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도주 사병을 검거하기 위한 검문검색이 고성지역 7번 국도에서 실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총기 난사로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22사단에서는 꼭 30년인 1984년 6월에도 비슷한 참극이 발생했던 전례가 있다.
1984년 6월 26일, 22사단 건봉산 까치봉 GP에 근무하던 조아무개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 3발을 투척하고 소총으로 사격을 가해 동료 소대원 15명을 사살하고 11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도주했다.
이후 조 일병을 검거하기 위해 차단작전에 투입됐던 수색대원 4명이 지뢰를 밟아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군 당국은 사건 사흘 뒤인 29일 북한의 대남방송을 통해 조 일병이 월북한 사실을 확인했다. 대남방송에서 조 일병은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월북했다고 밝혔다. 이후 조 일병은 1998년 4월 21일 다른 월북자들과 함께 평양방송 <잊혀진 사람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5공화국 당시 발생한 이 사건은 보도되지 못하고 묻혀 졌지만, 지난 2006년 4월 일부 유족들이 대통령 직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진상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당시 사고로 사망한 한아무개 병장의 유족 한인기씨는 "군 당국이 주검과 사건현장 공개를 불허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보안법 운운하며 2~3일씩 감금 조사하는 등 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22사단은 민간인 월북과 이른바 '노크 귀순' 등의 사고로 기강해이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2009년 10월에는 민간인이 22사단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병사가 철책과 군의 경계망을 뚫고 GOP까지 내려와 귀순했다.
당시 이 부대는 귀순 병사가 내무반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표명할 때까지도 철책이 절단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밝혀져 군의 경계태세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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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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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사단, 30년 전에도 총기난사로 15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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