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인 노지민 <국민TV> PD
이영광
- 세월호 침몰사고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사고 초기 진도에 내려갔는데요."4월 19일 새벽, 진도에 도착했어요. 도착하자마자 팽목항에 들렀다 실내체육관으로 갔습니다. 체육관에 발을 들이는 것부터가 죄송스럽더라고요. 자리를 잡고 짐을 옮기러 가다가 어머니 한 분을 뵀어요. 체육관에서 울음을 억지로 참고 계셨던 분이었는데, 참기 힘드셨는지 체육관 밖으로 비틀거리면서 나가시더라고요. 위로한답시고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되겠다고 처음 다짐하던 때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울음을 참거나, 참지 못해 터트리거나,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으며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을 보면서, 가족들을 고작 이런 장소로 머물게 할 수밖에 없는지 화가 났어요. 체육관 1층엔 실종자 가족들이, 2층엔 취재진들이 있으니 '판옵티콘(감시자는 피감시자를 볼수 있지만, 피감시자는 감시자를 볼수 없는 구조의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층의 가족들은 카메라가 내려다 보고 있으니, 감시 당하는 느낌이 드셨을 거예요. 저도 (감시하는) 일원 중 하나였으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 가족들의 일상이 다 공개된다는 건데, 인권침해에 대해 생각해 볼 문제네요. "그렇죠. 한동안 SNS에서 일본 대지진 후의 '칸막이 대피소' 사진과 진도체육관 사진을 비교한 게시물이 화제가 됐잖아요. 진도체육관은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24시간이 모두 공개되어 있어요. 숙식을 언론이 다 보는 거죠. (가족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거 같아요."
- 기자들은 문제의식이 없었나요?"기자는 남들이 보도하지 않는 상황을 캐치해서 전달해야 할 임무로 (진도로) 내려간 거잖아요. '가족들의 휴식공간을 지켜주자'보다는 모든 상황을 빨리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기가 각자 문제의식이 있었겠지만) 제가 있는 동안 각 언론사 기자들이 그런 고민을 공유하진 않았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어땠어요?"저도 처음에는 이틀 정도 현장 생중계를 했어요. 언론의 왜곡 보도가 문제인 상황에서 앞 뒤 맥락 다 자른 뉴스보다, 현장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자는 취지로 중계 포맷을 짰어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어요. 실종자 가족들을 주로 촬영하거나 특히 클로즈업하지 말 것. 그래서 중계를 진행할 때 카메라는 거의 체육관 앞 무대를 잡았고요."
- 취재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해야 하는 일은 가족분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고.... 끊임없이 설득하며 말 그대로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이어가야 하잖아요. 저의 능력 부족이 가장 원망스러웠습니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취재했더라면 끊임없이 드러나는 사고 수습 과정의 문제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한편으론 지상파나 기성 언론들이 저희보다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보면서 화도 났어요.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 차장,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팽목항에 모여 이야기 했던 날, 현장 상황이 <팩트TV>를 통해서 생중계됐는데요. 저희 바로 옆 텐트에서 한 언론사 기자가 리포팅을 하는데, 그런 상황을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 취재 하면서 피해자 가족도 많이 만났을 텐데요. "함께 한 일 하나하나 기억에 남아요.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례는, 체육관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고 나섰다가 진도대교에서 경찰에 막혔던 날의 일입니다. 당시 체육관 인근에선 정홍원 총리와 가족들이 만났는데요. 정 총리는 팔짱을 끼고 차안에 들어가 있고, 가족들은 차를 둘러싸고 '(청와대로) 가게만 해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입을 안 열었어요. 경찰과 경찰 버스가 둘러싼 상황에서 한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솔직히 나는 이제 내 딸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딸이 좀 더 예쁘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때 빨리 찾아내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대통령께 이런 부탁을 드리겠다고, 걸어서 가겠다는데 왜 막는 건가.'
그 뒤로 벌써 한 달이 지났잖아요.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족을 못 찾고 계신 분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 현지에 사복경찰도 많았지요. "가족들이 체육관에서 늘 하셨던 말이 있죠.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들이 주변에 서성인다'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가족들이 있는 1층은 물론 취재진이 머무는 2층도 돌아다녔고요. 한 번은 체육관에 상주하는 해경 측에 인터뷰 요청을 하러 갔다가, 2층을 돌아다녔던 남성이 상황실에서 나가는 걸 봤어요. 누구냐고 계속 물어보니 '해경 직원인 걸로 알고 있다'는 답만 되풀이했죠."
- 피해자 가족들의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큰 걸로 압니다."제가 현지에 갔을 때, 먼저 온 (일부) 언론과는 신뢰관계를 쌓고 계시더라고요. 지금은 가족들에 뭇매를 맞는 <TV조선>도 초기엔 대안 언론보다 훨씬 신뢰받았어요.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제가 나타나서 원하는 목소리 그대로 전해드리겠다고 했으니, 가족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건 당연했죠.
그 뒤 계속 진도에서 취재하고, 뉴스를 보여드린 뒤부터는 먼저 연락하는 분들도 생겼어요. 돌이켜보면, 사고 초기 가족들이 제게 하셨던 말씀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그런 상황을 자초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진도에서 올라온 날, 얼굴을 뵙지 못하고 온 분들에게 문자로 인사를 드렸는데요. 한 아버님이 '특종을 못 해서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실종자 가족분들이 느끼셨던 불신, 그렇게 만든 상황들은 앞으로 제가 언론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언론인 시국선언, 쇼 아닌 걸 보여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