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학교 선배 한 명을 오랜만에 만났다. 모 인터넷 매체에서 영화 전문 기자로 일하는 그녀는 커피를 주문하기도 전에 대뜸 축구 규칙 몇 개에 대해 물어봤다. 아는 선에서 성의껏 알려주자 수첩에 받아 적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가오는 주가 그녀의 '당직 주간'이고, 월드컵이 개막하면 새벽에 축구 기사를 써야하기 때문이었다. 영화전문 기자가 축구 기사를 걱정하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키워드 관련 기사는 분야 막론하고 당직 기자가 써야 하니까.
유능한 영화전문 기자, 축구팬들 사이에선 '기레기'
그녀는 속칭 '기레기'다. 정확히 하자면, 그녀는 당직 근무하는 밤마다 기레기로 변신한다. 낮에 그녀는 영화 기사를 쓴다. 칼럼도 쓰고, 유명 배우와 인터뷰도 한다. 그러나 당직 근무하는 밤이 되면 그녀의 이름은 지워지고, 기사에는 '온라인팀'이라는 해괴한 기자명이 달린다. 그녀는 시시각각 변하는 실시간 검색어 기사들을 생산한다.
아무리 노력한들 그녀가 축구 기사를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답은 '우라까이'(다른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베껴 쓰는 행위)다. 가까스로 기사를 써내도 낯선 외국 선수들 이름이나 복잡한 규칙에서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 매일 악성 댓글이 달린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당직 주간에는 댓글을 안 보는 수밖에.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여느 때처럼 세월호 얘기를 했다. 네티즌에게 뭇매를 맞은 '세월호 참사 충격! 역대 흥행한 침몰 영화는?' 등 최근의 기레기 이슈도 테이블에 올랐다. 우리 둘 다 그 기자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결국 다 'PPV(Pay Per View, 클릭 수만큼 광고비를 지급받는 것)' 때문이니까. 그 기자도 그런 기사를 쓰려고 기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선배도 본인이 낮에는 2개의 '진짜' 기사를 쓰고, 밤에는 10개의 어뷰징 기사(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기사들)를 쓰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화살은 늘 그렇듯 포털 사이트로 향했다. 국내 언론사들이 PPV에 목매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포털 사이트들이 뉴스를 독식하기 때문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네티즌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보기 때문이다. 뉴스의 공급과 수요가 사실상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만 이뤄지다 보니 언론사가 자생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지면이 없는 인터넷 언론 회사는 두 말할 나위 없고, 최근 들어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일간지들도 같은 처지다.
해외의 경우 독자들이 본래 자기 입맛에 맞거나 혹은 특정 이슈를 단독 보도한 언론사 자체 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 돼 있다. 그렇기에 언론사끼리 특종 보도나 사이트의 디자인 등 '콘텐츠' 경쟁을 하게 되고, 소비자는 더 양질의 뉴스를 얻을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애초에 거대 포털 사이트들이 뉴스의 수요·공급을 장악하고 있다 보니 독자를 자체 사이트로 '끌고 오는 것' 자체가 언론사들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 때문에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달게 됐고, 거기서 수익성이 나지 않자 자체 사이트는 온갖 성인 광고 배너들로 얼룩졌다. 여기에 더불어 애초에 정론(正論)이 부재하다는 점, 주요 일간지들의 정치적 성향이 양극화됐다는 점 등 역시 해외와의 차이점이다.
그렇다면 포털 사이트라는 거대 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언론사가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차에 동기 한 명이 더 합류했다. 우리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문방송학도 세 명에 모듬순대, 술국, 소주까지 차려지자 자연스레 얘기에 불이 붙었다.
유료 구독자 창출, '공짜 공화국'에서도 가능할까
<뉴스타파> 얘기가 나왔다. 포털사이트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고 탐사보도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한 성공한 언론사다. 그러나 뚜렷한 정치색 때문에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허핑턴포스트>도 언급됐다. 미국에서 <뉴욕타임스>에 이어 온라인 매체 영향력 2위에 오르며 화제의 중심이 된 매체다. 나름대로 새로운 모델을 성공적으로 제시한 사례라는 데에 모두 동의했으나, 그 방식(무료 기고가 모집)이 독자적이어서 다른 회사들과 다른 범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결국 최선책은 '유료 구독자 창출'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해외 주요 정론지들이 그랬듯, 프리미엄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는 대신 충성스러운 유료 구독자를 유지해야 재정적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들은 '공짜'를 좋아하니까.
다시 머리를 맞댔다. 순대를 해치우고 술국에 소주를 한 병 더 시킬 때쯤 '스포티파이(Spotify)' 얘기가 나왔다. 음악 스트리밍 어플리케이션이다. 전 세계 이용자가 4000만 명에 이르고, 연간 매출액은 1조2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세계 1위 음악 앱이다. 주목할 점은 이용자의 약 4분의 1이 유료 회원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4분의3은 여전히 스포티파이를 무료로 즐기고 있다. 어떻게 유료 회원과 무료 회원이 공존하는가? 답은 광고다. 이용을 방해하는 스팟 광고가 귀찮고 보기 싫으면 월 10달러를 내고 유료 회원 가입을 하면 되고, 참을 만하면 계속 무료로 쓰면 된다. 요새 나오는 어플리케이션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대부분 쓰고 있는 수익 전략이다. 갑작스러운 '유료 인터넷 신문'에 대한 당혹감을 희석시키는 데에 적합할 것이라는 우리의 결론이었다.
불콰해진 얼굴로 각자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택시를 향해 헤어졌다. 작별 인사는 변함없이 '파이팅하자'였다. 다들 힘든 요즘이라지만, 언론계가 이렇게 가라앉은 적이 또 언제였나 싶었다. 문득 두려웠다. 모두들 시나브로 세월호를 잊어 가는 건 아닐까. 사회 각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버리는 건 아닐까. 지하철에 올라 핸드폰을 꺼내 방금 헤어진 이들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진짜 파이팅해요. 힘냅시다. 오늘의 이 기분을 잊지 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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