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8월 4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진압작전 당시 모습. 도장공장 앞 바리케이드를 사수하기 위해 나온 농성노동자들이 물대포를 피하고 있다.
권우성
작가는 기록을 '시간의 축적이자 역사'로 규정했다. 그가 카메라 앵글에 담은 사진들은 어둡다. 절망스러운 해고에 저항하는 격렬한 몸짓들, 단식의 고통에 힘겨워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그렇게 어둡고,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기록을 남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아직 전투와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외친다.
작가는 투쟁과 파업이 없는 세상, 고통이 사라진 세상을 염원할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진 기록을 통해 노동자들이 투쟁과 파업으로 거듭나 한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바로 선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그는 그것을 평화와 사랑의 구체화이자 실천이라고 믿었다.
사진 속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힘겹다. 흑백의 사진 속에 담긴 그들의 표정은 한곁같이 굳어 있다. 입술은 꾹 다물어져 있다. 눈빛은 뜨겁게 이글거린다. 물러설 줄 모르는 투사의 모습들이다. 투사가 아닌 평범한 '우리'가 그들의 모습에 불편해하는 이유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그들을 보면서도 싸움에 나서지 않는 '우리'는 비겁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원래부터 투사였을까. 이 책 108쪽부터 113쪽에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시민 분향소 앞에서 찍은 노동자 9명의 독사진이 실려 있다. 목욕탕 의자에 쪼그려 앉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다. 지그시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입술은 살며시 닫혀 있고, 눈빛은 간절하게 호소한다. 그제서야 그들을 투사로만 바라봤던 비뚤어진 내 눈을 비빈다.
"이들은 투사일까? 맞다 그리고 동시에 아니다.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종종 나도 모르게 조합원들의 틈을 응시하게 된다. 그럼 어느 순간 뭔가 무거운 덩어리가 내 가슴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이는 이들이 겪는 심신의 고통을 가늠하게 만든다. 스트레스로 대장이 괴사하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진정 투사의 모습이던가. ··· 이들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고 또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투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투사로 거듭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본문 131쪽)정부에 철저한 진상 규명을 바라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상경 시위에 나선 순간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반정부 세력의 구심이 돼버렸다. 분노하는 마음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평범한 교사들은 교육을 정치화하려는 위험한 불온 세력으로 간주됐다. 평범한 사람을 일순간에 투사로 만들어버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평범한 우리는 그런 국가를 포기하다시피 한 채로 살아간다. 국가가 우리에게 저지른 수많은 야만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제2, 제3의 쌍용차 사태나 세월호 참사가 언제 우리를 강타할지 모른다. 강고한 국가를 상대로 기억 전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 - 2012~2014년 쌍용자동차 투쟁 기록 사진집
점좀빼 글.사진,
숨쉬는책공장,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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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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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딱지 붙은 채 사는 사람들...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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