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들아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 할매들은 흙바닥을 뒹굴며 절규했다.
<밀양전> 예고편 갈무리
평온한 마을 풍경으로 다큐멘터리는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들어선다는 거대한 쇠로 된 송전탑, 할매들은 고쟁이 대신 '750kV OUT'이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고서 굴착기 앞에 눕는다. 묏자리를 미리 준비하듯 구덩이를 파고 그 위로 사람의 목이 들어갈 만큼 밧줄을 동그랗게 맨다.
그렇다고 <밀양전(戰)>은 이들의 처절한 싸움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10년째인 긴 싸움에서 쇠사슬로 벌거벗은 몸을 감는 결정적 순간은 현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흑백의 스틸 컷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대신 생동감 있는 건 쑥 뜯는 할매들의 일상과 그들의 언어다. 한전 직원들을 향해 "똥물 터자뿐다!"며 소리 지르는 할매들의 경상도 방언은 날 것 그대로 자막에 등장한다.
카메라는 일상으로 향한다. 파전을 부치는 할매를 향해 누군가는 "뱃속에 들어가면 다 찢어지는데 막 뒤집으라"며 잔소리하기도 하고, 경사도 없건만 큰 솥에 소고깃국을 끓여 온 동네 사람들이 둘러앉는다. 밤이면 촛불 하나에 의지해 화투도 친다. 서로 '피' 내놓으라며 아우성이다. 일상의 풍경이 무너지는 것은 절대 풀리지 않을 벨트로 서로의 몸을 묶는 순간이다. 젖가슴을 드러내고 때로는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송전탑 건설을 막을 수 있다면 할매들은 무엇이든 하겠단다. 이들의 현실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할매들은 '똥물' 아니면 무엇을 쥘까
"안 물러서면 똥물 뿌릴끼다!"생전 처음 '데모'에 나선 할매들의 무기는 똥물이다. '한전에서 들이닥친다'는 소문이 돌자 수세식 화장실에 두 달 모아뒀던 똥물을 파란 바가지로 퍼 나른다. 할매들에게도 이 작업은 꽤 곤욕스럽다. 페트병 좁은 입구에 똥물을 넘치지 않게 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기에 김칫국물도 섞는다. 더한 폭탄을 만들려는 건지, '똥색'을 중화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하얀 우비를 뒤집어쓴 채 똥물을 피하고자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의 모습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상대와 비교하면 볼품없고, 지독한 냄새만 풍기는 무기를 쥔 할매들은 어쩐지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한석봉 엄마가 얼마나 강하노. 엄마도 그런데 엄마의 엄마, 할매들은 얼마나 힘이 세겠노." 이 말이 다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