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대체 : 30일 오후 11시 46분] E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 역시 사고 당일 선실(SP-1번방)이 물에 거의 잠긴 뒤에야 빠져나왔다. 28일 다섯 번째 증인으로 나선 그는 처음 배가 기울었을 때 방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내방송이 그를 붙잡았다.
"배가 기울어지니까 나갈까 말까 했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불안했죠. 또 '나갈까,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러면서 (방 안에) 있었어요." E학생은 결국 한참 뒤에 방에서 빠져 나왔다. 그는 "사고 초반에 대피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을 밟고 올라오고 해서 애들도 더 많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E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창문에 물이 닿더니... 콸콸콸 물 차는 소리가 났다" [검찰 측 신문] "4월 16일 아침에 머리를 감으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머리 다 감고 말린 다음에 밥을 늦게 먹었다. 식사한 뒤에 나는 자려고 (방에) 누웠다. 그때 배가 기울었다." "일단 배가 기울어지고 나서 창문 쪽으로 애들하고 짐하고 다 쏠려서 친구들이 깔려버렸다. 막 날아가서 부딪치고. '뭐야, 뭐야' 이러면서 가만히 있었는데, 배가 기우니까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반장이 막 괜찮다고 하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한테 '괜찮으니까 침착하게 기다려라'는 카카오톡이 왔다. 안내방송에서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배가 점점 기우니까 창문에 물이 닿는 게 보였고, 나중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더라. 불도 다 꺼지고 불안해서 엄마한테 문자 보내고 애들은 통화하고 있던 중에 배가 더 기울어졌다. 갑자기 쩌저적 소리가 나고 콸콸콸 물이 차는 소리가 났는데 (불이 꺼져서) 보이는 게 없으니까 굉장히 무서웠다. 또 갑자기 쾅 소리가 들리면서 캐비닛이 부서지고 아이들이 깔렸다. 나랑 친구는 캐비닛에 갇혀버렸다. 그 안에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다가 캐비닛을 쳐서 빠져나오니까, 위에서 친구들이 올려주고 뒤에서 받쳐주고 해서 복도로 나왔다. 거기서 반대쪽(선수 방향)으로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그쪽이 아니다'라고 해서 뒤편, 꼬리 쪽으로 나왔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몇 차례 반복되다가 '주변에 잡을 것 있음 잡고, 구명조끼 입어라'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방송 나오기 전에) 먼저 찾아서 입고 있었다. 애들이 우연히 구명조끼 있는 곳을 찾아서 입자고 하기에 입었다." "해경이나 선원 없이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선실 안에 물이 거의 가득 차서 몸이 떴고 친구들이 도와줘서 나왔다. 선원이나 해경은 없었고 그냥 우리끼리 (서로) 도와서 나왔다. 해경은 본 적 없었고, 우리가 (선미 쪽으로) 나왔는데, 바로 밑이 물이었다. 거기 어떤 아저씨가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했다. 이미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구명보트로 구조됐다. (해경이) 안으로 들어와서 구해준 건 아니다." "(사고가 난 직후 왜 탈출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배가 기울어지니까 나갈까 말까 했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나니까 불안했다. 또 '나갈까, 나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라.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그러면서 (방 안에) 있었다. 선원들을 믿고 기다렸다. 그리고 해경도 곧 온다는 방송이 나와서, 해경이 복도 쪽으로 들어와서 우리들을 끌어줄 것으로 알고 계속 기다렸다." "(방에서 나오기 위해) 올라 올 때 다리에 힘을 많이 줘서 다쳤다. 나중에 섬에 가서 보니까 막 긁혔더라. (정신적으로 힘든 점을 묻자)… 가끔씩 (사고 당시 상황이) 막 생각나고… (이번에 숨진) 애들도 생각나고…." "(승객을 놔두고 먼저 탈출한) 선원들의 행동에 마땅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에 탔을 때 비상 탈출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텔레비전으로 동영상을 본 기억이 없다. 선실이나 복도에 붙어있는 안내문에서 '이 배에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비상벨이나 비상 기적 소리가 울리면 탈출해라'라는 문구나 내용이 있는 것도 전혀 보지 못했다." "초반에, 그때 (대피) 방송이 나왔다면 캐비닛 밟고 올라오고 해서 애들도 더 많이 탈출할 수 있었을 거다." "바닷물은 매우 차가웠다" [변호인 측 신문] "'해경이 곧 도착하고 헬기도 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방송을 들었지만 그게 나온 시각은 잘 모르겠다." "(탈출한 시각도) 거의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좀 오래……. 잘 모르겠다. (당시 주변에서 내가) 나온 시각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냥 나오자마자 어떤 아주머니가 부모님한테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한 다음 곧바로 섬으로 이동했다. 시간을 볼 겨를이 없었다." "배는 처음에 확 기울어졌다가 그 뒤에 천천히 넘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확 기울었다. 마지막에 확 기울었던 시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처음에 기울고 쭉 안 기울어지다가 확 넘어갔는데…." "(재판장이 당시 수온을 묻자)매우 차가웠다." [관련 기사][생존 학생 증언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생존 학생 증언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생존 학생 증언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생존 학생 증언⑤]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생존 학생 증언⑥] "선원들 엄벌에 처하길 원하는가" - "네"[생존 학생 증언⑦]"박지영 언니가 복도에서 로비로 훅 떨어졌다" [생존 학생 증언⑧]"지금도 잠잘 때 가위에 눌린다" [생존 학생 증언⑨]"올라가 헬기 타겠다고 손 들고 나왔다" [생존 학생 증언⑩]"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증인석에서 터진 울음[생존 학생 증언⑪] '4층의 영웅' 남학생의 일갈 "선원들 1600년형도 부족하다"[생존 학생 증언⑫] 물살과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다[생존 학생 증언⑬] "사고 후, 가만히 있어도 내가 90도로 휘는 것처럼 느껴"[생존 학생 증언⑭] "나는 친구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으니까..."[생존 학생 증언⑮] 끝내 터진 울음 "방송만 제대로 했다면, 많이 살았다" [생존 학생 증언16] 꾹꾹 참아온 한 마디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인가"[생존 학생 증언17] "머리 감다가 물이 쏟아질 때, 숨이 턱 막혔다"[생존 학생 증언18] "좌현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가만히 있었다"[생존 학생 증언19] "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생존 학생 증언20] "박지영 누나말고는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생존 학생 증언21] "선원들, 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졌으면"[생존 학생 증언22] "탈출하다가 두 번이나 빨려들어갈 뻔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공유하기
"해경은 본 적 없었고, 우리끼리 도와서 나왔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