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헤르모로코의 시작인 탕헤르
송진숙
북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리는 모로코. 영화 <카사블랑카>로 친숙한 나라지만, 모로코를 소개하는 한국어 가이드북은 한 권도 없다. 돌아다니다 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모로코로 떠나기로 한 전날까지도 얻은 게 없었다. 운 좋게도 세비야에서 우리와 같은 방에 묵었던 처자 한 명이 모로코를 다녀왔다기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모로코는 호객 행위가 심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지 말라며 본인이 묶었던 숙소 이름과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 배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비행기를 알아보란다. 그러나 당장 내일 떠나는 비행기에는 자리가 없었다. 딸은 너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고 걱정하며 밤새 인터넷을 검색한다. 나는 배를 타고 가는 방법만 찾아 놓고 잠을 청했다.
설마 우리가 마약사범?모로코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스페인 최남단의 해안도시 타리파로 가야 한다. 프라도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타리파까지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유럽이 아닌 아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3시간 반 만에 타리파에 도착했다. 검색한 바로는 타리파에서 탕헤르까지 가는 배는 매시 정각마다 있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5분 전 오후 1시. 캐리어를 끌고 뛰다시피 걸어서 줄을 섰지만 1시에 출발하는 타리파행 페리 매표는 우리 앞에서 끊겼다.
발을 동동 구르며 매표원에게 사정을 해보았지만 눈도 끔쩍하지 않고 창구를 닫는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배인 오후 4시에 출발하는 페리 티켓을 끊었다. 대합실에 앉아 인터넷을 하며 3시간을 때우고 나서야 승선을 했다.
지중해는 색깔이 곱다. 에메랄드빛이란 이런 걸까. 바다를 제대로 감상할 시간도 없이 바로 탕헤르에 도착했다. 맑은 날이면 스페인에서 모로코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 그런지 겨우 50분 걸렸다. 배를 탈 때는 별다른 검사 없이 여권만 확인하더니 내릴 때는 꽤 까다롭다. 보안검색대에서 엑스레이에 찍힌 화면을 보더니 대기하란다.
다른 승객들이 모두 통과한 뒤에야 우리의 짐을 검사했다.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하여 내 것부터 열었는데 대충 확인하더니 통과를 시킨다. 뒤이어 딸이 캐리어를 열자 짐을 하나하나 뒤진다.
남자 직원 둘은 딸이 챙겨온 로션 샘플들을 보며 이건 뭐냐며 하나하나 묻더니 지퍼백 속의 하얀 가루를 가리킨다. 이게 뭐냐고 물어서 베이킹 소다라고 대답했으나 알아듣지 못한다. 어디에 쓰는 것이냐고 묻기에 설거지와 세탁 및 냄새 제거에 쓴다고 말했으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긴장하니까 쉬운 영어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딸은 영어사전을 검색해 가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직원들은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직원들은 자기네들끼리 상의를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를 마약사범으로 오해하는 건가. 여기서 여행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몸에 땀만 흐른다. 딸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나.
잠시 후에 여자 직원이 왔다. 우린 다시 이건 베이킹 소다라며 빵 구울 때도 쓴다고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설명했다. 여자 직원은 가루를 조금 찍어서 맛을 보더니 소다잖아 라며 픽 웃는다. 그리고선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가라고 한다. 30여 분 만에 풀려났다. 휴! 십년감수 했네. 아프리카까지 와서 하마터면 감옥 갈 뻔했다!
이제 마라케시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페리 터미널에서 기차역까지는 제법 멀다. 택시를 잡았더니 거리가 5Km나 된다며 1인당 2유로씩 내라고 한다. 흥정이라면 인도에서 충분히 겪어 본 우리이기에 합해서 2유로로 깎았다. 탕헤르역에서 마라케시행 열차 티켓을 구입했다. 오후 8시 반에 타서 오전 6시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다. 모로코에서는 또 어떤 여행이 기다릴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누굴 호구로 아나? 길 알려주고 1만5천 원 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