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도착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달라"며 1박2일 동안 도보행진을 한 안산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노란 우산을 쓰고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도착하고 있다.
남소연
관심을 피했던 생존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5일 도보행진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희생자 유가족이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걸어 도착하는, 1박 2일 약 37km의 여정이었다(관련기사:
생존학생들, 22시간 만에 국회 도착...눈물 바다).
이들은 희생된 친구들의 이름표를 가방에 달고 "우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노란 깃발을 따라 걸었다. 오른발에 깁스를 한 학생도, 파스를 붙인 학생도 걸었다. 학부모들은 행진 후 "아이들이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며 "(아이들이) '속이 후련하다', '가슴이 뻥 뚫렸다'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결국 세월호 선원에 대한 공판 법정에도 섰다. 검찰은 당초 생존학생 증언자로 23명을 신청하면서도 상당수가 응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증언을 거부하던 학생들이 마음을 바꾸면서 한 명을 제외한 22명이 재판에 참석했다(28일 6명, 29일 16명).
학생들은 법원 내에 따로 마련된 화상 증언이 가능했음에도 대부분 직접 법정 증언석에 앉아 증언했다. 그 편이 더 재판 진행에 수월하다는 재판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정이었다. 'REMEMBER 0416(4월 16일을 기억하라)' 노란 팔찌를 찬 학생들은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울먹이기도,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침착하게 답변했다.
이들과 함께 법원을 찾은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는 29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공개 증언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친구들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낀 대로만 얘기하라고 했다"며 "아이들의 뜻은 명확하다. '죄 지은 사람은 죗값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장 대표는 또 "아이들에게 (재판 진행) 과정을 설명해줬다"며 "아이들을 고려해 법원에 다른 재판 일정도 잡지 않았고, 법원 안에서 이동하는 동선도 철저하게 관리됐기 때문에 안심을 하고 (증언하러)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법원 측은 학생들이 동요할 것을 고려해, 재판 중인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을 법정에 출두시키지 않았다.
학생들은 탈출이나 안전과 관련된사전 교육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모두 '없다'고 답했다. '혹시 해경이나 선원 중에 탈출할 때 도와준 사람 있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증언한 학생들은 숨진) 친구들과 선생님들 생각이 많이 나고, 배 안에 있던 상황이 꿈에 나타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선원들과 선장이) 굉장히 밉다, 나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건 정말 어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던 것 같다"며 "안타까운 시선들을 많이들 보내는데, 그걸 평생 끌고 가야할 것 같아 굉장히 두렵다"며 울먹이는 학생들. 이들이 용기를 내 법정에 선 이유는, 28일 법정에 선 학생의 답변에서 찾을 수 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돼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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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생존 학생들, 침묵 깨고 법정에 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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