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학여행 안 보냈으면..."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인터뷰] 하정미 부산장신대 교수... "희생자 가족 혼자 두면 안 돼"

등록 2014.04.24 22:06수정 2014.04.2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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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미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 가운데 '죄책감'을 핵심적인 문제로 꼽았다. 자살예방 분야를 전공한 하 교수는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현재 심리상담실을 운영중이다.
하정미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 가운데 '죄책감'을 핵심적인 문제로 꼽았다. 자살예방 분야를 전공한 하 교수는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현재 심리상담실을 운영중이다. 남소연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기자, 자원봉사자, 공무원, 경찰, TV를 보고 있는 국민들까지도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그 모두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죄책감이다."

하정미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가족들이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 가운데 '죄책감'을 핵심적인 문제로 꼽았다. 그는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들은 그동안 자기가 잘못했던 게 다 생각난다"라며 "일반 국민들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하지 않나? 가족들은 그 감정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수학여행에 안 보냈으면 사고가 안 났을텐데' '내가 그 학교에 보내서 사고가 난 것이다' 같은 비합리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이 많이 나오면서 사고에 어떠한 책임도 없는 학부모들이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하 교수는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이틀째 심리상담실을 운영중이다. 자살예방 분야를 전공한 하 박사는 인터뷰에서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찾아왔다"라며 "가족들이 워낙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많이 찾아오시지는 않지만, 몇 분이 찾아와 상담했다. 가족들에게는 지금 정신적 치료가 가장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분노·황망함 두 달 이상 가면 진단 받아야"

23일 오후 5시 현재 세월호 참사 실종자는 152명이다. 며칠 동안 희생자들의 시신이 다수 수습되면서 가족들 상당수도 체육관을 떠났고, 약 300명 가량의 가족들이 남아 있다. 이들은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장시간 불편한 곳에서 생활하면서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하 교수는 가족들의 정신적 상태와 관련해 "처음에는 큰 분노를 느끼고, 그것을 표출할 대상을 찾게 된다"라며 "그 후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부모님들의 경우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를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살아 왔는데 그것이 빠져 버리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고 황망한 상태에 이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여기 계신 거의 모든 분들에게 심리상담이 필요하다"라며 "지금 우울하고 힘든 것은 병이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와 같은 분노와 황망함에 찬 상태가 두 달까지 갈 수는 있지만, 그 이상 계속된다면 병으로 인식하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하 교수는 실제 현장에서 상담한 가족들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한 분은 영어로 번 아웃(Burn out), 완전 소진 상태였다"라며 "더 이상 울 수도 없고,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아주 위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또다른 가족 한 분은 자신보다 다른 가족들의 상태를 걱정했다"라며 "부인이 많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지 물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실제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지는 못하다. 현장에는 하 교수의 상담실과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운영하는 상담실,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가족돌봄서비스 등이 있지만 이용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실종자 가족이 상담 받는 경우는 하루에 2~3건에 불과한 수준이다.

하 교수는 "이곳에 와서 첫 상담 의뢰자는 기자였고,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많이 상담을 요청해 온다"라며 "가족들은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정신 상담에 대한 사회 인식이 좋지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참여가 저조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사회적 낙인을 찍는데, 그런 것에 두려움이 남아 있으면 상담을 받을 수 없다"라고 적극적인 상담 요청을 강조했다.

"가족들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하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미국 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났을 때, 실제 그 현장에 있었던 1차 접촉자,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2차 접촉자, 그 가족들인 3차 접촉자까지 모두가 정신 상담을 받는다"라며 "재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체계적으로 피해자들의 정신 상담을 준비하고 민간은 자원봉사로 참여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상담에 관한 인식 전환뿐만 아니라 이를 국가적으로 준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 교수는 주변에서 실종자와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일단 혼자 두면 안 좋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분이나, 우울증 내력이 있는 분들은 절대로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라며 "매일매일,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주변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말을 할 때, 안타까움이나 슬픔을 표현 할 때도 가족들이 상처가 되지 않게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특히 희생자나 가족들에 대해 뒷말이나 가족들이 모르는 곳에서 잘못된 내용으로 수군거리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꼭 하고 싶은 한마디로 "결코 당신 탓이 아닙니다"를 꼽았다.

하 교수와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학생들이 운영하는 심리상담실은 오는 26일까지 현장(진도체육관 2번 게이트 앞)에서 운영될 예정이다.
#세월호 #세월호 침몰 #진도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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