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 책표지.
다차원북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그렇게 가시다니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다니어쩌면 그리도 숭고하시오.우리의 모든 아픔을 짊어지시다니눈물이 흐르오님을 조문하는 모든 이의 눈에서촉촉하게 흐르오모든 이의 불타는 가슴에선차디찬 눈비가 녹아나서 흐르오탄식이 흐르오님의 탄식에 뒤섞이는 탄식이… -<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 28쪽-
발걸음이 비틀거릴 정도로 술 취한 모습과 슬픔에 젖은 모습이 연상됩니다. 훠이훠이 헛손질을 흔들어 가며 뭔가를 씨부렁대는 모습도 연상됩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고 있지만, 모든 근심과 걱정과는 상관없는 화평한 모습입니다.
누군가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어주면 냉큼 받아 '덜쑤~'하며 어깨춤이라도 출 것 같은 모습이지만, 도리와 지혜가 넘쳐나는 말씀입니다. 영화에서 보았던 어떤 도인의 기풍도 그려지고, 기인의 기행도 연상되지만 곱씹어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새기게 되는 한 소절 사연이며 두 소절 깨우침이 담긴 가르침입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주정뱅이의 모습을 한 어떤 각설이, 깨우친 바가 있으나 이 풍진 세상을 어쩌지 못해 취중 진담으로 해대는 회초리질 같은 내용이니 깃들어 있는 뜻을 새기다 보면 회초리를 맞으며 챙기는 정신만큼이나 마음이 맑아집니다.
<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를 읽으며 연상해 보는 저자의 모습, 채근담을 노래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입니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연상되는 한가로움, 시퍼런 노기가 연상되는 회초리질 같은 의미를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새기며 읊어가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됩니다.
채근담 359수에 감상 글 388수를 더한 <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채근담 菜根譚>을 직역하면 '푸성귀 뿌리를 먹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고 합니다. 심산계곡에 묻혀 허허로울 정도로 한가로이 살아가는 어떤 사람,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살아가는 도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채근담은 중국 명나라 때 문인인 홍자성(1573~1619)이 원저자로, 359수로 되어 있습니다. 359라는 수는 음력으로 1년 날자 수 360에서 한 수를 덜한 수로, 옛 어른들께서는 꽉 찬 수를 좋아하지 않으셨기에 한 수를 덜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59수로 된 채근담은 세상의 노래 89수, 닦음의 노래 79수, 길의 노래 73수, 깨달음의 노래 55수, 자연의 노래 63수로 일 년 내내 하루 한 수씩을 읊고 새길 수 있는 분량입니다.
1부 '세상의 노래'에서는 우리 세상살이가 얼마나 험악한가를 읊고, 2부 '닦음의 노래'에서는 그 험악한 세상을 살아나 가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를 노래합니다. 3부 '길의 노래'에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인 도를 일깨워 주고, 4부 '깨달음의 노래'에서는 도를 통해서 얻는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합니다. 마지막 5부 '자연의 노래'에서는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하나의 자연이 된다는 것을 일러주니 세상의 노래로 시작해 자연의 노래로 종결됩니다.
책은 여느 채근담처럼 단순하게 채근담 원문에 해석만을 더한 것이 아니라 저자 추만호가 채근담을 읽으며 되새김질을 하듯이 보태놓은 감상의 글 388수가 더해져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왼쪽 위편에 시(번역 글)가 나오고, 아래쪽에 원문이 나오며 오른쪽에 산문시 388수가 감상의 글로 차려져 있어 채근담을 좀 더 깊고 의미 있게 새길 수 있는 감상의 글 읽기가 이어집니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채근담388수의 산문시는 고전 속 채근담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길 수 있게 시사성과 풍자, 해학과 비판을 곁들인 내용이기에 채근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뜻은 깊어지고 책을 읽는 재미는 더해줍니다.
나는 깨달았다단 한 사람이나단 한 사람의 말이순식간에 우리를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그리고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정상으로 올려놓을 수도있다는 것을(체 게바라의 「말의 힘」-<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 35쪽-1부 '세상의 노래' 다섯 번째 글을 읊고 저자가 노래한 내용입니다. 체 게바라의 글을 빌린 것이긴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발생할 불행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이렇듯 통곡하듯이 읊고 있습니다.
선장 한 사람 때문에, 무능한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수천만 국민이 졸지에 상주가 되고 조문객이 되어야 하는 비극적 현실을 너무도 콕 찍어 이르는 말이기에 잔인할 만큼 아프게만 읽히는 내용입니다.
채근담을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어아하! 어쩌면 이리도 지금의 정부 여당의 형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절일까 절로 탄식이 쏟아져급기야 집권여당의 수뇌부에서 외교문서까지 함부로 공개하는 탈법까지 극력 행사하니 이러고서야 민주주의의 뿌리가 노랗게 시들지 않겠어. -<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 135쪽-때가 때인지라서 그런지 어떤 글귀는 어떤 조문객이 늘어놓을지도 모를 넋두리처럼 들리고, 또 다른 어떤 글귀는 원한이 사무친 원망의 글처럼 읽힙니다.
청소하자고하면 어떤 사람들은 농담 삼아 말합니다. 쓸고 나면 또 더러워질 걸 뭐하고 힘들게 쓰느냐고. 입고 다니다 보면 또 더러워질 건데 뭐하러 빨아 입느냐고. 그러면 면박을 주듯이 '먹고 나면 또 배고플 건데 뭐하러 먹느냐'고 말했습니다.
한 수씩 읽어가는 채근담이 지금 당장 뭔가를 가져다주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하루 한 수씩 읊고 새기다 보면 젖어드는 가랑비처럼 거친 마음을 갈아주는 숫돌이 되고 어두운 마음을 밝혀 줄 등불 지혜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저자 추만호가 노래한 채근담 속에는 함께 울어야 할 슬픔, 함께 극복해야 할 시련, 함께 벼려야 할 무지를 나물먹고 물 마시며 살아가는 도인처럼 허허롭게 소화해내며 대처해 낼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수두룩하게 담겼습니다.
추만호, 채근담을 노래하다
홍자성 지음, 추만호 노래,
다차원북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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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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