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농민들이 '친환경농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농업인의 염원을 담아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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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쌀 수입허가제라는 사회안전망을 확실한 대책 없이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 뒤에는 유전자 조작 쌀 상업화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은 이미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한 일본과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하면서 쌀 유전자조작 검사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쌀 수입 국영제에서는 유전자 조작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쌀 수입이 자유화되면 유전자 조작 검사를 폐지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유전자 조작 쌀이 상업화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나의 기우일 뿐일까.
2012년 국회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 공청회에서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나를 향해, '식자우환(識字憂患,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쌀은 지키겠다"는 김영삼 정부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박근혜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한국은 매년 쌀 소비량의 10%가 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 20년 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쌀 문제를 염려했던 사람들을 식자우환이라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유전자 조작 쌀이 상업화되면 우리는 소가족농 친환경농업이라는 한국 농업의 특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의 농업 여건에서 유전자 조작 쌀 농사와 친환경 쌀 농사를 칸막이 쳐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실 이미 한국의 소가족농 친환경농업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 있었다. 미국은 미국의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안전성 개념과 그 심사 기준을 그대로 한국에 심었다. 우리 내부에서도 소가족농의 친환경 농업에 기초한 식품망에 대한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한 친환경급식의 기초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농약은 과학이다'라고 하면서 친환경 농산물 대신 일반 농산물을 급식에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이 일반 농산물을 농림부는 'GAP 농산물'로 불렀다. 결국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에서 체계적으로 공급되던 친환경 농산물은 학교 급식에서 떨어져 나가 고사될 위기에 놓였었다.
쌀 수입허가제 폐지 문제는 단순히 쌀 관세율을 계산해서 세계무역기구에 통보하는 그러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박근혜 정부에게 권한다. 내부 합의 없이 올 9월에 쌀 수입허가제 폐지를 통보하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국회가 양곡관리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쌀 수입허가제는 절대 폐지되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에 백 번, 천 번을 통보한들 마찬가지이다.
설령 농림부의 해석처럼 한국이 내년 1월 1일부터 쌀 수입허가제를 폐지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고 하자.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무 이행이란 정부가 독점할 것이 아니다. 국회가 주도해서 해야 한다.
쌀 수입허가제 폐지보다 이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