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혹은 농사꾼'이 딸과 나눈 생태 이야기

[서평] '해를 그리며' 박종무의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등록 2014.04.29 14:24수정 2014.04.2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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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리수, 2014)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리수, 2014)리수
<오마이뉴스> 블로그 가운데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은 웬만한 중학생도 하나쯤 갖고 있다는 이 블로그 전성시대에도 꽤 진귀(?)한 동네다. 가볍고 유쾌한 일상을 꾸밈없이 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숱한 블로그에 비기면 이 블로그는 꽤 고답적인 곳이라고 여기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이라는 블로그의 문패도 그렇지만, 여기 오르는 글들이 뿜어내는 포스(?) 또한 여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기실 '생태주의'는 오늘날의 '트렌드'이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다가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그것과 관련하여 이 블로그의 주인장이 펼치는 사유와 천착, 그 흐름은 비록 전문가의 그것처럼 유장하지는 않되 만만치 않은 진정성으로 다가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여느 사람들에겐 엔간한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작정하고 그걸 읽어내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블로그는 오불관언(!), 자신의 길을 쉬지 않고 가고 있다. 이는 내가 뒤늦게 '오마이뉴스 블로그(오블 : blog.ohmynews.com)'에 입문하자마자 이웃이 되어 그와 교유하면서 이 블로그가 지향하는 생태주의에 입각한 생명관에 내심 각별한 경의를 지니는 이유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하늘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

이 독특한 문패의 주인장은 자칭 모든 생명의 근원인 '태양의 신봉자'다. 따라서 그의 별명이 '해를 그리며'라는 점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겠다. 그는 블로그에서 '골치 아픈 생태주의'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고 반려동물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다.

 박종무의 <오마이뉴스> 블로그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
박종무의 <오마이뉴스> 블로그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장호철

그는 '인간과 동물이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므로 블로그를 통한 글쓰기와 사진 작업은 그런 세상을 위한 작은 실천인 셈이다. 그는 10년째 두 딸과 함께 도시 주변의 텃밭을 가꾸고, 동물보호단체 KARA(대표 임순례)의 의료봉사대장으로 유기견 보호를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그가 "'카메라와 펜'을 든 수의사"로 2011년 포털 '다음'의 '오늘의 인물'로 선정된 수의사 박종무다. 그리고 최근 그는 '수의사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생명, 공존, 생태 이야기'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를 펴냈다. 이 책의 제목은 그가 블로그를 통해 천착해 왔던 생각과 믿음을 집약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는 우리 시대의 약육강식에 기반한 이데올로기로 바뀌어버린 생명관의 문제를 화두 삼아 그 극복 방안을 꽤 긴 호흡으로 모색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의사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정리되고 있다.

생명의 '협력'과 '진화'가 모든 논의의 대전제


저자는 책머리의 여는 글, '약육강식이 아닌 더불어 사는 생명 이야기'에서부터 딸에게 '생명과 공존, 생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는 '먹이 피라미드'를 예로 들면서 그것이 '생명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의 그것으로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며 생명의 관계는 '그런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명은 다른 종들과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종 내부에서도 서로 협력하며 진화해왔다'는 사실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서술되는 모든 인식과 이해의 전제다. 아울러 생명의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생명권의 여백을 찾아서 확장되는 과정'이라는 인식 역시 앞의 상호 협력적 생명 관계를 기워주는 개념이다.

저자는 일찍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 이와 관련된 생물 집단도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진화생물학의 개념'인 '공진화(共進化)'를 강조한다. 곧 '진화는 생물종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각 종은 다른 종과 미시적으로는 경쟁하지만 거시적으로는 공생하고 공진화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러한 관점은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의 포괄적 전제다. 그는 '생명'에 대한 논의를 수의사인 자신의 경험과 접목하면서 한 단계씩 발전시켜 나간다. 동물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진화로 전개되는 논의는 생태계를 일별하고 난 뒤, GMO와 육식 문제를 짚고 마지막으로 대안으로서의 생태주의를 펼쳐보이는 것이다.

 아산 천사원의 유기견. 텃밭농사와 함께 수의료 봉사는 저자에게는 주말의 일상이 되고 있다.
아산 천사원의 유기견. 텃밭농사와 함께 수의료 봉사는 저자에게는 주말의 일상이 되고 있다. 박종무

그의 문제 제기는 수의사로서 반려동물 문제나 유기견 문제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존적 고민과 사색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는 공장식 축산의 끔찍한 현실을 사례별로 소개하면서 우리가 가축을 생명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구제역 청정국가의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30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했지만 결국 그 지위보전에는 실패한 2010년의 사례를 들기도 한다.

하나의 거대산업이 되어버린 '동물 실험'은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물원에 갇혀 구경거리가 된 동물들과 위기에 처한 반려 동물의 실태를 보고하면서 그는 '동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의 윤리성을 묻는다. 또 그는 인간이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그는 '존중과 연민의 태도'를 든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동물권'과 '생명권'은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에게서만 유의미한 개념이다. 다수의 대중들은 여전히 세상이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질서를 굳건히 신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약육강식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생명은 서로 협력하며 진화해왔다. 그리하여 지구의 생명은 '박테리아를 기반으로 곰팡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생물계의 협동 네트워크'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시박'과 '칡'의 두 얼굴

'진화'에 대한 일반의 이해와 인식은 흔히들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에 기초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정작 자연계에 존재하는 진화의 결과는 다르다. 더 강한 종만이 살아남으리라고 여겨지지만 정작 자연계의 먹이사슬은 반드시 그처럼 일방적이고 탐욕스럽지 않다. 생명 진화는 다양성을 향해 진행되어 왔고 먹이 피라미드의 관계는 먹고 먹히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순환'의 관계라는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선 경쟁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의 변화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호 부조'의 관계를 맺기도 한다. 또 동물들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경쟁보다는 에너지를 최소로 소비하기 위해 경쟁을 피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겨울이 다가오면 새들은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하거나 설치류들이 먹이경쟁이 시작되는 시기가 오면 아예 겨울잠에 들어가 버리는 게 그 좋은 예다.

생태계에 대한 성찰도 흥미롭다. 흔히들 우리 생태계 파괴범으로 지목되는 외래종 가시박은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 식물인 칡은 미국에서 우리나라에서의 가시박과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원산지에선 문제없던 식물들이 다른 나라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자생지에선 오랜 시간에 걸쳐 주위 생명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식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과 문명은 생명의 지도를 바꿔놓는 막강한 힘을 과시했지만, 그 결과는 심각하다. 사냥과 직접적인 개발, 외래종 도입과 같은 생물학적 파괴, 그리고 열대 우림의 무분별한 벌목과 같은 서식처 파괴의 3가지 방식으로 생물 종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은 다른 생물들과의 건강한 관계망 속에서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는 진실에 대한 환기가 필요한 이유다.

 해를 그리며 박종무는 두 딸과 함께 주말농장의 텃밭농사를 10년째 짓고 있다.
해를 그리며 박종무는 두 딸과 함께 주말농장의 텃밭농사를 10년째 짓고 있다.박종무

책의 마지막 차례, 7부('생태주의에 대하여')에서 지은이는 '생태적인 삶'을 대안으로 소개한다. 과학자들은 에너지 고갈 시대가 닥쳤을 때 지속 가능한 도시의 모델로 쿠바의 아바나를 꼽는다고 한다. 아바나는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경제 봉쇄가 강화되면서 석유 에너지에 의존하던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게 되자 살아남기 위해서 '생태도시'를 선택했다. 화석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서 '지속 가능한 삶과 사회'를 모색하게 된 아바나의 사례는 대량 에너지 소비시대의 역설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또 자신의 별명처럼 '해를 그리워하는 삶으로의 전향'을 이야기한다. 2030년 오일피크 이후 에너지 고갈의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그는 원자력 에너지가 아니라 태양 에너지를 꼽는다. 지구에서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은 태양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은 현재의 에너지 소비를 반으로 줄이는 삶의 변환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됨은 물론이다.

또 밥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며 소박한 밥상이 자연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과 함께 시작한 텃밭 농사를 이야기한다. '주말농장에서 얻은 작은 행복'은 소박하게 자신의 생태주의적 삶을 실천해온 그 자신의 이야기다.

그는 텃밭 농사가 주는 기쁨으로 자연이 주는 것에 대한 감사와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걸 꼽았다. 텃밭 농사는 땅에 사는 생명이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고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며, 겸손함을 알게 하고, 소비하지 않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고도 고백한다.

'생태적인 삶'을 꿈꾸다

책의 끝머리에서 그는 딸에게 '또 다른 세상의 꿈'을 이야기한다. 지속될 수 없는, 폭력과 과소비가 만연한 사회, 석유 에너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장식 축산과 그로 인한 과도한 육식, 과도한 수도권 집중의 도시 시스템이 가져올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생태적인 삶'을.

그 해답은 생태적인 삶이야. 생태적인 삶이란 생명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거란다. 외부로부터 과도한 에너지나 물질을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들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지.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입고 겨울에는 내복을 입고 여름에는 조금 덥게 살고 겨울에는 조금 춥게 살며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것이 생태적인 삶이야. 또 막대한 석유 에너지로 사육되는 과도한 육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취할 수 있는 제철에 나는 나물을 비롯하여 가벼운 식단을 차리는 삶이고, 과도한 소비를 줄이고 검소한 삶을 사는 것이 생태적인 삶이야.

지난 일요일에도 수의사 박종무는 수의료 봉사활동에 다녀왔다. 그의 블로그에 올라온 수십 장의 봉사활동 관련 사진 속에서 정작 그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봉사가 없는 주말에는 그는 다시 딸들과 함께 텃밭으로 나갈 것이다. 그것이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수의사 박종무의 일상이다.

 지난 4월 27일, 서울 수의사회 의료봉사대는 포천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 애신동산에서 봉사를 벌였다.
지난 4월 27일, 서울 수의사회 의료봉사대는 포천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 애신동산에서 봉사를 벌였다.박종무

그런 삶의 흔적으로 블로그를 꾸려가고 자신의 생태주의를 소박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복 받은 사람이다. 적지 않은 공력을 들여 만들어낸 그의 책이 독자들에게 생태주의로 가는 조그마한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딸과 나누는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된 이 책은 청소년과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다. 생경하고 관념적인 철학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그 자신 삶의 장면에서 깨닫고 확인한 그의 생태주의에 독자들은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행간에 끼워 넣은 이론적 근거를 인용한 책은 물론이거니와 읽을거리로 소개하는 관련 도서도 독자들의 더 깊은 공부를 도울 수 있을 터이다.
덧붙이는 글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박종무 / 리수 / 2014.04 / 1만7900원)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 수의사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생명, 공존, 생태 이야기

해를 그리며 박종무 지음,
리수, 2014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해를 그리며 박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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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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