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자연빠따고니아의 또레스 델 빠이네, 우유니 소금사막, 모레노빙하
강순규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간직한 중남미이지만 이들만의 서글픈 동질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상징인 1492년 이후, 중남미사회는 유럽에 의한 착취와 수탈의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철저히 유럽에 종속된 사회경제구조로 고착화되었다. 물론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의 스페인 침공(1808년)으로 중남미에서 스페인의 입지가 약화된 틈을 이용해 대부분의 중남미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게 되지만, 이때 중남미국가들의 '독립'은 엄밀한 의미에서 유럽에서 건너 온 서양인(Peninsular)과 중남미에서 태어난 서양인(Criollo)과의 갈등 사이에서 중남미 토착 서양인인 끄리오요가 승리한 것에 불과하다.
독립을 쟁취한 끄리오요들은 -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아 –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헌법에 명시하였지만 원주민들의 실질적 신분 상승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희생의 중심에 서 있던 중남미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을 지배하던 세력이 바뀌었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독립 이후에도 중남미사회는 19세기 유럽의 신흥제국들과 20세기 미국으로 대표되는 외세로부터 끊임없는 간섭과 지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중남미사회는 인구 6억 명의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최근 10년간 연평균 5%대의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아시아를 잇는 '제2의 신흥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2010년에는 한국이 중남미국가들을 상대로 21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중남미는 한국의 대표적 무역수지 흑자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국내 언론매체에서는 '무역 엘도라도'(Eldorado, 황금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붙여 중남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 국한되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