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거세가 처음 나타난 나정(경주 탑동 700-1)과 6부 시조들을 제사지내는 양산재(나정 뒤)
정만진
청동기 시대는 사유(私有)재산의 발생으로 개인 사이, 또 부족 사이에 높낮이가 생겨난 때였다. 그에 비해 철기 시대는 족장(族長)들의 연맹왕국을 뛰어넘어 가장 센 족장이 혼자서 왕(王)이 되는 시대였다.
삼국사기는 초기 철기 시대 말엽인 기원전 57년에 혁거세, 기원전 37년에 주몽, 기원전 18년에 온조가 왕위에 오른 것으로 기록한다. ('신라가 고구려보다 먼저 건국되었다'식의 역사 기록이 등장한 것은 신라 유학자들이 고려 정치의 실세로 부각된 데 따른 결과였다. 최승로, 김부식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오른쪽 박스 내용 참조)
경주 남산 창림사터는 박혁거세가 처음 궁궐을 지은 곳은 추정된다. 창림사터는 나정 뒤편의 남간사터 오른쪽 구릉이다. 신라의 본격적 궁궐 월성(月城)은 101년(파사왕 22)에 지어진다. 혁거세왕, 알영,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오릉은 경주시 탑동 77번지에 있다.
삼국의 초창기는 아직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았다. 그 때는 고구려가 제가(諸加)회의, 백제가 정사암(政事巖)회의, 신라가 만장일치제로 유명한 화백(和白)회의에서 전쟁 등 국가의 중대한 일들을 결정한 시대였다. 경주시 동천동 507-7 소금강산 자락에 있는 표암(瓢巖)은 경주이씨의 조상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자. 화백 회의가 열리기도 한 신령한 땅으로 여겨지고 있다.
증거조작으로 국무총리의 집을 빼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