
현풍석빙고(보물 제673호) 원호루와 사직단이 위치한 상리 산 위에서 직은 사진, 석빙고 앞으로 지금은 현풍천이라 부르는 구천(龜川)이 흐른다. 이재두

석빙고 건성비는 어디에 있을까? 현풍석빙고 주변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 비석은 대구 달성군 현풍면 상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도로 공사가 한창인 논둑에 방치되어 있다. 현풍석빙고에서 원호루와 사직단이 위치한 상리산을 넘어 달성문화원 뒤편논 가운데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석빙고 건성비             石氷庫 建成碑
현풍현감이후등           玄風縣監李侯等
숭정기원후2경술11월    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


1730년(영조 6년) 당시 현풍 현감은 이우인(李友仁)이었다. 석빙고 건성비의 현풍현감 이후는 당연히 이우인으로, 1728년부터 1732년까지 현풍 현감을 지낸 인물이다.
<달성의 금석문>(2013)에 의하면 뒷면에는 도감유학 곽재완, 감관 간관 곽천숭, ○수통정 승 호왕, 사령 김만천, 호장 김성달, 나규무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논둑에 방치된 석빙고 건성비 이 비석은 대구 달성군 현풍면 상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도로 공사가 한창인 논둑에 방치되어 있다.
논둑에 방치된 석빙고 건성비이 비석은 대구 달성군 현풍면 상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도로 공사가 한창인 논둑에 방치되어 있다.이재두

석빙고 건성비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당연히 현풍석빙고 앞이어야 한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한다. 기존의 죽어 있는 문화유산에 숨결을 불어 넣어주어 과거와 현재가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한다.

현풍석빙고는 대구 역사 탐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임에도, 이야기가 부족하다. 하루 빨리 건성비를 석빙고 앞으로 옮겨 문화관광해설사나 답사 진행자의 이야기 거리를 보태 주면 좋겠다. 냉장고 정도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석빙고 건성비 1982년 11월 ‘숭정기원후2경술11월(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이 쓰인 이 비석이 발견어 현풍석빙고가 1730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석빙고 건성비1982년 11월 ‘숭정기원후2경술11월(崇禎紀元後二庚戌十一月)’이 쓰인 이 비석이 발견어 현풍석빙고가 1730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이재두

건성비의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글자들을 읽어가면서 이야기할 때 답사의 맛이 살아난다. 건성비 앞면을 보면서 숭정은 명나라 의종의 연호라 하면서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청 황제의 연호를 사용하지만, 지방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재조지은(나라를 다시 세운 것과 같은 은혜)에 대한 감사로 명나라 연호를 이어가고 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연호를 통해 1730년이라는 건성 연도를 알게 되었음도 물론 설명할 수 있다.
#현풍석빙고 #석빙고 건성비 #숭정기원 #1730년(영조 6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년째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3. 3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4. 4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5. 5 관광객 늘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제주 사람들이 달라졌다 관광객 늘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제주 사람들이 달라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