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시간. 아빠는 바쁘다.
오마이뉴스
둘째·막내와 함께하는 출근길은 제법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수변 도로 2킬로미터와 일명 '도깨비길'로 불리는 좁은 숲길로 이어져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굽이진 모퉁이가 많은 길이다. 속도를 크게 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차는 그런 길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질주하는 차가 무서웠을까. 뒷좌석에 앉아 있던 둘째가 한마디 내쏜다.
"아빠, 넘어지잖아요. 왜 그렇게 빨리 달려요. 천천히 달려요."곧이어 "아빠아~"하며 울먹이는 목소리. 막내다. 모퉁이 길에서 한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진 탓이다.
"알았어요. 그래도 잘 잡아요. 아빠 늦었어."애써 달래듯 말하면서도 오른발은 가속 페달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위험천만한 질주 덕분이었을까. 애들 어린이집을 6분여 만에 도착했다. 크게 '위험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급해진 마음 탓이었을까. 아이들을 부라부랴 물건 던지듯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맹목의 질주.
그 한심스럽고 위험한 출근길은 긴 시곗바늘이 오전 8시 17분을 가리키는 지점에서 마무리됐다. 3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시간과의 싸움은 나의 판정승으로 끝난 것일까. 오늘 아침(9일), 5일 연휴 뒤끝의 첫 출근길 풍경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나은 편이다. 중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침 출근 시각이 30여 분이나 뒤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근무하던 고등학교는 오전 7시 50분이 출근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챙기는 일이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둘째와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오전 7시 40분에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사는 군산에서는 제일 먼저 여는 축에 속한다. 오전 7시 40분은, 주번 선생님이 그 시각에 정확히 문을 열고, 또 내가 아이들을 서둘러 던져주듯 들여보내고 출발하면 그런대로 해볼 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돌발 변수는 거의 항상 있었다. 아직도 어린 막내는 자주 칭얼거렸다. 그런 녀석을 안아주거나 업어주려다 보면 몇십 초(!)가 금방 가 버린다. 좁은 숲길을 지나다 맞은편에서 초보 운전자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또 몇십 초를 까먹는다.
숲길을 지나면 나오는 어느 식당이 있다. 그 집 마당 가장자리에는 늘상 늦잠꾸러기인 개 세 마리가 있다. 이 녀석들이 난데없이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있기라도 하면 1분이 우습게 가버린다. 털북숭이 말라뮤트 두 마리와 품종 불명의 황구 한 마리에게 아침 인사를 하려는 두 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말이다.
지난해 출근길은 그래서 거의 항상 8~9분과의 숨 막히는 싸움이 이어졌다. 마치 불가항력과의 싸움 같았다. 어린이집을 출발하면 왕복 10차선 도로를 지난다. 그 도로 위에 설치돼 있는 과속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0차선 도로에서 4차선 도로로 좁아지는 병목 구간을 포클레인으로 몽땅 파 넓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몇십 초를 다투며 가는 내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곡예하듯 끼어드는 얌체 운전족들의 면상을 후려치고도 싶었다.
나를 진짜 화나게 하는 것... '일찍 등교하기'그런데 나를 그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화나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출근 시간을 그토록 일찍 정해 놓은 직장, 바로 학교였다. 그렇다. 나는 묻지마 식 '일찍 등교하기' 경쟁에 빠진 대한민국 중등학교를 직장으로 갖고 있다. 면학 분위기 조성과 학력 신장 명목이라는 그 고색창연한 논리가 지배하는 학교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일찍 등교하기' 경쟁은 과녁이 잘못 맞춰진 것이다. 대다수의 초·중·고생이 속해 있는 10대에는 수면 패턴의 변화가 찾아온다. 수면 및 기상 주기가 바뀌어 10대들이 졸음을 느끼는 시간과 의식이 분명한 시간대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시간대와 완전히 반대가 된다는 것.
예컨대 10대들은 보통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는 오후 11시나 12시에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반대로 일반인이 힘을 내기 시작하는 오전 8시에는 병든 닭처럼 녹초가 된다. 멜라토닌(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점점 더 늦은 시간에 방출되고, 멜라토닌의 수준이 떨어지는 시간도 점점 늦춰지는 사춘기 수면 패턴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수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교시 시간을 바꾼 학교도 있다고 한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가족교육부 교수인 데이비드 월시의 책 <10대들의 사생활>(2013, 시공사)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0교시를 부활해 운영하는 학교가 꽤 된다. 0교시 수업은 아이들에게 공부 부지런히 시키는 '잘 나가는' 학교의 자랑거리로 홍보되기도 한다. 자녀들의 공부에만 관심 있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그릇된 열망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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