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GOP에서 동료 병사들을 살해한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 체포작전 이틀째인 2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와 마달리 사이 도로에서 작전에 참가한 22사단 장병들이 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앞산에서 총성이 들리자 급히 뛰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가해자인 임아무개 병장이나 그의 총에 죽어간 다섯 명의 희생자에 버금가게 신경 쓰인 구석이 있었다. 바로 임 병장 생포 작전에 투입돼 미지의 두려움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을,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얼굴 가득 위장 크림을 바른 채 눈만 반짝이며 땅에 엎드리거나 은폐물에 몸을 숨긴 장병들의 모습... 그들은 누구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기고 누구를 쏘기 위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던 것인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착잡함을 거둘 수 없었다. 혹 군대 간 아들이 생포 작전에 투입된 모습을 TV 앞에서 마주한 부모가 있었다면, 그들이 느낀 당혹감은 오죽했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세월호 대참사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군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고, 뒤따르는 체포조와 교전까지 벌여 민간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상황은 일찍이 마주할 수 없었던 위험이다.
임 병장이 자해 뒤 체포되자, 많은 언론들은 '기수 열외', '왕따'의 병폐가 제대 석 달을 앞둔 병장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국방부는 부랴부랴 임 병장이 자해 전 쓴 메모에는 그렇게 볼 만한 내용이 없다고 강변했지만, 메모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 낸 해명이라 온전한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언론들이 군대 내 따돌림 문제에 대해 앞 다퉈 보도하자, 25일 국회 국방위 긴급현안질의에 나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집단 따돌림이라는 현상이 군에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과연 원인이 그것뿐이냐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혀 공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징병제김 장관이 밝혔듯,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닌다'는 말년 병장이 왜 이 참극의 가해자가 됐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기수열외', '왕따'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23년 전에도, 행동이 굼뜨거나 군 생활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관심 사병'이 된 병사들이 있었다. 나는 대학 때 데모를 했다는 이유로 보안대(지금의 기무사)의 요시찰 대상이 됐다. 그러나 관심 사병이라고 해도 차별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사병들은 철저한 계급으로 움직였고, 관심 사병이라도, 행동이 굼떠 '고문관' 소리들 듣던 선임이라도, 기수열외나 집단 왕따는 존재하지 않았다.
군대 내 기수열외 문제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건 2011년 7월 4일 해병대 총기 난사사건 이후다. 해병대 김아무개 상병은 선임병은 물론 후임병들까지 '기수열외' '왕따'로 자신을 괴롭히자 동료 해병 4명을 사살하고 수류탄을 터트려 자살하려고 했다.
가해자가 된 김 상병은 훗날 조사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 이상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라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관습처럼 내려온 구타와 체벌은 없애지 못한 채, 계급조차 부정하게 만드는 '기수 열외' '왕따'의 새로운 악습이 뿌리내린 군대.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고 언제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분단의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징병제를 행할 땐 어떤 절차보다도 공정성과 결과의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돈과 권력으로 군대를 면제받고, 부모의 힘으로 좋은 보직에 배치될 수 있다면 이는 징병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며 국민의 평등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오히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이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에 임명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병역특혜 받은 사람 고위공직자에 내정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