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선 기차슬류댠카 광장 근처에 전시된 멈추어선 기차의 모습. 새로운 숙소를 찾아 헤매다 갈 곳을 잃고 길 거리에 우두커니 선 내 모습을 닮은 듯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정대희
허튼짓에 한숨, 재채기에 타박... 되는 게 없다현지시간 2013년 1월 22일 오전 8시, 기차역 매표소에 2호실 열쇠를 반납했다. 2호실은 내가 묵었던 역사 안 게스트하우스의 방 번호다. 이른 아침 퇴실을 결정한 이유는 숙박료와 인터넷 때문이다. 이틀 후 환바이칼 열차에 오르기 전까지 묵기에는 시간제 요금이 예상보다 비싸다. 가이드 책이 없으니 정보검색을 위해선 와이파이도 필수다. 수화물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고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 마을로 향하는 길을 찾기 어렵다. 애먼 곳을 배회하다 날이 밝자 기차역 앞 육교 건너편의 작은 마을이 보였다. 아침부터 허튼짓에 체력만 낭비했다. 들어줄 이도 없는데 혼자 툴툴거린다. 실수를 줄이고자 인터넷을 사용가능한 곳을 찾아 헤맸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건물은 죄다 기웃거려봤지만 허탕이다. 용기를 내 길 가는 노신사를 붙자고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으로 요청했다.
"부찌찌 다브릐. 빠마기찌 므네 빠좔스떠(실례합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어젯밤, 러시아어 회화책을 보고 달달 외운 문장이다.
"컴퓨터, 인터넷."발음과 억양이 부정확한지 노신사가 대답이 없다. 진땀이 흐른다. 이럴 땐 만국공통어 '바디랭귀지'가 정답이다. 손발을 이용해 무던히 애를 쓴 뒤에야 겨우 노신사가 알아듣는 눈치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아무튼 그의 손에 이끌려 광장 한편의 건물로 향했다. 건물 외벽에 대형 광고 현수막이 내걸린 사무실이다.
노신사는 사무실 직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내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아무래도 출근시간이 지체된 듯해 보였다. 그의 친절에 고마움을 표하고 사무실 직원에게 인터넷카드 한 장을 샀다. 그리고 안내에 따라 바로 옆, 우체국으로 향했다.
또, 다시 우체국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코앞에 컴퓨터를 두고도 엉뚱한 곳만 훑었다.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자리한 컴퓨터를 발견하자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기계가 이토록 반가운 적이 없었다. 책자에 적힌 사용법대로 전원을 켠 후 본체 카드주입기에 인터넷카드를 넣었다. 제대로 작동한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달랐다. 1시간이 넘게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달랑 사진 한 장밖에 건지지 못했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인터넷 검색창이 열리기까지 한참 걸렸다. 거북이도 이보다 빠를 듯하다. 버퍼링도 심하고 무엇보다 러시아어 자판을 사용하는 게 어렵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다잡으며, 익숙한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한 끝에 마우스자판을 클릭해 약도가 그려진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공들여 찾긴 했으나 약도가 이상하다. 꼬불꼬불 이어진 빨간색 화살표 끝에 'Hostel(호스텔)'이라고 적혀 있을 뿐, 설명이 부실하다. 반복되는 허튼짓으로 애먼 시간과 돈만 낭비한 것 같아 자꾸 한숨을 쉬게 된다. 게다가 러시아 중년 아줌마에게 타박까지 당하고 나니 그야말로 '멘붕'이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컴퓨터를 사용 중 불쑥 재채기가 터져 나와 서둘러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이를 못 봤는지 한 중년 러시아 아줌마가 내게 걸어와 화를 냈다. 아무래도 모니터와 컴퓨터 자판에 침이 튄 줄 알고 나무란 듯했다. 열심히 손사래를 치며, 설명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참 되는 일이 없다.
축 처진 어깨로 우체국을 빠져나왔다. 일이 꼬이니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제 유일한 희망은 약도가 그려진 휴대폰 사진 한 장이다. 이대로라면 와이파이도 안 되는 비싼 숙소에서 이틀을 더 묵어야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약도를 천천히 살펴봤다. 우체국서 그리 멀지 않는 지점에 '호스텔(Hostel)'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