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표지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
이민희
시의적절한 책이다. 유행이 된 '마을 만들기'에 관해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라는 책이 나왔다. 마을 만들기 '선수'들이 모여서 각자의 현장 경험을 통해 생긴 고민들을 나누고 토론한다.
시작은 '질문'이다. 우리가 왜 마을을 고민했지? 우리가 이 운동을 왜 했지? 답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모두가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인정하자. 그 때문에 수차례 토론의 결론은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은 무엇일까?
마을공동체, 왜 '위기'를 이야기하는가?20여 가구가 조금 넘는 작은 시골 마을에 귀촌을 해 살림을 꾸린지 6년이 넘어간다. 초창기 도시 생활에 익숙한 탓에 '마을'은 불편했다. 아침 저녁 안 가리고 불쑥 찾아오는 이웃들에 당황하거나, 마을 행사를 알리는 이장님의 확성기 공지에 나갈까 말까 안절부절 하기도 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했던가. 이웃들과 안면을 트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느새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신기루같았던 마을이 구체적인 '관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관계를 맺지 못하면 마을에 살아도 외로운 섬 신세를 면치 못한다. 단절되고 파편화 된 도시의 아파트 생활과 다를 게 없다.
내가 사는 마을은 한때 초등학교가 있어서 면사무소 소재지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지금은 하나둘 떠나고 초등학교마저 폐교된 지 오래라, 60대 이상 고령 인구가 대부분인 작은 마을이 됐다. 더구나 아이들은 아예 없어서 우리집 애들이 이 마을의 유일한 아이들이다.
내가 본 마을은 아이들과 청장년, 여성과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부대끼며 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활력이 넘치는 대신 몰락한 농촌의 삭막함이 감도는 곳. 이웃들의 경조사를 챙기거나 마을 청소와 같은 공동 울력을 하며 공동체의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알 수 없다.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 마을은 너무나 노쇠하다.
마을이 유행처럼 번지다보니 각양각색의 '마을'들이 출현한다. 도시와 농촌의 현실이 엄연히 다르고, 무리지은 사람들의 처지와 관심사에 따라서도 다양한 형태를 띤 '마을'들이 생겨났다. 다양한 형태의 마을공동체들을 보면 각자 '마을'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이란 시공간을 오랫동안 함께하며 사람들이 맺어온 관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느슨한 관계'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만드는 21세기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보인다. 농촌이 마을공동체의 전통적인 인프라를 상실한 채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 도시는 물리적 밀착도보다는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만남과 흩어짐이 유연한 '네트워크' 방식으로 마을에 접속중이다.
농촌이든 도시든 현실이 이러하다보니 마을공동체는 '사업'이 되었다. 뜻 맞는 소수가 결사해 터전을 잡고 아예 공동체를 꾸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 대신 민관 협력을 통해 자원을 조달하고 추진하는 마을 '사업'이 대세다.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관에서 돈을 끌어들여 사업을 벌였다가 오히려 공동체에 상처만 남기고 끝나버린 경우도 많고, 주민들의 살림살이와는 무관하게 외부인 유치에만 열을 올리는 전시용 마을 만들기로 전락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마을활동가들은 지금이 마을공동체 운동의 절제절명의 위기라고 본다. 애초에 '운동'이었던 것이 '사업'으로 바뀌면서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채 변질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은 마치 행정이 지역속에 투입한 '트로이의 목마'같다. 행정의 언어가 마을의 언어를 대체하고 행정의 관점이 마을의 경계를 정한다. 행정과 기업의 자원이 마을을 움직일 동력을 만들고 행정의 지표로 마을의 활동이 평가를 받는다. 놀라운 건 마을이 스스로 이런 순응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니 이제 마을 쪽에선 비판이나 감시, 투쟁이라는 말을 듣기가 어렵다. 현실은 개판인데 주옥같은 말만 들린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는데 벌써 무기를 내려놓았다."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87쪽)자치와 자급이 가능해야 '마을'이지마을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랜 기간동안 함께 하면서 만들어진다. 마을은 한 가지 뜻과 한 가지 이상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가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마을은 관념 속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이상향'도 아니다. 늘 좋을수만은 없다. 때로는 대립하고 반목한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숙성이 곧 '마을공동체'다.
마을이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마을에서의 삶'이 가능해야 한다. 자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마을에 자치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없고, 자급을 말하면서도 자원은 모두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하는 신세라면 마을공동체를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을 것이다. 마을은 주민들의 호혜와 협력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터전'이다.
대부분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농촌의 경우, 외부에서 자원을 조달하거나 도농 교류처럼 도시와의 연계를 모색하는 것도 마을공동체 복원의 방법이 된다. 자급하고 자립해야 한다는 명분만 앞세워 고립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것이 한시적인 사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농업 농촌의 재생과 마을공동체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다고 반드시 옳다는 확신은 버려야 하는 거지요. 일을 시작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에 의해 제어될 것이냐가 중요해요.그것은 지역사회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의 공론장이어야 합니다. 마을 기업은 마을의 공론장인 마을 회의에서 제어가 되어야 하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도 지역사회 공론장에서 제어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순식간에 공동체를 회사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영리 부분은 반드시 비영리 부분에 의해 제어되어야 합니다. 마을과 사회와 협동을 언급하는 그 영리 기업들이 마을과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그것들은 공동체를 억압하는 구조로 바뀔 겁니다. 순식간에 자본주의에 편입되어 이사장이나 대표가 마을과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공론장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공론장이 무너진 곳에는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붙여도 다 변질되고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권단 '옥천순환경제공동체' 상일꾼, 62쪽)마을의 정체성이란 곧 그 마을의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을을 마을답게 하는 것은 마을 주민들의 자각된 힘이다. 따라서 마을에 주민들의 의견과 힘을 소통하고 모아내는 구조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마을의 지속가능성 또한 마을 주민들 속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운동과 사회운동,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마을이 마을다우려면 어떠해야 하는가'와 더불어 중요한 질문은 '마을은 과연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여지듯이 세상은 엉망진창인데 마을만 유독 '장미빛'일 수는 없다. 마을은 평화로운데 노동 현장이 전쟁터라면 이것도 모순이다. 마을이라는 틀에 갇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담 쌓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주류 운동의 아집만을 내세우며 마을공동체와 같은 대안운동을 여전히 터부시하는 것도 안될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마을운동과 사회운동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터의 이야기가 일터로, 일터의 이야기가 삶터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스스로 시대의 복판에 서기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시대와 역사의 대하로 향하는 어느 가난한 골목에 서기를 주저해서도 안되리라 믿습니다"라고 했다. 마을운동과 사회운동은 각각의 영역에서 고유한 사명을 갖고 있다. 의도적인 거리두기 대신 적극적인 소통과 연대를 꾀한다면 진보의 파이는 더욱 터질 것이다.
"아파트 단지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노동이 필요하다. 경비를 서고 계단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택배로 물건을 나르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많은 일들을 대신해주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분들은 마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대부분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는 약자들이다. 아름다은 마을에서 이분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서문, 5쪽)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 - 마을 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
권단 외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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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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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된 마을 만들기... 마을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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