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대규모 명예퇴직을 시행한다고 지난 8일 밝혔다. 이번 명예퇴직은 노사 합의에 따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 2만3천명을 대상으로 한다. KT의 명예퇴직은 이석채 회장 때인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KT 사옥 모습.
연합뉴스
"스스로에 대한 포기, 자포자기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 회사 분위기는 침울합니다"전화기로 흐르는 음성이 살짝 떨렸다. KT 상담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A씨는 지난 8일 오후 회사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사내 방송을 통해 KT의 구조조정 계획을 알게 됐다.
"어제 언론을 통해 무슨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내용과 기준, 대상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사내 방송 내용을 듣고 다들 혼란에 빠졌죠('멘붕'이라고 표현)"KT사측과 한국노총 KT노조는 8일, 15년 이상 근속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명예퇴직과 분사 등 사업합리화, 복지제도 축소 등에 합의했다. 이 계획을 직원들은 오전 사내 방송을 통해 알게 됐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에 따르면 한국통신 민영화가 본격화된 1998년 이후 7번째 구조조정이다. 그리고 5000명 이상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1998년 5184명을 시작으로 2003년 5505명, 2009년 5992명으로 5년 주기로 벌어졌다. 마지막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횟수로 5년째가 되는 이번 구조조정은 규모가 최소 6000명 정도 될 것이라는 것이 여론의 관측이다.
"다들 불안한 상태입니다. 정해진 미래는 없고, 잔류를 했을 때 닥칠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잖아요. 40대 후반에 퇴직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지금 자영업자들도 폐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자녀들이 대학생과 고등학생일 무렵의 40대 후반~50대 중순의 직원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이번 명예퇴직에 중년 직원들의 불만은 크다. 살아 남았다 해도 자녀 대학 학비 보조 폐지 및 중고등학비 축소, 복지포인트 축소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은 중년 생계에 막대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을 보호해야 할 KT노조가 특별명예퇴직에 합의했다는 것에 A씨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노조는 노사 간의 핵심적인 문제인 것을 알면서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도 피하잖아요. 노조가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지금 노조가 노동조합이라고 볼 수 없어요. 답답한 마음입니다"
KT직원, "경영실패를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전북 지역에서 시설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 B씨는 오전, 자신의 차 안에서 사내 방송을 듣고 KT 구조조정의 내용을 알게 됐다. 그 역시 8일 뭔가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전날 알았지만 감만 잡은 상태였다. 그러나 사내 방송을 통해 자신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B씨는 15년이 넘은 재직자이다.
"참담했습니다. KT라는 회사에서 15~20년 넘게 근무한 이들인데, 젊음을 다 바쳐 고생한 분들을 이렇게 내쫓는 것은 잘못된 선택인 것 같아요. 그동안 경영실패를 직원에게 전가하는 것 아닌가요"처음 사내 방송을 듣고 멍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크게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확인해보니 이번 구조조정은 과거 한국통신 시절의 색을 다 빼겠다는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KT 전화국 이미지 자체를 없애는 상당히 큰 규모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아직 실감이 나지는 않고, 다들 당황스러워 하는 분위기예요. 그렇지만 오늘이 지나고 현실로 다가 온다면 문제가 커질 것 같아요"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옛 KT(유선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KT가 합리화 분야로 정하고 계열사에게 위탁하겠다는 업무(영업 및 개통, AS·플라자 업무)는 기존의 KT 출신 인력들의 업무였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결코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B씨는 "그만두거나 자회사로 옮겨갈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이전 사례로 볼 때 어떤 압박이 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멀리 보내겠죠"라고 말했다.
KT는 여러 언론을 통해 이번 명예퇴직이 희망퇴직이라고 강조했지만, B씨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B씨는 "일부 지역본부 건물 옥상 출입문이 잠겨 있는 사진을 동료들이 보내왔다"면서 "많은 직원들이 KT의 발표에 당황하는 분위기"라며 기자와의 통화를 마쳤다.
한편, 은수미 의원은 8일 논평을 통해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은 의원은 "KT 경영위기의 본질은 민영화 이후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한 고배당 경영, 임직원 이익분배구조의 불평등에 있다"면서 "그런데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 예전과 같이 인력구조조정과 직원 복리후생 축소를 통해 경영내실화를 이루겠다는 황창규 회장의 인적쇄신 작업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 의원은 "모든 고통과 부담을 근로자들에게 전가하는 KT식 인적쇄신은 노동강도 증가, 전환배치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서 '죽음의 기업'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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