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조선총잡이>.
KBS
배우 이준기를 주연으로 내세운 KBS2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는 19세기 중후반인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다. 이 드라마에는 총을 든 자와 활이나 칼을 든 자의 무예 대결이 자주 나온다.
총은 서유럽에서 개발된 무기다. 그래서 총과 활·칼의 대결은 서양 문물이 들어온 구한말이란 시대적 배경에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 총과 칼·활의 대결은 구한말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구한말에는 이 대결이 이미 식상한 것이 되어 버렸다. 총과 조선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총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물건이다. 역사학자 르네 그루쎄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 말했듯이, 북아시아 유목민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비결이 기마술이었다면 서유럽인이 세계를 제패한 비결은 바로 총포술이었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변방에 불과했던 서유럽은 바닷길과 총포술에 대한 지식을 통해 세력을 팽창하다가 19세기 중반에 중국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의 권력 지형을 바꾸어놓았다.
총은 포르투갈과 일본과 대마도(당시엔 독립국)를 거쳐,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589년 조선에 소개됐다. 일본에는 1543년에 소개됐다. 일본보다 총을 늦게 받아들인 결과로, 조선은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까지 조선군의 주력 무기가 활이었기 때문이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로 외국을 침공하기보다는 외국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주력한 한민족은, 적군이 침공해오면 산성으로 들어가 화살이나 대포를 쏘아 적군에 타격을 입히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런 전략은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옛날 한국군은 활을 잘 쏘는 군대로 알려졌다. 게다가 국가가 선비들에게도 활쏘기를 권장했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활쏘기 실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칼과 창 잘 다루는 사극 속 무사들은 낯선 장면사극 속의 군인이나 무사들은 칼이나 창을 잘 다루지만,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는 낯선 장면이다. 일부 무인들이 창과 칼을 잘 다루긴 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한국 무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민족 군인들은 칼이나 창을 휴대하고 있을지라도 기본적으로 활쏘기를 더 잘했다. 칼이나 창은 그냥 폼으로 갖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정조 임금 때인 18세기 후반에 나온 <무예도보통지>라는 무예 교본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 예로부터 전해오는 것이 활과 화살뿐이다. … 칼과 창은 버려진 무기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싸울 때에 왜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돌진하면, 우리 군사는 창을 잡고 칼을 차고 있으면서도 … 속수무책으로 적의 칼날에 꺾여버렸으니, 이는 칼과 창을 익히는 방법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전통적으로 궁수 위주로 병사들을 양성하다 보니, 한민족 군대는 위와 같이 칼과 창에 약한 군대가 되었다. 대신, 활쏘기만큼은 동아시아에서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옛날 한국 정부는 외국 사신에게 활쏘기 쇼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군사력을 과시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