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사흘 문 닫는 '대박' 빵집의 비밀

[서평] 와타나베 이타루가 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등록 2014.07.14 14:35수정 2014.07.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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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을 찾고 노동과 삶이 하나 된 인생을 사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본의 변방마을 가쓰야마에 있는 '다루마리'라는 빵집 주인 겸 제빵사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삶의 본질을 찾고 노동과 삶이 하나되는 인생을 위하여 별나게 빵을 굽습니다.

겉보기엔 그냥 빵집이지만 흔해 빠진 그냥 빵집이 아닙니다. 10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이 빵집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천연 원료와 천연균으로 만든 주종을 사용하여 몸에 좋은 빵을 굽는 빵집입니다.


물론, 흔하진 않지만 좋은 재료로 좋은 빵을 굽는 빵집은 도시에도 더러 있습니다. '다루마리'는 작은 시골 빵집이지만 "사람을 값싸게 부리기 위한 불완전한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진정한 음식을 만들며 소리없는 경제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자부하는 빵집입니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빵집, 정말일까?

 와타나베 이타루가 쓴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겉 표지
와타나베 이타루가 쓴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겉 표지더숲
도대체 빵집이 무슨 경제 혁명을 일으키냐고 반문하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요. 책을 읽어보면 신선한 발상과 실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현재 참 희한한 빵집을 운영 중이다. 오카야마 역에서 전철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산 속의 빵집. 대표 메뉴는 '일본식빵'이다. 고택에 붙어사는 천연균으로 만든 주종을 써서 발효시킨 빵인데 가격은 350엔(3563원)으로 좀 비싼 편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는다. 우리 가게의 경영 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본문 중에서)

'소리없는 경제 혁명'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것도 바로 이런 놀라운 사실들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빵집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하루나 이틀 동안 손해를 감수하고 빵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을 경영 이념으로 하는 빵집이 있다니 어찌 쉽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동안 하루 살이 아르바이트로 세월을 보내던 청년 와타나베는 안식년을 맞은 아버지를 따라 헝가리로 갑니다. 헝가리의 일본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발레리나를 통해 한심하고 초라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 굳은 결심 끝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합니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때늦은 입시 공부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로 했던 의학 공부 대신 농학을 전공합니다. 막연히 시골 생활을 동경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에 서른이 넘은 나이로 유기농산물 유통회사에 취직합니다. 그러나 원산지 허위 표시니, 뒷돈 거래니 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스스로 회사를 그만둡니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삶을 찾아가던 와타나베는 외부 세계에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에 주목하는 대신에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균을 연구하던 할아버지, 마르크스에 탐닉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이 청년은 '작아도 진정한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끝에 빵집을 열기로 마음먹습니다.

4년 반 동안 네 군데의 빵집을 옮겨다니며 제빵 기술을 익힌 그는 유기농 유통회사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2007년 4월 마침내 시골 마을에서 빵집을 개업합니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론이라는 시한 폭탄이 터지고 세계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으며 막 빵집을 시작한 그도 불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시골 빵집 사장, '자본론'을 공부하다

 시골 빵집 '다루마리' 단체 사진.
시골 빵집 '다루마리' 단체 사진. 도서출판 더숲

빵집 개업과 동시에 불항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아들에게 학자인 그의 아버지는 생뚱맞게도 마르크스를 읽어보라고 권유합니다. 동네 빵집 운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마르크스'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아버지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여 <자본론>을 읽고 자본주의 바깥으로 나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와타나베 이타루는 진정한 자기 일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돈이 지닌 부자연성과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자본론'과 '천연균'의 모습에서 배웁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그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난 것이 바로 돈이며,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본문 중에서)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을 축적하지 않기 위하여 그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경영을 선택합니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대신 선순환이 가능한 적정이윤을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본론 해설서를 펼쳐든 와타나베는 19세기 산업혁명 직후 영국의 빵집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자신의 견습생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음의 인용문은 마르크스가 묘사한 19세기 영국 제빵노동자의 일과입니다.

업무가 시작되는 시각은 놀랍게도 날도 바뀌기 전인 밤 11시였다, 그때부터 빵 반죽을 했고, 잠도 반죽 테이블 위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였다. 두세 시간 얕은 잠을 자고 나면 이번에는 다섯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빵을 구웠다. 그 후에는 직접 손수레를 밀고 구운 빵을 배달해야 했다. 업무가 끝나는 시각은 오후 1시. 늦을 때는 6시까지도 이어졌다.(본문 중에서)

다음은 150년 지난 21세기 도쿄에 있는 빵집에서 와타나베가 직접 경험한 제빵 노동자의 일과입니다.

2002년 12월, 빵을 만들겠다는 필사의 각오로 회사를 그만둔 나는 도쿄 교외의 주택가에 있는 한 빵집에 들어갔다...(중략)... '우리는 두 시부터 작업을 하니까 15분 정도 일찍 나와'...(중략)... 새벽 2시부터 쉬지 않고 일하기를 열다섯 시간(오후 5시까지). 매일 이런 식으로 일해야 한다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본문 중에서)

항상 오후 5시에 가게 문을 닫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날은 오후 7시가 넘어서까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식사시간이나 휴식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눈치껏 주먹밥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150년 전 빵집 풍경, 왜 지금과 비슷할까  

 시골 빵집 '다루마리'에서 빵 굽는 모습
시골 빵집 '다루마리'에서 빵 굽는 모습도서출판 더숲

자본론을 펼쳐든 와타나베는 제빵 노동자의 삶이 150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깨달아 나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빵집을 사례로 하여 자본론의 기본 개념을 설명해 나갑니다. 상품이란 무엇인가부터 사용가치, 교환가치, 가격에 숨은 비밀, 임금의 정체, 이윤의 탄생, 노동력과 생산수단, 기술혁신과 이윤축적에 관하여 쉽게, 정말 쉽게 설명해줍니다.

짧고 쉬운 자본론 강의를 통해 왜 사람들은 (겉은 화려하고 멀쩡하지만) 점점 더 형편없는 빵(첨가물로 범벅이 된)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빵집 주인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농약을 마구 뿌린 수입 밀가루를 주재료로 인공 발효제(이스트)와 각종 식품 첨가물을 섞어 빵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만든 빵은 일정 기간 동안 썩지 않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게 됩니다. 이스트와 첨가물, 농약같은 기술혁신이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이런 음식들이 먹거리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자인 와타나베가 천연균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농약을 마구 뿌린 밀가루와 인공 발효제 그리고 식품 첨가물을 섞어 만든 빵이 사람들의 건강을 헤칠 뿐만 아니라 값싼 일자리로 내몰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으니까요.

저자는 견습생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천연효모와 인공효모의 차이를 들려줍니다. 정말 황당한 것은 인공효모를 '인공'이라고 부르지 않고 '순수 배양 효모'라고 불러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종류와 성격의 효모를 사용해서 만드는 것이 천연효모 빵이에요. 효모뿐 아니라 자연계에는 여러 가지 균이 공기 중에 떠다니거나 작물에 붙어서 존재해요. 보이지 않을 뿐 모든 장소에 서식하죠. 그런데 이스트는 그 많은 '야생 효모' 중에서 제빵에 적합한 효모를 골라내 인공적으로 배양했다는 말이에요."(본문 중에서)

대부분의 빵집에서 빵을 만드는 재료로 흔히 사용하는 인공효모의 대표 선수 격인 이스트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유야 많겠지만 우선은 배양 방법이 문제라는 사람이 있어요. 영양이 풍부한 배양액 속에서 효모를 증식시키는 방식을 쓰는데, 그 안에 첨가물이 여럿 들어가니까 몸에 나쁘다는 거예요. 또 효모를 개량하기 위해 약품을 쓰거나 방사선을 쪼이기도 하기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본문 중에서)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트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쉽게 똑같은 빵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제빵이라는 직업에서 기술과 숙련도가 필요 없어졌으며,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자본주의적 고용관계가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빵으로 자본주의 바깥에서 살아남기

와타나베는 제대로 된 빵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빵을 만들어서는 결코 자본주의 체제 바깥으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천연균과 자연에서 얻은 재료만을 사용하여 가장 맛있고 건강한 빵을 만들어 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천연균으로 만든 좋은 빵을 만들어 제 값을 받고 팔기 때문에 일 주일에 사흘은 쉬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를 떠날 수 있는, 주인과 일하는 사람이 모두 사람답게 사는 빵집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자는 발효와 같은 생명계의 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발효를 일으키는 균은 발효 과정을 통해 생을 다하기 때문에 누군가 독점하는 일도 없고, 누군가만 혹사 당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을 읽다 보면 이윤을 통한 끝없는 자본의 증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저자와 번역자는 그것을 '부패하는 경제'라고 하였는데, '부패'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 때문에 좋은 의미로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색하였습니다.

일본어로 쓰인 책에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부패 대신 '분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자는 발효균이든 자본이든 반드시 부패되어야 좋은 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시골 빵집은 부패하는 경제의 선순환을 위하여 다음 4가지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4가지 핵심 가치는 바로 '발효, 순환, 이윤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입니다. 한  발은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에 걸치고 있지만 다른 한 발은 자본주의 체제의 바깥에서 살아가는 그의 실험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7월, 아직 올해가 많이 남았습니만, 2014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 2014


#시골빵집 #자본론 #다루마리 #천연균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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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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