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과 임병장, 너무 달랐던 군생활

[게릴라칼럼] 안팎으로 흔들리는 군,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

등록 2014.06.25 21:27수정 2014.06.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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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전선 GOP에서 동료 병사들을 살해한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 체포작전 이틀째인 2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와 마달리 사이 도로에서 작전에 참가한 22사단 장병들이 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앞산에서 총성이 들리자 급히 뛰어가고 있다.
동부전선 GOP에서 동료 병사들을 살해한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 체포작전 이틀째인 2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와 마달리 사이 도로에서 작전에 참가한 22사단 장병들이 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앞산에서 총성이 들리자 급히 뛰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가해자인 임아무개 병장이나 그의 총에 죽어간 다섯 명의 희생자에 버금가게 신경 쓰인 구석이 있었다. 바로 임 병장 생포 작전에 투입돼 미지의 두려움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을,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얼굴 가득 위장 크림을 바른 채 눈만 반짝이며 땅에 엎드리거나 은폐물에 몸을 숨긴 장병들의 모습... 그들은 누구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기고 누구를 쏘기 위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던 것인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착잡함을 거둘 수 없었다. 혹 군대 간 아들이 생포 작전에 투입된 모습을 TV 앞에서 마주한 부모가 있었다면, 그들이 느낀 당혹감은 오죽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군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고, 뒤따르는 체포조와 교전까지 벌여 민간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상황은 일찍이 마주할 수 없었던 위험이다. 

임 병장이 자해 뒤 체포되자, 많은 언론들은 '기수 열외', '왕따'의 병폐가 제대 석 달을 앞둔 병장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국방부는 부랴부랴 임 병장이 자해 전 쓴 메모에는 그렇게 볼 만한 내용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메모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 낸 해명이라 온전한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언론들이 군대 내 따돌림 문제에 대해 앞 다퉈 보도하자, 25일 국회 국방위 긴급현안질의에 나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집단 따돌림이라는 현상이 군에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과연 원인이 그것뿐이냐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혀 공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징병제

김 장관이 밝혔듯,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닌다'는 말년 병장이 왜 이 참극의 가해자가 됐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기수열외', '왕따'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23년 전에도, 행동이 굼뜨거나 군 생활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관심 사병'이 된 병사들이 있었다. 나는 대학 때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보안대(지금의 기무사)의 요시찰 대상이 됐다. 그러나 관심 사병이라고 해도 차별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사병들은 철저한 계급으로 움직였고, 관심 사병이라도, 행동이 굼떠 '고문관' 소리들 듣던 선임이라도, 기수열외나 집단 왕따는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 내 기수열외 문제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건 2011년 7월 4일 해병대 총기 난사사건 이후다. 해병대 김아무개 상병은 선임병은 물론 후임병들까지 '기수열외' '왕따'로 자신을 괴롭히자 동료 해병 4명을 사살하고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하려고 했다.


가해자가 된 김 상병은 훗날 조사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라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관습처럼 내려온 구타와 체벌은 없애지 못한 채, 계급조차 부정하게 만드는 '기수 열외' '왕따'의 새로운 악습이 뿌리내린 군대.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고 언제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분단의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징병제를 행할 땐 어떤 절차보다도 공정성과 결과의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돈과 권력으로 군대를 면제받고, 부모의 힘으로 좋은 보직에 배치될 수 있다면 이는 징병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며 국민의 평등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오히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이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에 임명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병역특혜 받은 사람 고위공직자에 내정하는 이유

말문 잇지 못하는 문창극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발표 도중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있다.
말문 잇지 못하는 문창극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발표 도중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있다. 이희훈

"군대는 '빽'이다."

23년 전 군대생활에서 나는 이 말이 진실임을 수차례 목격했다. 친척 중 영관 장교라도 하나 있으면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었고, 면회를 할 수 없는 기간임에도 외박까지 허용됐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문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연예병사들은 휴가와 외출을 다른 현역군인들에 비해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 내정자 아들은 복무기간 2년 동안 휴가만 64일 사용했다. 돈과 권력, '빽'의 힘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GOP에서 하루 4~5시간 자며 보초를 서야하는 병사들과 연예 병사, 국방부 장관 아들이 같은 처우를 받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비록 친일 문제로 낙마하긴 했지만 문창극 총리 내정자는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을 다녔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는 육군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면서 45개월 동안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본인들이야 합법적인 절차에 따랐다고 하지만, 훈련과 비상상황 때문에 위수지역조차 벗어나기 힘들었던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특혜가 아닐 수 없다. 충실하게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도 많은데 꼭 이런 사람들을 총리, 장관에 내정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번 총기사고의 가해자인 임 병장의 행위를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동료를 사살하고 무장 탈영한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이며, 무기 징역 이상의 형을 받더라도 그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임 병장 개인의 성격 장애가 빚은 일탈 행위로 치부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지난 2011년 발생한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때 당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부대관리에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유족들 앞에서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겸 국방부장관과 군 수뇌부는 절대 이 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책임 추궁이 우선... 국방의 의무를 정상화하라

구타와 체벌, 기수 열외와 왕따가 존재하는 한 군의 존엄을 세울 수 없다. 또 돈과 권력으로 군 면제와 휴가, 보직을 결정하는 현실에 눈감으며 국민들에게 '국방의 의무는 신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군 면제자, 이해할 수 없는 특혜 속에서 군 생활 한 사람들을 장·차관에 내정하면서 총기 난사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통령은 결단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로서 안팎으로 흔들리는 군을 이대로 둬선 안 된다. 또다시 병영문화 개선, 재발 방지의 섣부른 약속도 하지 마시라. 3년 전 해병대 총기 사고 때 이런 약속했던 군 수뇌부가 아니던가. 약속보다 책임 추궁이 우선이다.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총리, 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비정상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대통령의 외침이 빈말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국방의 의무'를 정상화하라.
#총기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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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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