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 배에서 나온 손자 녀석은 첨에는 이렇게 생겼었습니다. 울기는 왜 그리 우는지요.
김학현
조선시대인 1500년대에도 이런 '손자 바보'가 있었답니다. 유학자 묵재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란 선비이죠. 주서(注書)·정언(正言)·이조좌랑 등을 지낸 분입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발발 후 스승인 조광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상(弔喪)했다가 경북 성주로 가 유배생활을 한 올곧은 선비입니다.
그런데 유배생활 중에 아들 이온(李溫)이 손자 이수봉(자는 수길)을 낳고 죽습니다. 평소에 이온은 몸이 부실했거든요. 그가 손이 귀한 집안에 태어난 손자를 키우며 쓴 책이 바로 <양아록(養兒錄)>입니다. '할아버지의 육아일기'쯤 되는 거죠. 이상주 선생이 번역해 1997년 책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선 중기에 유학자인 할아버지가 손자의 육아일기를 쓴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니까 묵재 할아버지가 '손자 바보'라는 겁니다. 저처럼 말이죠. 다른 분들이 "손자는 아들딸과는 달라, 더 귀여워"라며 손자 자랑을 늘어놓을 때는 그저 '꼴불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손자를 보니 그 사람들보다 더한 '손자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은 묵재 이문건이 손자를 전적으로 키운 건 아닙니다. 맏딸인 숙희(淑禧)와 성품이 어진 여종 돌금(乭今)이 맡아 길렀습니다. 그러나 교육만큼은 할아버지 담당이었죠. 가르침과 발달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양아록>입니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과 지극한 사랑이 듬뿍 담긴 기록이죠.
<양아록>은 손자의 출생부터 16세까지의 성장과정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려는 바보짓이 바로 <양아록>과 비슷한 기록을 남기려는 것입니다. 조선 중종시대의 '손자 바보'와 21세기 '손자 바보'와는 어떻게 다른지 지켜보시지 않겠습니까.
<양아록>에 보면, '종아리를 때리고 나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내가 종아리를 치는 것은 아이의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라. 오냐 오냐 하며 아이를 귀여워한다면 일마다 아이의 비위를 맞춰야 하리."(<양아록> 본문 중)손자가 귀엽지만 버릇없이 자라면 안 될 것이기에 종아리를 쳤는데, 그 아픔이 어땠으면 변명 아닌 변명으로 이렇게 사랑을 표현했을까요.
대한민국 '손자 바보'