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4강진출... 피파 수뇌부의 '조작'이었나

탐사보도 걸작 <피파 마피아>... 환율규정 보장 등 특권 누려

등록 2014.07.01 18:40수정 2014.07.0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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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파 마피아>
<피파 마피아>돌베개
지난 6월 13일 시작된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중반을 넘어섰다. 한국 대표 팀은 '0승'이라는 역대 본선진출 최악에 가까운 성적표를 안은 채 지난 6월 30일 귀국했다. 인천공항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호박엿 맛 사탕이었다. 기념 촬영을 기다리던 대표 팀에게 한 극성스러운 축구 팬이 귀국 '선물'로 던진 것이었다.

이번에 한국 팀이 맞닥뜨린 '호박엿 사태'는 월드컵이 개최될 때마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무수한 서사들에 비하면 별다른 게 아니다. 온 세상 사람이 열광하는 월드컵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지상 최대의 스포츠 제전이다. 무수한 영웅과 악인이 명멸하는 대하 서사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거대한 드라마의 맨 앞자리는 각자 자신만의 놀라운 활약상을 펼치는 축구 영웅들이 차지한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에게 환호하는 세계 각국의 축구 팬들 역시 다채로운 일화들의 주인공이 된다. 월드컵 개최국 또한 마찬가지다. 대회 개최에 따른 사회, 경제, 문화적 결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점 덕분에 개최국은 월드컵 드라마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배역을 맡는다.

세계축구협회의 탐욕과 비리를 그린 <피파 마피아>

<피파 마피아>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은 명멸하는 축구 영웅이나 극성스러운 축구 팬들이 아니다. 14조 원의 돈을 쏟아붓고도 격렬한 반월드컵 시위로 인해 몸살을 겪고 있는 브라질 같은 개최국도 아니다.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폭력 조직 이름인 '마피아'를 꼬리표처럼 달고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세계축구협회(FIFA) (아래 '피파')다.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는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 소속으로 오랫동안 스포츠 정치 분야를 담당해온 베테랑 기자다. 스포츠 정치와 스포츠의 조직범죄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탐사전문기자이기도 하다. 1990년부터 월드컵이 열리는 현장을 모두 찾아다니면서 피파와 국제 스포츠 조직들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저자는 스포츠로 벌이는 돈벌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해주는 게 기자 본인의 임무라고 말한다.

스스로 규제하고 통제할 권한을 부여받은 유일한 사회 영역인 자율적인 스포츠는 그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전혀 다른 세상을 빚어냈습니다. 쉽고 편하게 돈을 벌지만 동시에 그 어떤 독립적인 통제도 받지 않는 모든 인생 영역이 그러하듯, 축구에서 인간의 결함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부풀려졌습니다. 모두 그런 건 아닐지라도 거의 모두 그렇습니다. (<피파 마피아>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저자는 스포츠가 탐욕과 허영으로 지배되고 있다고 단언한다. 부패 의심을 받지 않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전혀 없다시피 하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러시아와 카타르가 2018·2022 월드컵 개최국으로 지정된 과정에 극심한 의혹이 일었다고 본다. 브라질 월드컵도 그 유치 과정에서 현재 개최국인 브라질이 단독 후보로 나온 점 때문에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브라질과 피파 사이의 정치 관계나 이와 관련된 비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피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스포츠 정치의 음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자는 피파 수뇌부가 늘 개최국이 마지막 4강에 들도록 일을 꾸며왔다고 폭로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대회 분위기는 물론이고 돈벌이에도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최국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2002 한일 공동 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4강에 든 '신화'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피파 마피아'의 수장은 현 8대 회장인 제프 블라터다. 스위스 출신으로 1998년에 처음 회장에 선출된 블라터는 네 번째 연임을 거치며 피파에서 장기집권체제를 굳힌 인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블라터는 안전요원과 스파이, 비서 등 현대판 노예들의 극진한 시중을 받으며 지구를 순회한다. 블라터 일행에게 퍼스트클래스와 별 다섯 개짜리 호텔, 경찰의 경호대는 필수다. 블라터의 손가락질 한 번으로 왕궁과 대통령 관저가 활짝 열릴 정도라고 하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브라질월드컵 위해 희생된 시민들, 그리고 피파의 그림자

 지난 6월 14일(현지시각) 브라질 헤시피의 페르남부쿠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코트디부아르와 일본과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로그바가 코트디부아르의 골이 터지자 기뻐하고 있다.
지난 6월 14일(현지시각) 브라질 헤시피의 페르남부쿠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코트디부아르와 일본과의 경기에서 디디에 드로그바가 코트디부아르의 골이 터지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EPA

블라터가 이끄는 피파는 자신들의 위치를 법을 초월한 자리에 놓으려고 하는 듯하다. 가령 모든 월드컵 개최 후보 국가는 피파에 이른바 '지원서'라는 이름의 두툼한 책자를 제출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개최 후보 국가가 월드컵 대회를 개최할 경우 어떤 특정한 법적 권리의 행사를 포기한다는 보증 목록이 들어간다.

예컨대 이 보증 목록의 다섯 번째 항목은 개최국이 피파 패밀리에게 특별한 환율 규정을 보장해 주도록 강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이를 피파에 속하는 축구 패밀리의 공식 휘장을 달고 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금융거래의 면허장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개최국의 돈세탁 방지법을 무용화한다는 이런 조치에 대해 피파는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피파의 요구 목록 중에는 자신들이 월드컵을 보증하는 것에 대한 요구 사항으로 각국 정부들에 민감하기 짝이 없는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달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월드컵 경기와 행사를 방문하고 관람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입국 비자와 출국 허가가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으로 즉각 주어져야 한다. 만약 거부해야 할 중요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반드시 피파에 만족스러울 정도의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

국가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거래를 허용해왔다는 사실은 경각심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다는 점도! 사안은 정치가가 스포츠의 오만방자한 권력욕에 얼마나 깊숙이 연루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회 유치를 위해서라면 그저 눈 질끈 감고 모든 걸 받아준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의 우상을 떠받들기 바쁜 세상에서 누가 흥을 깨는 역할을 자청하겠는가? 민족주의에 취한 스포츠 열기는 국가를 떠받드는 모든 합리적 가치를 질식시킨다. (363~364쪽)

지금 TV 화면에 비춰지는 브라질 월드컵은 흥성거리는 잔치판과 다름없다. 하지만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는 거리의 반월드컵 시위대를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곳에서 터져 나온 "내 월드컵은 교육과 건강이다!"라는 구호는,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에 쏟아부었다는 14조 원의 돈이 어떤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마련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피파가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는 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브라질이 온두라스와 콜롬비아에 이어 지니계수(소득분배 불평등지수) 순위가 3위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돈이 딴 곳으로 새기 쉽다고 한다.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단독 후보로 나선 브라질이 피파와 어떤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유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블라터의 후계자가 될 야망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제롬 발케(현 피파 사무총장)는 축구라는 세계가 현실 세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브라질에서 완벽하게 대변했다. 이미 4월에 발케는 축구 임원의 냉소주의를 그대로 드러내는 실언을 한 바 있다. "월드컵을 조직하는 데 좀 덜한 민주주의가 훨씬 낫다!" 발케는 '강한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수장, 이를테면 2018 월드컵의 푸틴과 같은 국가 수장'을 갈망했다. 안정적인 민주주의는 아무런 마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스포츠 이벤트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라는 독재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견해다. (411~412쪽)

월드컵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제인가. 이 책 띠지에는 "피파가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는 돈이다."라는 말이 박혀 있다. 피파가 주도하는 상업적이고 비민주적인 월드컵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대신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저자에 따르면 피파는 규약상으로는 버섯재배농가연맹이나 토끼사육연맹과 다를 바 없는 일개 단체에 불과하다. 하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수억 명의 팬들과, 그들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쌓으려는 정치가들 덕분에 피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마피아 뺨치는 조직 범죄를 저지르는 피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견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외면한다면 뜨겁게 달아올랐던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정말 소중히 지켜야할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브라질의 가난한 시민들이 정부가 월드컵에 쏟아부은 수조 원의 돈 때문에 진정으로 필요했던 학교, 병원, 대중교통을 잃어리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들은 '우리 모두의 문제'들이다!

<피파 마피아>(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 6. 9. / 455쪽 / 20,000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4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돌베개 #제프 블라터 #2014 브라질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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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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