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격태격 싸워도, 그래도 말 통하는 둘이서 논다.
이성애
"우리가 바비큐 준비할게요"... 내던진 한마디에다행히 바르셀로나 외곽의 유명캠핑장에서 한국인 가정을 만났다. 준서네와 민이네다. 준서네가 이탈리아를 향해 떠날 즈음 민이네가 들어왔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온가족이 단단해 보인다. 초등생 아들과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2년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나왔단다.
한국에 살 때 막연히 "우린 곧 세계 여행을 갈 것이다"라고 아이들에게 말을 했단다. 그런데 그 시기가 하필 중 2짜리 큰 아들이 학교에서 반장이 되어 한창 그의 큰 뜻을 펼치려고 할 때였다. 외모, 풍채, 성품 모든 것이 반장감이었다. 친구를 포기하고 나오는 게 힘들었다는 말에 심히 안타까웠다.
학교를 그만두고 2년 동안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를 감안했을 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이름난 대학에 가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물론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을 위해 수학을 중심으로 주지 교과의 교과서를 챙겨오긴 했지만 역시 2년은 그대로 학습 결손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되도록 성적과 학교생활에 대한 타격을 줄이고자 나처럼 어린 유치원생을 끌고 나와 이런저런 고생을 하는 것이나 중·초학생을 데리고 나와 이후 겪게 될 고난, 후회로 마음 고생 할 민이네나 서로가 대단하면서도 한편 딱하다.
두려움, 걱정, 염려. 그래도 나는 5개월 후면 이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돌아갈 직장이 있지만 직장, 학교를 그만 두고 나온 민이네는 2년 후 한국에 돌아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어쩌면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난 그들의 선택이 너무 극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현실이 원망스럽고 그 가족이 안쓰러웠다. 본인의 의지로 퇴직을 선택했길 바라보지만 너무 순종적이고 성실할 것 같은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어쩌면 원치 않는 퇴직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슬픈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우린 얼마나 마음을 나누지도 못했으면서 그만 "내일 저녁 함께 먹어요. 우리가 바비큐 준비할게요"라고 말해 버리고 말았다. 넉넉지 않은 경비를 아껴 써야 하는 장기여행자가 파티를 제안하는 건 제법 큰 경제적 출혈과 육체적 피곤을 의미하나 우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말해 버렸다. 사실 그때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격려와 응원이 녹아난 식사 한 끼' 먹여 주길 바랐던 마음이 간절했던 때였기에.
내가 간절한 그것을 2년 중 이제 20일도 여행하지 않은 그 가족을 위해 선물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받고 싶었던 선물.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기로 한 날이 하필 스페인 국경일이란다. 우린 전혀 몰랐다. 그런데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겠다고 말을 내뱉고 이미 상상 속의 고기는 숯불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데 "그런데 내일이 국경일이라 가게 문을 다 닫을 텐데요"라고 민이 아빠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없던 것으로 하기엔 여러모로 애매했다. 게으른 캠퍼가 뭘 아는 게 있을까마는. 어디서 재료를 사야 할까? 순간 난감하다.
그러나 까르푸, 리들 등 큰 마트는 문을 닫아도 현지인이 사는 주택지로 가면 작은 구멍가게는 장사를 할 것이란 판단이 섰다. 출신국이 다양한 나라인 만큼(사실 스페인의 작은 식료품 상점은 인도, 파키스탄 등의 출신들이 어느 정도 장악한 느낌) 녹록지 않은 이국에서 보다 안락한 삶, 자식의 공부를 위해 그 많은 이민자 중 누군가는 돈을 바짝 벌 요량으로 노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상점 문을 열 것이다, 라고 추측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건너간 한국인들도 휴일 없이 가게의 문을 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좋다. 관광자의 천국인, 바르셀로나가 북쪽이라면 우린 정확히 서쪽에 있는 주택지로 간다. 현지인 구역이 분명한 그곳에 문을 연 가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갔다. 서쪽 현지인 마을을 향해. 이름도 모른다. 돌아와서도 지도에서 찾아보지도 않았다.
현지인 마을을 돌다가 드디어 대형마트보다는 살짝 비싼, 그러나 편의점보다는 싸게 다양한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디아마트를 발견했다. 운전에만 집중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딱히 못미더운 아내를 가진, 고로 이번에도 눈을 까뒤집고 마트를 찾은 건 남편이었다.
그리고 다 샀다. 현지인 동네에 가면 왜 꼭 무엇이 먹고 싶은지. 주차를 아주 빨리 쉽게 한 후 거리에 올라섰다. 저 앞 쪽 레스토랑이 정확히 두 개가 있는데 한 쪽은 대기자가 있는 대박집이고 그 옆은 쪽박집이다. 잠시 망설이다 결정했다. 대박집 대기줄에 합류해 봤자 이 긴 대기 시간을 기다렸다가 먹기엔 우리 입맛이 스페인 맛집의 미묘한 맛을 그다지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해 과감히 지나쳤다. 그 옆 쪽박집에 앉으려니 가까이 처음엔 보이지 않았던 또 하나의 레스토랑이 보였다.
그래서 또 쪽박집을 지나쳐 코너에 있는 한 식당에 앉았다. 중국인이 뛰쳐나온다. 내가 만난 중국인, 정확히 말하면 화교라 불리는 이주 중국인 중 가장 밝은 화색과 귀여운 웃음을 가진 아저씨다. 가게 안쪽엔 아내로 보이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아기와 놀고 계셨다.
주인아저씨는 우리에게 "차이니즈?" 하시며 중국말을 하시다가 남편의 당황하는 귀여운 표정을 보고는 "자폰?" 물으신다. 한국이라고 말하자 많이 반가워하신다. 나중에 제이콥에게 들으니 이 동네에선 일본인, 한국인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 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콧대 높았던 인도인 '제이콥', 알고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