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4일(현지시각) 브라질 헤시피의 페르남부쿠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코트디부아르와 일본과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로그바가 코트디부아르의 골이 터지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EPA
블라터가 이끄는 피파는 자신들의 위치를 법을 초월한 자리에 놓으려고 하는 듯하다. 가령 모든 월드컵 개최 후보 국가는 피파에 이른바 '지원서'라는 이름의 두툼한 책자를 제출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개최 후보 국가가 월드컵 대회를 개최할 경우 어떤 특정한 법적 권리의 행사를 포기한다는 보증 목록이 들어간다.
예컨대 이 보증 목록의 다섯 번째 항목은 개최국이 피파 패밀리에게 특별한 환율 규정을 보장해 주도록 강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이를 피파에 속하는 축구 패밀리의 공식 휘장을 달고 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금융거래의 면허장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개최국의 돈세탁 방지법을 무용화한다는 이런 조치에 대해 피파는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피파의 요구 목록 중에는 자신들이 월드컵을 보증하는 것에 대한 요구 사항으로 각국 정부들에 민감하기 짝이 없는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달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월드컵 경기와 행사를 방문하고 관람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입국 비자와 출국 허가가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으로 즉각 주어져야 한다. 만약 거부해야 할 중요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반드시 피파에 만족스러울 정도의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국가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거래를 허용해왔다는 사실은 경각심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다는 점도! 사안은 정치가가 스포츠의 오만방자한 권력욕에 얼마나 깊숙이 연루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회 유치를 위해서라면 그저 눈 질끈 감고 모든 걸 받아준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우상을 떠받들기 바쁜 세상에서 누가 흥을 깨는 역할을 자청하겠는가? 민족주의에 취한 스포츠 열기는 국가를 떠받드는 모든 합리적 가치를 질식시킨다. (363~364쪽)지금 TV 화면에 비춰지는 브라질 월드컵은 흥성거리는 잔치판과 다름없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는 거리의 반월드컵 시위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곳에서 터져 나온 "내 월드컵은 교육과 건강이다!"라는 구호는,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에 쏟아부었다는 14조 원의 돈이 어떤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마련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피파가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는 돈이다"더 큰 문제는 이번 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브라질이 온두라스와 콜롬비아에 이어 지니계수(소득분배 불평등지수) 순위가 3위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돈이 딴 곳으로 새기 쉽다고 한다.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단독 후보로 나선 브라질이 피파와 어떤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유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블라터의 후계자가 될 야망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제롬 발케(현 피파 사무총장)는 축구라는 세계가 현실 세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브라질에서 완벽하게 대변했다. 이미 4월에 발케는 축구 임원의 냉소주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실언을 한 바 있다. "월드컵을 조직하는 데 좀 덜한 민주주의가 훨씬 낫다!" 발케는 '강한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수장, 이를테면 2018 월드컵의 푸틴과 같은 국가 수장'을 갈망했다. 안정적인 민주주의는 아무런 마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스포츠 이벤트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라는 독재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견해다. (411~412쪽)월드컵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인가. 이 책 띠지에는 "피파가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는 돈이다."라는 말이 박혀 있다. 피파가 주도하는 상업적이고 비민주적인 월드컵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대신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저자에 따르면 피파는 규약상으로는 버섯재배농가연맹이나 토끼사육연맹과 다를 바 없는 일개 단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수억 명의 팬들과, 그들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쌓으려는 정치가들 덕분에 피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마피아 뺨치는 조직 범죄를 저지르는 피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견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외면한다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정말 소중히 지켜야할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브라질의 가난한 시민들이 정부가 월드컵에 쏟아부은 수조 원의 돈 때문에 진정으로 필요했던 학교, 병원, 대중교통을 잃어리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들은 '우리 모두의 문제'들이다!
<피파 마피아>(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 6. 9. / 455쪽 / 20,000원)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공유하기
한국의 4강진출... 피파 수뇌부의 '조작'이었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