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만에 철거될 울산초교 "건물 살려 창작공간으로"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위해 철거키로... 문화예술계 "건물 철거 안돼"

등록 2014.04.26 15:24수정 2014.04.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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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중구 북정동에 있는 울산초등학교. 107년된 학교이지만 올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했고 울산시립미술관이 들어선다.
울산 중구 북정동에 있는 울산초등학교. 107년된 학교이지만 올해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했고 울산시립미술관이 들어선다.박석철

울산 중구 북정동 울산초등학교에 들어설 울산시립미술관 건립을 두고 지역 문화계와 이 학교 동창회 등이 요구해온 학교 건물 보존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울산시가 건축적 측면, 운용적 측면, 행정적 측면과 여론 수렴 결과 등을 들어 건축물의 보존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철거키로 결정한 것.

하지만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문화도시울산포럼과 이 학교 동창회 등은 울산초등학교를 포함한 이 지역의 역사성 등을 들어 울산초등학교 건물을 철거하지 말고 문화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안을 고수하고 있다.


울산초등학교 건물 철거키로...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지난 1962년 울산은 공업특정지구로 지정된 후 눈부신 산업발전을 이룬 반면 문화시설은 따라주지 않아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열악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역에서는 시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왔고 지난 2012년 울산초등학교로 부지가 결정되고 지난 3월 정부의 투·융자사업 중앙심사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울산시립미술관은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총면적 1만2400m²)로 용지 매입과 건물 보상비 205억 원, 공사비 529억 원 등 모두 734억 원을 들여 2017년 12월 개관 예정이다.

시립미술관이 들어설 울산초등학교는 지난 1907년 울산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해 107년의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올해 2월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고 폐교했다. 단지 울산초등학교 학교명은 올해부터 울산혁신도시 내에 새로 개교한 학교가 이어받았다.

울산초 바로 옆에는 조선 선조 32년(1599) 울산이 부로 승격된 후 숙종 7년(1681) 부사 김수오가 지은 원이나 수령들이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인 울산 동헌이 있고 3.1운동의 역사를 담은 삼일회관도 자리하는 등 이 일대는 '북정역사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울산초등학교 자리는 조선시대 울산의 객사인 학성관이 있던 자리라 울산시립미술관 부지로 확정되기 전부터 객사 복원 사업이 예정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동문들은 학교 건물의 안전문제를 해결해 레지던시(예술인들의 창작공간) 등 문화 산실로 활용하자는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울산시는 지난 16일 시정조정위원회를 열고 울산초등학교 건물을 철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울산시는 철거 배경에 대해 울산초등학교 본관 건물이 1967년에 건립된 일반적인 콘크리트 건축물로써 보존해야 할 만큼 상징성이나 건축적인 가치가 없고, 50여 년 가까이 된 노후 건물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 리모델링할 경우 신축에 버금가는 큰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본관건물을 그대로 둘 경우 신축하는 시립미술관과 조형적인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좁은 부지에 교사, 미술관, 객사 등이 혼재해 건축물이 밀집돼 야외전시공간 등의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울산초등학교 본관을 리모델링해 레지던시 공간으로 이용하자고 한 제안에 대해서는 "레지던시 공간은 창작, 숙박, 취사 등에 따른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미술관과 분리 운영되어야 한다"며 "울산시립미술관과 레지던시 공간을 동시에 운영해서 두 가지 다 성공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참작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울산시는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해 이 달 중으로 울산초등학교 건물에 대한 보상을 하고 철거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에 이어 다음달부터 8월까지 철거 공사를 한 후 올 연말까지 매장문화재 조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은 이같은 철거 결정이 관료주의적 발상에서 나왔다며 울산초등학교 존립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울산초등학교 철거, 일제의 문화흔적 지우기·덧씌우기와 무엇이 다른가"

 조선시대 원이나 수령들이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인 울산 동헌. 오른쪽에 울산시립미술관이 들어설 울산초등학교가 있다
조선시대 원이나 수령들이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인 울산 동헌. 오른쪽에 울산시립미술관이 들어설 울산초등학교가 있다박석철

문화도시울산포럼 김한태 이사장(전 경향신문 기자)은 "시립미술관을 짓기 위해 울산초 본관을 철거하려는 것은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며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서 보듯 문화흔적 지우기와 덧씌우기의 범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초등학교 일대는 동헌외에도 왕조를 향배하는 사직단과 내빈을 맞는 객사가 있었지만 일제는 그 언덕 맨 위쪽에 신사를 지었고 해방뒤 파괴됐다"며 "이 일대는 울산의 상징이 집약된 한 개의 그림판과 같고 그 가운데 하나인 107년 역사의 울산초등학교 본관 철거를 밀어붙이는 힘은 권한을 장악한 집단"이라며 관료사회를 겨냥했다.

지역 토박들과와 문화계에 따르면 울산초 본관터는 본래 객사자리였지만 일제가 그곳을 제거하고 울산초등학교를 세웠다. 일제 기운이 스며든 학교 건물은 1967년 화제로 흔적이 지어져 현재의 울산초등학교 건물이 지어졌다.

김한태 이사장은 "울산초 건물은 60년대 대표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라며 "미관과 소재가 다소 떨어지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오늘날 철골과 유리로 만들어지는 건물 추세로 볼 때 건물을 보존하면 당시 양식과 어려웠던 시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념비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울산초등학교 건물을 허물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울산은 지금 울산초등학교 교사를 헌신짝처럼 버리느냐, 재활시켜 새 미술관과 조화시키느냐는 시험무대에 올랐다. 이 시험을 풀려면 울산이 일등부자도시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재활용한다면 군색하지 않으면서 알뜰한 도시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장소의 협소함이 문제가 된다면 전체 울산초등학교 부지 중 주차장 부지로 남겨둔 1285㎡를 활용하거나 건폐율 20%인 용도지역을 60%로 상향할 수 있다. 시립미술관 주차장은 지하로 배치하면 되지 않겠나"

- 울산시가 분석한 결과 1967년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이라 역사성이 없다고 하는데.
"1960년대 대표적인 학교건축 양식이 마음에 걸린다면 건물 외모를 그대로 두고 내부를 티타늄, 그래핀, 로이유리 같은 21세기 첨단소재로 보강할 수 있다. 바깥을 보고 안에 들어갔을 때 눈이 휘둥그레지는 반전을 상상할 수 있다.

이 터가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44개 교실 가운데 몇 칸을 말쑥한 호스텔로 바꾸면 오늘날 객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전 선비나 관료들이 머물던 곳에 울산의 산업과 생태 디자인을 탐구하려는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상상력을 교류한다면 반전의 묘미는 깊어질 것이다. 나머지 교실은 시민들의 예술체험 및 교육장으로서 학교의 기능을 이을 수 있다."

- 울산시가 철거를 결정했는데 끝까지 보존을 요구할 것인가?
"울산초등학교 건물 존폐 여부는 한반도 미학의 원형을 탄생시킨 반구대인(울산시민)의 후예답게 발상의 신기원을 이룰 수 있느냐는 시험이기도 하다.

울산시립미술관이 특화된 미술관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7천년전 암벽에 그림을 그리던 것(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과 같은 비범한 발상을 해야 한다. 헌 건물을 철거하고 새 집 짓는 것은 어느 도시나 하는 행태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길을 선택하는 참신한 안목이 요구된다. 시립미술관 건립은 오늘날의 암각화 조성사업이다"
#울산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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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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