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명 몰살하고 파티 연 과학자들... 제정신인가

[서평]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 프로젝트' <원자폭탄>

등록 2014.06.18 11:08수정 2014.06.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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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핵폭탄은 '리틀 보이(Little Boy)'였다. '꼬마'라는 귀여운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꼬마'는 전혀 '꼬마'답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꼬마'는 7만여 명의 즉사자와 10만 명이 넘는 부상자, 수많은 방사능 피폭자를 발생 시켰다. 히로시마에 있던 7만6000여 개의 건물 중 7만 개가 단 한 번에 완전히 파괴됐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결사항전을 다짐하던 일본은, 미군이 사흘 뒤에 또 다른 핵폭탄 '팻 맨(Fat Man)'을 투하해 최소 4만 명을 즉사 시키자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인류 최초의 핵폭탄 개발 과정을 그린 논픽션

 <원자폭탄> 책표지
<원자폭탄> 책표지 작은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린 <원자폭탄>은 인류 최초의 핵폭탄 개발 과정을 그린 논픽션이다. 한때 딱딱한 미국 역사 교과서 집필에 매달렸던 저자 스티브 셰인킨은 청소년들이 좀 더 흥미를 갖고 역사를 돌아보기를 바랐다.

그가 떠올린 방법은 역사적 사건을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서술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그 탁월한 결과물 중의 하나다. 작가 셰인킨은 객관적인 과학적 발견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 각국의 군사 작전 등을 정교하게 엮어 한 편의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20세기의 세계 전쟁이 남긴 인류 최고·최악의 무기가 어떤 인물들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냈다.

작가는 미국과 소련, 독일 등의 '삼파전'으로 진행된 핵폭탄 개발의 첫 장을, '핵폭탄의 아버지', '재림한 프로메테우스' 등으로 불린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로부터 시작한다. '괴짜' 이론물리학자였던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실무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개발을 성공시킨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핵폭탄 개발과 관련해 그가 공식적으로 참여한 첫 번째 조직은 우라늄위원회였다. 1941년, 오펜하이머는 우라늄위원회에서 핵폭탄 제조와 성능에 관한 기본 계산을 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계산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그는 침략의 야욕을 키워가던 히틀러를 저지하려는 데 온통 마음을 쏟고 있었다.


그를 이끈 것은 핵폭탄 개발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핵폭탄이 가져올 가공할 만한 결과는 안중에 전혀 없었다. 적어도 작가 셰인킨의 시선에 따르면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핵무기의 치명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에 떤 것은 뉴멕시코의 로스앨러모스에서 '트리니티'(최초 핵실험의 이름)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직후였다. 작가는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오펜하이머-기자주)가 회상했다. "우리는 세상이 전과 같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몇 사람은 웃었고, 몇 사람은 울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머릿속에 고대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극적인 순간에 비슈누 신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제 나는 죽음의 신,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257쪽)

당시 핵폭탄은 세계 전쟁을 종식시키고 세계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하버드대생 시어도어 홀은 바로 그 점을 우려했다.

"저도 전쟁의 참상이 여러 지도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평화와 화합으로 안내할 거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홀이 말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그걸 보유한 유일한 국가가 된다면? 아무도 반격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미국은 더 쉽게 원자폭탄을 사용하게 될까? 만약 제2의 강대국도 원자폭탄 제조법을 안다면 이 세계가 좀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어느 쪽 나라도 폭탄을 사용할 수 없을 터였다. 상대에게 사용할 폭탄을 그 상대도 가지고 있을 테니. (188쪽)

홀은 곧 핵폭탄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소련과 접촉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얼마 후, 나이 어린 물리학도였던 그는 소련의 핵폭탄 개발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몇몇 특급 스파이 중의 하나가 된다.

우리 안에는 '오펜하이머'가 없을까

이 책 전체에 걸쳐 작가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미국을 향해 가장 많은 시선을 쏟는다. 핵폭탄을 최초로 개발한 주인공이 그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고 작가가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나 그곳의 핵심 인물인 오펜하이머를 두둔하는 입장에 서 있는 건 아니다.

작가의 펜은 한결같다. 시종일관 어느 한쪽 편으로 쏠리지 않은 채 중립적인 서술 경로를 따랐다. 관련 인물들의 회고와 기록들에 최대한 의지한 채 객관적인 정보를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오펜하이머라는 핵심적인 인물 외에 미국과 소련의 핵폭탄 개발에 관여한 수많은 나라와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훑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이나 태도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려고 했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을까. 핵폭탄 개발 경주에는 전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노련한 스파이들, 특공훈련을 받은 정예대원들과 노회하고 무자비한 정치인들이 참가했다. 작가는 그들 모두가 핵폭탄이라는 가공할 무기를 만든 '공범'이라고 여긴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그 맹목적인 경주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실을 한 이들이 과학자들이었음이 바뀌는 건 아니다. 작가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꼬마'의 위력이 로스앨러모스에 알려진 직후 과학자들이 보인 다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실험실에는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고함을 질러 댔죠." 오토 프리슈가 회상했다. 과학자들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어다니며 외쳤다. "히로시마가 파괴됐다!" ··· 소식이 퍼지자, 과학자들의 아이들이 솥과 프라이팬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가 그것들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더힐(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이 주로 모여 살던 도시-기자)전체에 파티가 시작됐다. (277쪽)

옮긴이는 후기에서 이들 과학자들이 "옆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가리개를 끼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고 말했다. 오로지 새로운 진리를 파고 들어가겠다는 열망으로 인해 자신들의 폭탄이 수만 명의 사람들과 생명체들을 한꺼번에 몰살했다는 걸 떠올리지 못했다면서 말이다.

옮긴이는 히로시마의 소식을 듣고 파티를 벌인 과학자들을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분석했다. '조각 난 개인'이라는 말도 썼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핵폭탄이, 바로 그 조각 난 개인들의 작품임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개인'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면서 옮긴이가 드는 인디언의 예화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유럽인이 인디언을 처음 만났다. 그들 중 몇몇이 인디언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땅을 사겠노라고 말했다.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것은 곧 그 땅을 비롯해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디언들에게 땅을 팔라는 얘기는 다리 하나, 팔 하나를 팔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 수는 13만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옮긴이의 말마따나 모두 조각 난 개인에 불과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이나 자연계의 다른 생명체들과 서로 얽혀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엄청난 살상무기 개발에 열성적일 수 있었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총괄한 '악마'였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관찰한 아이히만은 결코 '악마'가 아니었다. 그는 성실한 학생이 열심히 공부한 것처럼, 또는 부지런한 직장인이 업무 처리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오직 자기 일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아이히만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핵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는 당시 '악의 축'인 히틀러를 제거하는 데 온통 마음을 쏟았다. 그는 그야말로 옆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며 달리는 경주마였다. 그때 그는 '악'을 떠올리지 않았으나 그 자신이 '악의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우리 안에는 그런 '오펜하이머'가 없을까. 작가는 핵폭탄의 탄생을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역사상 가장 놀라운 협동과 천재성, 침착성을 보여준 사례들 중 하나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에필로그의 마지막을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써놓았다. 인류를 지구라는 행성에서 쓸어버릴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면서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내 안의 '오펜하이머'를 곰곰이 되작거려 본다.
덧붙이는 글 <원자폭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 프로젝트>(스티브 셰인킨 지음, 신근영 외 옮김 / 작은길 / 2014. 5. 7. / 357쪽 / 16,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원자폭탄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 프로젝트

스티브 셰인킨 지음, 신근영 외 옮김,
작은길, 2014


#<원자폭탄> #스티브 셰인킨 #작은길 #로버트 오펜하이머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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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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