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땄다. 그런데 내 주먹쥔 손보다 작다. 모양은 이상해도 아주 먹음직스럽다.
김윤희
내 말을 듣고 룸메이트가 다가왔다. 새를 쫓아내고 복숭아나무를 이리저리 살폈다. 쪼아 먹다 만 복숭아들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어떤 건 씨앗만 남기고 거의 다 먹어치웠다. 먹다 만 복숭아는 날벌레들이 달라붙어 신나게 즙을 빨아대고 있었다.
복숭아를 다 뺏길 수 없어 마저 커야할 복숭아를 남겨두고 모두 따기 시작했다. 금세 바가지가 복숭아로 가득 찼다. 내 주먹보다 더 작았지만 이걸 먹을 생각에 신이 난다. 한 입 베어 먹어 보니 온전하게 익지 않은 것이라 맛이 다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만 했다. 모양이 좀 이상하고 상처가 난 것들은 더 달고 맛있었다.
'역시 과일은 못생긴 게 맛나.'못 생긴 복숭아 모아 통조림 만들었더니 꿀맛먹겠다고 따오긴 했지만 양이 많았다. 복숭아는 보관이 어려워 빨리 먹어야 하는 과일이다. 매일 먹는다 해도 조금의 상처라도 있으면 곧 물컹거리며 썩을 것이다. 여름이 지나도 이 복숭아를 먹고 싶었다. 아니 겨울까지 먹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돈만 있다면 겨울에도 복숭아를 먹을 수 있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찾아낸 방법은 바로 복숭아 통조림을 만드는 것.
나는 복숭아를 깎고 또 깎았다. 검은 점이 박혀 지저분해 보이던 껍질 속에 뽀얗고 붉은 줄무늬가 그려진 속살이 나왔다. 정말 예뻤다. 요걸 먹을 생각을 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바가지에 든 것을 다 깎았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2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서서 손가락 마디가 붉어지도록 열심히 깎았건만... 작은 냄비에 가득차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다. 복숭아를 잘 지켜 나무에서 마저 자라고 있는 것들로 다시 통조림을 만들면 될 테다.
복숭아를 먹기 좋게 잘라 냄비에 담고 물과 설탕을 넣어 끓였다. 냄비에 있는 물이 파도처럼 흰 거품이 일면서 끓었다. 잠시 후, 불을 낮추고 거품을 거둬낸 뒤 식기만을 기다렸다. 단단하던 복숭아 살이 말랑하니 윤기가 돌았다. 금세라도 입속으로 쏙 집어넣고 싶어졌다. 식은 복숭아 통조림을 통에 담았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손님이 올 때 내 놓거나 간식으로 먹을 것이다.
복숭아를 날 것으로만 먹었다는 그도, 냉장고에서 나온 시원한 통조림을 먹어 보더니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더위에 지칠 때마다 시원한 복숭아 통조림을 먹으면 정말 힘이 난다. 인스턴트가 아니기에 몸에 나쁠 리 없고 흡연자들에게도 좋다고하니 만들어보길 권한다. 껍질을 까서 자르는 일이 좀 힘들긴 하지만 그 정성까지 먹으면 얼마나 기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