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 초병 설득할 확성기 설치한 군 차량들 21일 오후 동부전선 최전방 GOP에서 초병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한 뒤 무장 탈영을 하는 사고가 발생해 강원도 고성 일대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 된 가운데, 22일 오후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한 민통선 출입 통문에서 확성기를 단 군용 차량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날 군은 총기 난사 후 도주중인 임모 병장을 추적 체포하기 위해 임모 병장의 아버지의 음성을 녹음해 차량과 헬리콥터에 탑재한 확성기를 이용해 방송했다.
연합뉴스
김일병의 데자뷔, 이제는 그만21일 오후에 발생한 22사단 총기난사 사고의 소식을 접한 순간, 나는 2005년 보았던 김 일병을 떠올렸다. 짧은 순간 본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내가 본 그는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까까머리를 한 평범한 한국의 20대 청년이었다.
소심하고 주눅들어 보였지만,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에 그를 차가운 살인귀처럼 그려냈던 언론의 묘사와는 달리 뿔달린 악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김 일병 역시도 군대라는 비정상적인 환경에 놓인 약한 개인이었고, 상황의 무게를 못 견딘 희생양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이 그가 저지른 범행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분명 당시 사건에서 책임은 김 일병에게 있다. 설령 선임들이 그를 심하게 질책하고 구타했다 해도, 그것이 총기를 난사한 행동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다만 이런 사건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수차례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된다면, 그건 분명 집단과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군대 내의 정신교육에서는 늘 "군인은 '영광스러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부와 군은 모든 국민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인민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북한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 한국은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전시와 같은 상황이 아닌 불필요한 희생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은 군 내부의 비리척결 및 투명화를 위해 유럽연합의 독일처럼 군인노조를 결성하는 것일 수도 있고, 군 징병을 점차적으로 완화하며 모병제를 고려하는 방향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평화로운 상황이 필수적이고, 강경책만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적절히 추진하는 태도가 더 필요할 것이다.
2005년 11월의 어느날, 나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뉴스에서 김 일병의 사형선고 보도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와 관련된 소식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 뒤로 다시 마주할 일이 없을 것만 같던 사고가 2014년에 발생하니, 마치 김 일병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사고로 아찔한 감정을 겪는 일은, 희생된 사람의 수가 그렇듯이 이미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정부와 군이 이번만큼은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쳐나가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비정상인 부분을 정상적이게끔' 믿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구체적이고도 세밀하게 파악해야 가능한 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부탁하건대 사건이 잊혀지기를 바라며 입을 다물고 국방부 시계만을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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