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白樹)'의 꽃 향연이 더욱 창대히 펼쳐지기를!

<백수문학> 제71호 출간을 축하하며

등록 2014.07.09 14:14수정 2014.07.0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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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시(옛 충남 연기군)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예지가 있다. <백수문학>이다. 1956년에 창간되어 58년의 연륜을 쌓으면서 올해 2014년 상반기에 제71호를 발간했다. <백수문학>은 현재 발간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문예지들 중에서 1955년에 창간된 <현대문학> 다음으로 가장 오랜 연륜을 지닌 문예지다. 지역문예지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 지령을 쌓고 있는 문예지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채 가시지도 않은 1950년대 중반 농촌지역에서 탄생한 문예지가 단 한 번의 정간이나 휴간도 없이, 근 60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면서 71호의 지령을 쌓았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찬탄과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백수문학>는 올해 상반기호인 제71호를 준비하면서 내게 기획특집 '세종시대의 백수문학-백수를 말하다'에 올릴 글을 부탁해왔다. 그리고 책머리의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정종명 한국문인협회장 글 다음에 내 글을 실었다. 한국 지역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백수문학>의 역사와 속내를 알릴 겸 제71호에 실린 내 글을 소개한다.
   
a <백수문학> 제71호 표지 세종시(옛 충남 연기군)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예지 <백수문학>. 2014년 상반기호인 제71호가 최근 출간됐다.

<백수문학> 제71호 표지 세종시(옛 충남 연기군)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문예지 <백수문학>. 2014년 상반기호인 제71호가 최근 출간됐다. ⓒ 지요하


외경심의 대상이던 <백수문학>

나는 1982년에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 전 해인 1981년에 고장(충남 태안)에서 '흙빛문학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1982년 <흙빛문학> 창간호를 발간했는데,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흙빛문학>은 충남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지역문예지라는 말을 하곤 했다.

당시는 대전과 충남이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리고 대전에서는 <호서문학>과 <도가니문학>이라는 문예지가 나오고 있었다(<도가니문학>은 1980년대 중반 <오늘의 문학>으로 이름이 바뀐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1989년에는 대전이 충남과 분리되어 대전광역시라는 이름을 갖게 되지만, 나는 대전이 분리되기 훨씬 전부터 충남과 대전을 구분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호서문학>과 <도가니문학>을 배제하고, <흙빛문학>이 충남의 지역문예지로서는 두 번째 주자라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충남 조치원에서 발간되는 <백수문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충남에서는 <백수문학> 외로도 <충남문학>이 연간지로 나오고 있었지만, <충남문학>은 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후에 충남지회)의 지관지여서 자생적 지역문예지로 보기에는 합당치 않은 감이 있었다.

아무튼 <백수문학>을 의식하여 <흙빛문학>이 충남의 두 번째 지역문예지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런 말을 할 때는 조치원의 <백수문학>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백수문학>을 말할 때는 '연기'라는 군 단위 지명보다 '조치원'이라는 동네 이름을 주로 입에 올리곤 했다.


그런데 충남의 첫 번째 지역문예지인 <백수문학>과 두 번째 주자인 <흙빛문학>을 입에 올릴 때는 묘한 열패감 같은 것이 있었다. 두 문예지의 연륜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서 오는 느낌이었다. 1982년 <흙빛문학>을 창간할 때 <백수문학>은 이미 26년의 연륜을 쌓고 있었다. 26년이라는 연륜 차이가 내게는 너무 심대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만큼 <백수문학>은 내게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6․25한국전쟁의 참화가 채 가시지도 않은 1950년대 중반에 조치원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충남 최초의 지역문예지가 창간되고, 30년 가까이 꿋꿋하게 지령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무거울 정도의 외경심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30년 가까운 연륜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두 번째 주자답게 <흙빛문학>을 잘 가꾸어서 질량 면에서 <백수문학>을 능가하는 문예지로 만들어야겠다는 의기 같은 것을 단단히 지닐 수 있었다.


<백수문학>과의 인연

나는 일찍부터 <백수문학>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백수문학>의 청탁을 받고 1986년 <백수문학> 제20집에 에세이 <고향에 몸을 놓고>를 발표했다. <백수문학>은 내 글을 '권두 초대 글'로 책의 맨 앞머리에 실었는데, 나는 이 글에서 중앙과 지방의 관계, '중앙'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모순점 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또 충남 지역문예지의 선두 주자인 <백수문학>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을 잊지 않았다.

1987년 <백수문학> 제21집에는 단편소설 <백주, 그 우울>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었다. 1975년 모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저항아>라는 제목으로 응모했던 작품인데, 당선작으로 뽑혔다가 긴급조치 제9호가 발동되었던 당시의 시대상황과 관련하여 편집국장 데스크에서 당선이 취소되었던 작품이었다.

나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에도 이 소설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백수문학>의 소설 청탁을 받고 1987년 <백수문학> 제21집에 아낌없이 이 작품을 발표했던 것이다.

당시 <백수문학>은 구성원들 간에 장기간 이어지는 모종의 분규를 겪고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 분규가 적절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백수문학>의 청탁을 받아들여 기꺼이 소설 원고를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7년 만에 다시 받은 <백수문학> 원고 청탁

그때로부터 어언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나는 이제 60대 중반의 세월을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백수문학>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감회가 새롭다. 세월이 겅중겅중 흐르는 동안 '조치원'이라는 동네 이름보다는 '연기'라는 군 단위 이름이 더 커지는 것 같더니, 돌연 세종시라는 이름이 출현했다. 조치원과 연기 모두 세종시라는 이름 안으로 흡수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더라도(세종시라는 이름 안에서라도) 조치원과 연기라는 지명도 길이 보존되었으면 싶고, 옛날의 '광채'도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라는 신도시의 출현으로 그 안의 깊은 유래를 지닌 지명들은 자연 퇴색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백수문학>은 꿋꿋하게 존재하니 여간 다행이 아니다. 세종시 안에서 <백수문학>은 연기군의 명맥, 조치원읍의 정서를 잘 유지시키며 그 애향 정신으로 세종시의 풍모를 알차게 가꾸어가게 되리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세종시의 본바닥에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향토 문인들을 많이 알고 있다. <백수문학>의 창간 주역들이신 고 백용운 선생과 강금종 선생의 생전 모습을 환히 기억하고 있고, 원로 문인이신 김제영 선생과 요즘에도 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이길환 작가와 <충남소설가협회> 안에서 오랫동안 인연의 끈을 튼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또 장시종 시인의 전원생활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백수문학>으로 인해 '문향(文鄕)'의 기운이 질박한 그 고장을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그곳을 갈 때마다 문향의 이미지가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 다시 그곳을 가게 된다면, 세종시 안에서도 연기와 조치원 땅을 밟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은데, <백수문학>이 존재함으로써 그것은 좀 더 가능할 것도 같다.

최초 지역문예지, 지방문학의 선두 주자

<백수문학>이 근 60년의 연륜 위에서 지령 71호를 쌓는다고 한다. 지역에서 생겨나 지역에 뿌리를 박고 있는 순수문예지가 60년의 연륜과 71호의 지령을 쌓는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인 일이다. '문학 인구의 감소'라는 시대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경제 상황이 옛날보다는 낫다. <백수문학>의 연륜 안에는 전쟁의 참화가 남아 있었던 50년대와 경제가 궁핍했던 60년대의 그림자가 어려 있으니, 경이로움은 더욱 크다.

그 경이로움 위에서, 또 세종시라는 이름의 확대된 토대 위에서 발간되는 이번 71호는 이래저래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 조치원의 정서, 연기의 명맥 위에서 세종시의 풍모를 좀 더 알차게 가꾸어가야 할 명제도 분명한 것 같다.

<백수문학>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부심'을 주문하고 싶다. 세종특별자치시와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북도를 아우르는 충청권 최초의 지역문예지, 지방문학의 선두 주자라는 자긍심을 더욱 명료히 지닐 필요가 있다. <백수문학>은 그 연륜으로 인해 그대로 세종시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신생도시가 60년의 연륜을 지닌 지역문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자랑할 만한 일이다.

<백수문학>은 신생도시 세종시의 대표적인 정신문화의 실체다. 구성원들 스스로 그런 인식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세종시의 정신문화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문학 활동을 해야 한다. 깊은 생각, 너른 마음, 높은 정신의 실체인 문학은 자존감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연륜 60년과 지령 71호를 쌓은 오늘의 금자탑을 주시하며 문학에 대한 긍지와 정신문화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뜨겁게 지니고, '백수(白樹)'의 꽃 향연을 한층 창대히 펼쳐나가기를 축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백수문학> 제71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백수문학 #흙빛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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