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신망리 마을과 외선 철로가 이웃처럼 어우러져 있다.
김종성
쌀이 익어가는 논 사이를 시원하게 가르던 경원선 열차는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신망리역(新望里驛)에 잠시 멈춘다. 신망리역은 우리가 가슴 한 쪽에 묻어 두었다가 가끔씩 꺼내보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낡은 흑백사진 같은 간이역이다. 7,80년대 역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루 승객이 100명도 되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역이 자리한 마을 신망리는 6·25 전쟁 전까지만 해도 북한 땅이었다. 신망리의 원래 이름은 '웃골'이었고 일제 강점기 때는 웃골을 한자어로 바꾼 '상리(上里)'였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는 바람에 졸지에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에 신망리역 일대(상리)가 남한의 피란민 정착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피란촌이 형성됐다.
당시 이 동네에 주둔한 미 7사단은 군수물자와 여객을 수송하기 위해 기차역을 만들고 100여 채의 목조 가옥을 지어 피난민들을 입주시켰다. 당시 미 7사단장은 이곳을 전후 새로운 희망이 피어날 곳이라며 '뉴호프타운(New Hope Town)'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를 우리말로 옮긴 '신망리'가 역의 이름이 됐다.
강원도 철원처럼 본의 아니게 공산주의, 자본주의 두 체제를 경험하게 된 동네다. 굳이 소설이나 영화 속의 장면이 아니어도 서로 대립하는 두 체제 속에서 겪었을 주민들의 고통이 미루어 짐작이 간다. 전쟁의 아픈 역사가 담긴 동네요 기차역이다.
책 서가와 제비집이 있는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