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들은 까다롭고 기센 사람들?

환경운동연합 전국 회원대회에 가보니

등록 2014.06.24 14:53수정 2014.06.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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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지난 22일 경주 보문 청소년수련관 앞에서 탈핵에 반대하는 환경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기념촬영한 모습
탈핵!!!지난 22일 경주 보문 청소년수련관 앞에서 탈핵에 반대하는 환경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기념촬영한 모습정대희

"주말에 경주에서 전국에 있는 환경운동가들이 모입니다."

지난 21일 오후 늦게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생뚱맞은 이야기에 가만히 수화기 너머로 들여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 괜찮으면 내일 경주로 오시죠"

경주, 사는 곳에서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침묵으로 대답했다. 머뭇거리는 모습이 연상됐는지 다시 한 번 휴대폰에서 음성이 새어나온다.

"편안한 마음으로 오세요"

경주여행을 벼르고 있던 마음이 갈등을 부추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경주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각오로 길을 나섰다.

'Stop 원전' 찰칵! 지난 22일 환경운동연합이 전국 회원대회를 개최, 경주 월성원자력본부 앞에서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결의대회를 열었다.
'Stop 원전' 찰칵!지난 22일 환경운동연합이 전국 회원대회를 개최, 경주 월성원자력본부 앞에서 노후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결의대회를 열었다.정대희

환경운동가들 경주로 모이다


지난 22일 도착한 경주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 6시 즈음, 안개에 뒤덮인 희뿌연 거리를 가로질러 모임 장소인 경주 보문 청소년수련관에 다다랐다. 각지에서 모여든 환경운동가들이 서로 인사를 하느라 바쁘다. 일반인 신분인 기자만 데면데면하다.

오후 7시 30분, 저녁식사를 마치고 배정된 방에서 쉬다 강당으로 향했다. 고백하건대 이날 행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환경운동가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딱딱한 분위기에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자리로 생각했다.


강당에 들어서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회원들이 가득하다. 벽면을 따라 각 지역별 활동사진을 담은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강당 한편 바닥에 깔개를 놓고 주저앉았다.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비집고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졸지만 말자"

오후 8시, 회원총회서 '탈핵결의문'이 채택됐다. 올해 중점사업 중 하나로 노후 원전 폐쇄를 위한 활동이 결정됐다. 곧이어 각 지역서 선발된 회원들이 단상에 올라 탈핵결의문을 나눠 읽는다. 첫 소절을 읊는 남자아이의 머리 위로 '대한민국, 원전에서 안전으로~ 끝'이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띈다.

오후 9시, 회원 장기자랑대회가 열리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오던 강당 안은 별 일이 생기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생소한 풍경이다.

첫 무대는 마창진(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 소속 원로들의 몫이었다. 선곡은 트로트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한 '탈핵송(Song)'이다. 전주가 흐르고 무대 뒤편 스크린에 가사가 뜨자 삼인방의 노래가 갑자기 '떼창'으로 바뀌었다. 한바탕 축제의 서막을 울리는 신호탄이었다.

오후 10시 45분, 예정된 행사가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피날레를 장식할 마지막 곡은 이태리 민요 '벨라 차오(bell ciao)'이다. 이 곡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에 저항하던 파르티잔들의 노래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선 참석자들이 익숙한 노래인 듯 후렴구 "오~벨라 차오, 벨라 차오, 벨라 차오~차오! 차오! 차오!"를 따라 부른다. '졸지만 말자'고 다짐했던 기자도 어느 틈엔가 축제를 즐기는 한 사람이 돼 "벨라 차오"를 외쳤다.

밤 11시, 강당 곳곳에 뒤풀이 자리가 마련됐다. 한 무리 틈에 섞여 가부좌 자세를 틀고 앉자 이윽고 술잔이 코밑으로 다가왔다. 받아든 술잔을 '홀짝홀짝' 마시며, 넋두리를 풀어놓는다. 그 순간, 사방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노랫가락이 귓가에 울렸다.

"Wat if..." 페이크다큐 영화 'What, if...'의 한 장면. 이 영화는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 후의 처절함과 긴박감을 담아낼 예정이다.
"Wat if..."페이크다큐 영화 'What, if...'의 한 장면. 이 영화는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 후의 처절함과 긴박감을 담아낼 예정이다. 정대희

환경운동가들이 원전 인근서 영화 촬영한 이유는?

다음 날 오전 8시 30분, 짐을 챙겨 숙소를 빠져나와 경주 월성원자력본부로 향했다. 둘째 날 첫 일정은 노후원전 폐쇄 결의대회다. 전국에서 모여든 500여 명의 환경운동가들은 원전 앞 길바닥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예고된 제2 세월호 참사', '1호기 수명연장 결사반대' '세월호에 승선한 나아리 주민'등의 팻말을 들고 집회를 열었다.

잇따라 참석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원전 반대 이유를 설파했다. 하지만 전날 동국대 김익중 교수의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김 교수는 원전 반대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전을 반대하면 대안 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원전은 단 한 번의 사고로 나라가 끝이 날 수 있다. 고로 대안이 무슨 필요고 부득이한 일이 아니다. 일단 막아야 하는 것이다."

오전 10시, 집회를 마친 환경운동가들이 월성원자력본부 인근의 나아해변에 집결했다. 페이크다큐 'What if...'의 촬영을 위해서다. 두 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촬영에서 환경운동가들은 월성원전의 사고 후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오후 4시, 예정된 일정을 끝마치고 경주의 유명관광지를 세 곳을 둘러보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되돌아오는 차 안, 경주여행보다 환경운동가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까다롭고 기센 사람들로만 생각했던 편견이 조금 허물어 들었다.

1박 2일간 함께하며 지켜본 그들은,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는데도 불편함을 자초해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괜스레 경주로 갈 때 휴게소마다 먹었던 자판기 커피를 올 때는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경주 월성 원전 #환경운동연합 #노후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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