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덩어리 괴짜 졸부 감싼 대법원

[해외리포트] 러시아의 러시아 재벌 송환요구 기각한 캄보디아 대법원

등록 2014.05.08 08:23수정 2014.05.0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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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시내 김일성대원수거리의 모습 전문가들은 당시 우리 정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 복싱선수 김귀하씨의 북강제송환이 전격 결정된 것은 북한 김일성 주석과 막역한 사이였던 당대 최고 권력자 노로돔 시하누크국왕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놈펜 시내 김일성대원수거리의 모습전문가들은 당시 우리 정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 복싱선수 김귀하씨의 북강제송환이 전격 결정된 것은 북한 김일성 주석과 막역한 사이였던 당대 최고 권력자 노로돔 시하누크국왕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정연

지난 1966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제3세계 비동맹 신흥국가들의 국제스포츠축제인 GANEFO(Games of the New Emerging Forces)를 앞두고 북한출신 복싱코치 겸 선수였던 김귀하씨가 프놈펜 주재 일본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한 적이 있다. 정보를 접한 한국 정부는 즉각 그의 신변보호와 국내 송환을 정식 요청했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 캄보디아정부에 의해 결국 묵살되고 말았다. 재일동포출신이기도 한 27세 젊은 운동선수의 망명시도는 결국 좌절됐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듬해인 1967년 1월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와의 단교를 공식 선언한다(이는 대한민국-캄보디아간 이뤄진 첫 번째 단교조치이며, 1970년 친미성향의 론놀정부 수립 후 곧바로 재수교 했으나, 5년 후인 1975년 공산계열 크메르루즈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은 다시 외교단절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세계인권선언 제14조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망명을 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망명자 보호의 핵심은 박해 받는 국가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강제송환금지원칙' 준수에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정부의 망명자 신병처리문제에 대한 인식은 과거 5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해당사자국과의 관계에 따라 망명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박해받는 나라로 강제 송환하는 경우가 여전히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9년 7월 중국을 탈출한 위구르 출신 난민들을 같은해 12월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낸 일이다. 당시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의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훈센 총리는 어린아이를 포함한 위구르인 20여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이었던 시진핑은 캄보디아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그 답례로 무려 12억 달러의 차관과 경제원조를 약속했다.

러시아 내에서도 늘 '괴짜 재벌'이라 불린 폴란스키

줄곧 이런 행보를 보였던 캄보디아 정부가 최근 이 나라에 체류 중인 한 러시아 재벌에 대해서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를 취해 주목을 받았다. 현지 대법원은 지난 3월 25일(현지시각) 캄보디아에서 도피생활중인 러시아 부동산재벌 세르게이 폴란스키(Sergei Polonsky)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송환요청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가 밝힌 판결 사유는 '캄보디아와 러시아와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에 받아드려질 수 없다'였다.

판결소식이 알려지자 <월스트리트 저널> <로이터> 등 전 세계 주요언론들은 즉각 '폴란스키'라 불리는, 41세의 비교적 젊은 러시아 신흥부동산재벌에 대한 판결소식과 더불어 그의 과거행적을 주요기사로 다뤘다.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폴란스키는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8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러시아의 14번째 부호(약 43억 5000만 달러)로 꼽힌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세르게이 폴론스키
세르게이 폴론스키 폴론스키 페북

그가 2011년까지 운영했던 미락스 그룹((Mirax Group)을 승계한 포탁 그룹(Potok Group)은 여전히 전 세계 여러 투자개발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현재도 러시아와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미국, 영국과 스위스, 프랑스에서도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1년 포브스지가 뽑은 '평범하지 않은(unusual)' 9명의 러시아 재벌사업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평소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처신 때문에 러시아 내에서도 늘 '괴짜 재벌(eccentric tycoon)'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미락스 그룹을 이끌 당시에도 최고이사회 때 임원들 앞에서 "백만 달러 이상 돈이 되지 않는 급한 전화가 아니면 회의 중에 절대로 받지 말라"며 임원들의 핸드폰을 벽에 던져 박살낸 적도 있다.


사실 그의 기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8년 폴란스키는 자신이 지은 최고급 아파트 가격이 1년 6개월 이내 25% 이상 오르지 않으면 자신의 넥타이를 먹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의 예언은 조금 빗나가 6개월이 더 지난 후 현실화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1년 5월, 러시아 생방송 TV프로그램에 나와 실제로 넥타이 조각을 먹었다. 지난 2011년 9월에는 러시아 한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러시아 은행가 알렉산더 레베데프와 말다툼을 하다, 상대로부터 주먹세례를 받고 무대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국제사회 예상 벗어난 캄보디아 대법원 최종판결

그는 현재 모스크바 대형주상복합건물 분양자 80명으로부터 57억 루블(1억 7600만 달러)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고,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8월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지난해 11월 그는 캄보디아 시하누크빌의 작은 섬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체포직후 곧바로 유능한 변호인단을 구성, 법적투쟁에 맞설 것이라며 러시아로의 송환을 거부했고, 지난 1월 캄보디아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에 따라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로 재판을 받아 왔다.

러시아 내무부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려 세 번이나 캄보디아 정부에 그의 신병인도를 요청하는 공식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캄보디아 대법원의 최종판결은 국제사회의 기대와 예상을 빗나갔다. 하지만 현지에선 전문가들뿐 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폴란스키'라는 이름은 캄보디아 현지에서도 이미 유명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치면 관련기사가 동시에 수십여 개씩 뜬다. 그가 단지 억만장자이고, 러시아 자국 내 거금의 투자금 횡령사건에 연루된 용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12년 그가 저지른 선원폭행사건과 사건초기부터 석방과 구속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그가 만들어낸 돌출행동은 현지 언론 사회면에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는 현재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남쪽 유명 휴양도시 시하누크빌 해안에 호텔과 식당 지분은 물론이고, 고급별장에 개인 섬 리조트(Dek Koule island)까지 보유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그가 캄보디아 영내에 7개의 또 다른 섬들도 가지고 있다고 최근 현지 언론에 밝혔다.

지난 2012년 12월 30일 그는 자신의 섬 주변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러시아인 친구 2명과 선상파티를 벌이던 중 현지인 선원 6명을 칼로 위협해 바다에 빠뜨리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강제구금과 폭행혐의까지 덧붙여져 그는 밤에도 섭씨 35도가 넘는 덥고 비좁은 감옥 안에서 3개월가량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선풍기 반입도 거부당했다. 그 와중에 그는 교도소 책임자 중 한 명이 자신을 감옥에서 풀어주겠다며 100만 달러나 되는 금품을 요구했고 목숨까지 협박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공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또 수감생활 중 시하모니 국왕에서 공개편지를 보내 자신이 거주하는 시하누크빌에 7성급호텔과 리조트를 지을 계획이라며,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는 한편, 캄보디아로의 귀화를 신청하겠다고 밝히기도 해 또 다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결국 그는 해외출국을 금한다는 약속 하에 현지 법원에 보석금 5만 달러를 내고 지난해 4월 풀려났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약속을 어기고 이스라엘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또 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의 해외도피 소식은 캄보디아는 물론 그의 고국 러시아까지 발칵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가 이스라엘에 간 목적은 시민권 취득이었지만, 이를 눈치 챈 러시아당국의 방해로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그는 같은해 8월 캄보디아로 다시 돌아왔고, 피해 선원들과도 이미 2만 달러에 합의했지만, 현재 이와 관련된 재판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괴짜 외국인 보호하려는 캄보디아 정부, 이유는...

 폴론스키 본인이 3개월간 수감되었던 교도소 독방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
폴론스키 본인이 3개월간 수감되었던 교도소 독방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사진.폴론스키 페북

그동안 그가 일으킨 문제들만 보더라도, 캄보디아 정부입장에서 그는 당장 추방해도 시원찮을 '골칫덩어리 졸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재벌의 신병과 관련된 캄보디아 정부의 태도와 대처방식이다. 물론 폴론스키가 기존 망명 희망자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박해 예상 대상국으로부터 송환요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선 같다.

그런데 캄보디아 정부는 사법부를 등에 업고 이 재벌이 캄보디아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까지 마련해주었다.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을 겪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예전만 못하지만, 동구권 맹주국의 요구마저 거부하고 데리고 있어봤자 골칫거리만 제공할게 뻔 한 괴짜 외국인을 굳이 보호하려는 드는 이유는 과연 뭘까?

답은 현재 이 러시아 출신 재벌의 지갑 속에 있다. 그는 이미 캄보디아 리조트사업에 약 2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러시아에서 벌인 사업이 잇달아 실패했지만, 외화반출입이 자유로운 이 나라에 횡령 등을 통해 그가 몰래 은닉해놓은 재산이 천문학적인 금액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다가 그는 공개석상에서 캄보디아 섬 리조트 개발에 쓸 1억 달러 이상의 충분한 자본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캄보디아 정부가 '권력의 시녀'나 다름없는 사법부를 내세워 정치적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러시아 정부의 요구를 당당히 거절하고 나선 것은 이런 숨은 배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일시적인 관계악화는 언제든지 복구할 수 있다는 캄보디아 정부의 자신감과 더불어 폴론스키의 투자가 당장 보다 더 현실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현재로서는 더 설득력을 얻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폴론스키는 대법원 판결 후 "이 같은 (법원의) 결정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며 "매우 좋은 사람들과 매우 흥미로운 나라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놈펜 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캄보디아 한 청년은 자신의 오토바이에 가짜 번호판을 달았다는 사소한 이유만으로 '2년 실형'이란 중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들이 같은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폴론스키의 말처럼 캄보디아는 '정말 흥미로운 나라'임은 분명한 듯하다.
#캄보디아 #세르게이 폴론스키 #SERGEI POLONSKY #박정연 #러시아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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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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