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일, 이 속도는 적정한가?

등록 2014.07.23 17:31수정 2014.07.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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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어느새 100일째다. 수백 명의 사라진 생명들, 아직도 바다에 있는 실종자, 그리고 죽음보다 더한 가족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고 이후 100일을 맞는 우리 모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말없는 바다를 보며 드는 야속함은 사고 진상조사와 같은 본질에 관심 갖기보다 유병언 검거에만 열을 올리며, 결국 어처구니없는 수사참극을 연출하고 있는 이 정부의 행태 앞에서 분노로 변해버린다. 그러면서 국민의 슬픔과 애도 분위기를 적잖이 경계하며, 국민의 슬픔까지도 통제하려는 이 정부의 저열함에 사고 직후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고 커져만 간다.

그나마 건질 수 있는 자그마한 희망이 있다면, 사고를 둘러싼 직접적 원인 뿐 아니라 사고의 구조적이고 사회적 배경이 된 여러 원인들을 고민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우리 사회의 성숙을 불러오는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고 재발은 사고 이후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매뉴얼 업그레이드나 관련 정부조직 개편으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재난을 둘러싼 우리 스스로를 포함한 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과 고민의 흐름이 멈추게 된다면 또 다른 '세월호들'의 운항은 계속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월호의 폭주, 한국 사회의 폭주

세월호 참사를 부른 원인들에 대해 사고 직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문제점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생명보다 돈이 먼저인 세상의 법칙, 승객 안전 보다 먼저 돈이 먼저였던 선박회사, 해운업계와 결탁된 관피아, 더 넓게는 규제철폐에 앞장서며 위험사회를 재촉한 신자유주의까지... 세월호 참사는 분명 이러한 문제들이 복합되어 일어났다. 그라나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묶는다면 우리는 하나의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속도의 문제다. 조금의 느림도 허용하지 않고, '가급적 빨리'를 요구하는 자본의 속도에 삶의 속도를 맞춰왔던 이 사회의 강박증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안전을 돌아보는 시간을 끊임없이 갉아 먹고 있었고, 이것이 참사를 재촉했다는 생각을 지우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질문을 가다듬어 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적정한 속도로 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폭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폭주가 일상화된 사회에, 느리게 가며 누릴 수 있는 안전은 뒷전일 수밖에 없고 위험이 만성화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명 보다 돈이 먼저기에 돈의 속도에 맞추고, 학생 보다 학교 일정이 먼저기에 학교의 속도에 맞추고, 승객보다 선박회사의 이익이 먼저기에 선박회사의 속도에 맞춰 갔었기에 세월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폭주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세월호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가 과속 운항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월호가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세월호의 폭주는 한국사회의 폭주가 반영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 보다 더 빠르게 배워야 하고, 남들 보다 빠르게 취직하고 승진하고 집을 사야하고, 경쟁사들 보다 더 빠르게 생산하고 확장하고 축적해야 한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성과를 재촉하는 속도의 법칙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만성화된 폭주사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높아지는 속도에 비례해서 위험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전체를 휘덮고 있었던 것이다.

성장지상주의 사회의 전제조건, 위험사회 : 속도를 얻고 안전을 내주다


지난 40~50년간의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 과정은 '압축성장' 네 글자로 요약 될 수 있다. 모든 과정이 단시간으로 압축된 체 과도한 노동시간과 에너지 투입에 의존하며 외형적 성장에 몰두한 시기였다. 삶의 여유는 허용되지 않았고,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소중한 시간이 사라진 체로, 성장으로 가는 시간단축을 위해 우리 모두가 속도경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노동착취, 환경파괴가 지속되었고, 온 사회의 위험에 우리 스스로를 적응시켜갔고, 삶의 시간은 돈의 시간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그 모습은 OECD국가 내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과 교통사고 사망률, 산업재해 사망률을 통해 비춰지고 있다.

경제가 일정한 규모에 이른 현재에도 대부분의 기업은 장시간 노동을 통한 생산방식에 익숙해있다. 이 과도한 노동투입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화력·원자력과 같이 환경에 나쁘고 위험하지만 당장에는 싸게 먹히는 에너지를 넘치도록 공급하는 정책을 꾸준히 펴오고 있다. 올해 초 세워진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상에는 2035년까지의 전력수요량을 2011년 대비 80%가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했고, 이러한 바탕에서 원자력발전소(원전)도 현재 23기에서 2035년에는 최소 39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예측했다.


말은 '예측'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원전을 가능한 많이 짓겠다는 정책결정자 의지의 표명이며, 경제성장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우리사회의 관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성이 고리원전1호기 같이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을 계속 가동하고 있는 현재의 비정상적인 원전중독의 나라가 된 배경인 것이다. 같은 이유로 친환경적이고 위험하지 않은 재생에너지가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정책결정자들 생각에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무한대 성장을 위한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슬픈 모습을 상징하는 두 가지 지표인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도'는 성장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묻지마 성장 방식의 슬픈 쌍생아인 것이다. 성장을 위한 속도내기가 멈추지 않는다면 또 다른 세월호 참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질문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적정한 속도로 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을 막겠다는 목표로 정부가 발표한 안전대책은 한 무더기지만, 정작 사고를 일으키게 한 이 사회의 배경과 구조에 대한 대책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부조직 개편과 규제정비를 아무리 고강도로 한다고 한들 속도경쟁으로 내 몰고 있는 이 사회의 만성화된 과속상태를 막기 위한 고민이 대책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보여주기식 대책에 머물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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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의 '특별법 제정 촉구 100리 대행진' 웹자보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그래서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는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속도에 대한 질문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적정한 속도로 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이 속도를 버틸 수 있는가?" 무작정 높아지기만 했던 삶의 속도로 인해 벌어진 결과가 세월호 참사라면, 답은 단연코 '아니다'가 될 것이다.

이제 까지 자본에 의해 우리 삶의 속도가 결정되어 왔다면,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폭주하고 있는 자본의 속도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바로,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행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가장 적정한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수준은 쉽게 정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빨리 갈 수 없고, 느리게 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수준에 최대한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속도로 우리 삶의 속도를 재편할 수 있다면, 사회의 속도에 못 이겨 낙오되거나 죽어가는 사람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돈의 속도에 맞서 우리 삶의 속도를 찾아나가는 질문과 답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 세월호 참사로 먼저 간 생명들에게 이 사회가 져야하는 최소한의 책무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종겸 시민기자는 환경단체 생태지평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원전 #고리1호기 #위험사회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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