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정석,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

[정지선의 공연樂서] 영화를 봤든 아니든 재미 좋긴 마찬가지!

등록 2014.06.12 13:53수정 2014.06.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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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인도 알죠, 자기가 예쁜 거?" 여자들이 이런 손발이 불 위에 오징어마냥 사정없이 오그라드는 작업 멘트에 넘어올까 싶겠지만, 넘어간다.

열일곱이든 마흔일곱이든 여자치고 예쁘다는 말 싫어할 여자 없다. 빈말의 진위여부는 다음 문제다. 그럼 넘어오는 건? 개인차는 있겠으나, 단방에 홈런은 못 쳐도 '안타'정도는 기대해볼만하다. 믿지 못하겠다면, 카사노바 성기의 속기 작업용 실전가이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추천한다. 이왕이면 영화보다는 '연극'으로!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아내 정인(류현경)의 마음이 성기(김도현)의 작업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아내 정인(류현경)의 마음이 성기(김도현)의 작업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필름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관람한 이가 460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460만에 포함되지 않은 1인이다. 그런데 연극은 아주 재미있게 봤다. 이 말인즉,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일지라도 연극을 보는데 무리는커녕, 재미까지 봤단 얘기다. 그럼 영화를 본 관객들은 스토리에 결말까지 꿰뚫고 있으니 재미가 없었을까? 것도 아니다. 혹자는 영화보다 연극이 좋았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스토리에 캐릭터도 동일하고, 심지어 대사까지 비슷한데… 재미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일단 소재가 흥미롭다. 소심한 남편이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전설의 카사노바를 고용한다는 설정은 시쳇말로 웃프(웃기고 슬프)다. 그런데 아내는 독설가에 잔소리 마왕이라 절대 쉬운 작업 대상이 아니고, 카사노바는 절대 핸섬하지 않다. 반전 앞에 무너지지 않는 여자가 없듯이, 반전 캐릭터 앞에 무너지지 않을 관객도 없다!

 우산에 작은 모빌 몇 개를 달아놓는 것만으로 회전목마가 완성된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상하게 보기보다는 기꺼이 웃음을 터뜨린다.
우산에 작은 모빌 몇 개를 달아놓는 것만으로 회전목마가 완성된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상하게 보기보다는 기꺼이 웃음을 터뜨린다. 수필름

다음은 연극의 장점을 극대화한 장면 구성과 연출이다. 영화의 매력이 '편집'에 있다면, 연극은 '척'에 있다. 라디오 스튜디오와 놀이공원, 강릉 바다와 목장 등의 공간들이 하나의 무대 위에서 몇 개의 소도구와 영상만으로 구현된다. 영화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연극에서는 가능하다. 핸들 하나로 자동차가 되고, 우산에 작은 모빌 몇 개를 달아놓는 것만으로 회전목마가 된다. 그러나 관객들은 누구도 이 장면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신 기막힌 아이디어에 놀라고 기꺼이 웃음도 터뜨린다. 양정웅 연출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극은 이 모든 것들이 통용되는 '상상의 예술'이니까.

음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박환 음악감독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가 라이브로 진행되는데, 복고풍 재즈부터 발라드, 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공연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여기에 많은 양의 대사들은 듣기에 따라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으나,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아내 정인의 대사는 구구절절 옳은 말들이거니와 카사노바 성기의 대사는 오글거려도 듣기 좋은 말들이니 피곤은 고사하고 대리만족을 얻어갈 수도 있다. 남성 관객이라면? 성기의 작업과정을 눈여겨봤다가 실전에 적용해볼 수 있겠다.

 김도현은 능글맞은 성기를 연기한다. 그가 정인에게 새우깡 봉지를 열어주면서 “농심 이 녀석!”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그야말로, 빵 터졌다.
김도현은 능글맞은 성기를 연기한다. 그가 정인에게 새우깡 봉지를 열어주면서 “농심 이 녀석!”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그야말로, 빵 터졌다. 수필름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로맨틱 코미디로서 본분에 충실함은 기본, 극중 캐릭터인 카사노바 성기를 통해 여성 작업의 정석, 나아가 극의 연출에 있어서는 영화의 연극화(작업) 정석을 보여준다. 영화를 봤든 아니든 재미 좋긴 마찬가지, 여러모로(?) 작업의 정석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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