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동재개발지구폐허가 된 집의 기와가 삭을대로 삭자 기와를 올렸던 흙과 부식된 기왓장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아지풀, 높은 곳에 피어나 멀리까지 볼 수 있어 좋겠다. 하지만, 높다고 다 좋은게 아니란다. 무릇 사람도 식물도 흙과 가깝게 살아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란다.
김민수
어느 계절이든, 사람들이 거반 떠나버린 황량한 그곳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일 터이다.
겨울엔 골목길마다 가득한 메케한 연탄가스 냄새와 화재걱정으로 힘들 터이고, 이제 겨우 봄이 왔다 싶으면 겨우내 갈라진 틈새들을 더 고쳐야할지 말아야 할지, 더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름엔 비가 새는 나지막한 지붕과 복사열과 사람들이 떠난 탓에 방치된 쓰레기들이 풍기는 냄새로 폭염과 싸워야 한다. 가을이 그나마 좋긴 하지만, 이내 겨울 걱정이다.
거여동재개발지구,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젠 사람이 더는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얼마 전부터 '재개발 반대'를 알리는 붉은 깃발들이 나붙기 시작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는데, 그렇게도 살아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 거여동재개발지구다.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날, 그곳 골목에서 시들지 않는 꽃을 만났다.
조화다. 저걸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꽃은 꽃이로되 뿌리도 향기도 없는 꽃, 차라리 짧은 순간 피었다 진다고 해도 정말 꽃이면 더 좋은 것일까? 우리네 재개발에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외에는 없다. 아무런 향기도 없는 조화같은 개발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꽃처럼 예쁘다!'가 아니라 '조화처럼 예쁘다!'고 한다. 이 무슨 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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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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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도 없이 폭염, 가물에도 시들지 않는 꽃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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