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을 규탄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수구세력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약속이나 한 듯이 세월호를 이용한 정치선동을 거론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인사들의 망언 퍼레이드가 있을 때부터 불안했는데, 늘 이쯤이면 등장하는 '정치선동론'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좌파' 내지는 '종북'으로 몰아서 '척결'하자고 외치는 못된 습성이 도진 것이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대통령만 공격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으며, 보수 언론들 역시 '세월호 정치선동 악용'을 거론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마저 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순수 유가족'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정체를 의심하고 나섰으며,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에 분노해서 KBS로, 청와대로 몰려운 유가족들을 '폭행'을 휘두른 사람들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정말 개탄스러운 것은, 일부 언론과 SNS상에서, 사고로 딸을 잃고 대책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모씨의 정당 가입 이력까지 문제시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정의당 가입 이력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유가족들의 요구를 모두 반정부 행위로 매도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사고로 딸을 잃어도, 과거에 진보정당 가입 이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필자는, 세월호 참사를 빌미로 '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특정 정권의 문제라기보다는, 재난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시스템의 구조적 실패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재작년 대선 결과가 달랐다 한들, 이 사건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달랐을지 몰라도 '능력'이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다.
하지만,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무조건 선동세력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더 악랄한 선동에 속한다. 설령, 정말 악의를 가지고 이런 안타까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내는 목소리조차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어떠한 목소리도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설령 정돈되지 않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든지, 아니면 정교하게 다듬어진 의견을 개진하든지, 그것은 엄연한 시민의 자유에 속한다. 또한, 정부를 비롯한 모든 정치세력의 임무는 국민의 뜻을 수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민의식을 '불순세력', '선동세력', '배후세력' 등의 폭압적인 언어로 모욕하는 행태는, 정권을 향한 비판과 도전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북한식 정치방식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의 역(逆)선동 세력이 이와 비슷한 사안에 있어서 정치적 반대파들에게 가했던 그 수많은 저주와 욕설들을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행동은 비열한 자기모순임도 금세 드러난다.
일례로, 지금의 새누리당은, 과거에 '숭례문 화재' 사건을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편 적이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고 김선일씨의 피살사건 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또한, 가깝게는 지난 2일 일어났던 서울 지하철 2호선 사고에 대해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일제히 박원순 시장을 겨냥했던 것도 들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안전관리 시스템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 슬픔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라의 수준이 더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수구세력의 정치선동론 속에 담긴 폭력성과 비민주적 행태를 보고 있노라니, 이 나라 전체가 거대한 세월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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