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정원 간첩수사도 적법절차 지켜라"

[공판분석] '유우성 사건' 항소심도 '무죄'...모욕과 망신도 '가혹행위' 판단

등록 2014.04.25 22:25수정 2014.04.2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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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간첩혐의 '무죄'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5일 오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유우성 간첩혐의 '무죄''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5일 오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권우성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즉, '유우성이 간첩이냐 아니냐'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 7부)의 판단은 '증거가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재판부는 유가려씨에 대한 수사과정의 불법행위, 특히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내 구금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이 2007년 6월부터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수집한 유력한 증거는 복수의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유우성을 목격했다'거나 '유우성이 보위부와 연계돼 있다'는 진술이었다. 그러나 보위부 포섭, 밀입북, 탈북자 정보 전달에 대해선 유씨 동생 유가려씨가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한 진술과 지난해 3월 4일 증거보전절차 진술이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증거였다. 

유가려씨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가 단순한 참고인 조사가 아니라 사실상 간첩 공범 피의자에 대한 조사였다는 점, 따라서 진술거부권을 알리지 않고 작성된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판단은 1심과 같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유가려씨가 화교임이 밝혀진 2012년 11월 5일 이후에도 줄곧 국정원 합신센터에 수용돼 조사받은 사실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지원법이 국정원장에 부여한 재량권을 이탈,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유가려씨를 CCTV와 밖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이 달린 독방에 수용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허용하지 않은 점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부당한 장기간의 구금상태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수사관들이 '회령화교 유가리'(북한에선 '유가리'로 불렸다)라고 쓴 표찰을 유가려씨 목에 걸고 다른 탈북자들 앞에 서 있게 한 것도 모욕과 망신을 주고 심리적 위축감을 준 가혹행위로 판단했다. 또 유가려씨가 수차례 변호인 접견을 거부한 것도 '자백하면 오빠와 함께 한국에서 살게 해준다'는 수사관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같은 내용은 위법절차를 통해 나온 유가려씨의 진술은 진실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관행처럼 행해지던 국정원의 '합신센터 장기수용 조사'는 더 이상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합신센터 내에선 법이 정한대로 탈북자로서 보호할지만 조사하고, 범죄수사를 할 경우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고 변호인 접견권을 보장하는 등 간첩 혐의 수사도 적법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유가려씨의 증거보전절차 진술도 증거가 되지 못했다. 당시의 증인신문조서엔 이 절차가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조서 내에 판사가 비공개 결정과 그 사유를 공지한 부분이 없다. 헌법은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비공개 결정에 대한 판사의 선고가 없었다면 피고인이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원천봉쇄 당한 것으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판단이다.

탈북자 진술 의심 "생존하기 위해 의도적 허위 진술 가능성"


'북한에서 유우성을 목격했다'는 탈북자들의 진술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신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07년 여름에 유우성씨를 북한 회령에서 목격했다는 탈북자의 진술에 대해 재판부는 "전에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잠깐 봤다는 내용을 6년이 지나 구체적으로 진술한 건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유씨 아버지가 이미 회령 집을 매각하고 중국으로 나온 2011년 여름과 2012년 봄에 회령 집에서 유씨를 목격했다는 탈북자 증언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탈북자 진술 신빙성 입증을 위해 검사는 항소심에서 정신감정서를 제출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용했다. '극한의 위기감과 스트레스로 생존하기 위해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된 부분을 인용한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서 생존하기 위해 의도적인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날 오후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씨 변호인 천낙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합신센터의 불법구금을 확인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간첩조작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합신센터에서 이제는 간첩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기대하게 만든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한다, 도덕이 바로 서고 양심이 회복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유가려씨에 대한 가혹행위와 협박, 구금, 회유가 인정됐다, 인륜에 반하는 여동생 진술을 만들어서 무고한 오빠에게 간첩혐의를 씌운 사건"이라며 "책임자는 명백히 처벌돼야 하고 책임을 묻는 민·형사상의 조치를 반드시 취하겠다"고 밝혔다.
#유우성 #항소심 #간첩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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